"사건보다 당의 방관이 더 고통스러워"
조국의 침묵, 피해자들에겐 상처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조국혁신당 고위 핵심 당직자들이 가해자로 지목된 성비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의 늑장 대응과 반복된 2차 가해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 씨, B 씨는 성희롱 및 추행 사실을 당에 알린 이후 돌아온 건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방관과 침묵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A 씨는 "여의도에 다시 발붙이지 못할까 두려웠다"며 사건을 외부에 알리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털어놨다. B 씨 역시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조심조심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공포도 있었다"며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사건 접수 이후 당의 공식 연락 없이 시간이 흘렀고, 진정성 있는 조사나 보호 조치는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당의 대응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이 지난 3일 해당 사건과 관련한 입장문을 통해 사과했다. 당에서 나온 첫 사과였다. 김 권한대행은 "지난 4월 14일, 17일 비위 사건이 접수됐다"고 했지만, 이는 피해자들 주장과 배치됐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A 씨 사건은 지난달 6일 자정 무렵 A 씨의 지인 C 씨가 당 윤리위원회에 처음 접수했다. B 씨는 같은 달 11일 여성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신고 접수했고, 14일에는 김 권한대행에게 피해 사실을 구두로 보고했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은 구두 보고는 인정할 수 없다며 서면 제출을 거듭 요구했고, 결국 B 씨는 17일 서면으로 피해 사실을 접수했다.
혁신당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피해자 B 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B 씨가) 14일 문서를 가져오지 않았다. 구두로 했다지만 김 권한대행은 절차를 어기면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문서 없이 구두로 접수를 처리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다. 14일에 구두 접수했다는 (B 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17일 이후에 조치가 늦었다는 것은 인정했다.
"당은 한쪽 눈만 떴습니다. 듣는 척했고, 해결하는 척했습니다. 조사한다고 했지만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고위 핵심 당직자 D 씨의 직무 배제도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D 씨의 직무 배제 시점은 최초 언론보도가 이뤄진 지난달 30일이다. 당이 주장하는 서류 접수 시점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13일이 지난 뒤였다.
혁신당 관계자는 "(B 씨가) 17일 제출한 신고서에는 D 씨의 성희롱 관련 내용 한 가지뿐이었고 사안의 심각성을 알 수 없었다"며 "신고서를 가지고 당의 법률 위원장, 양성평등진흥원에도 물어봤다. 법률 자문을 구했는데 당장 업무를 배제할 정도는 아니며 조사를 해보고 조치하는 게 맞다고 자문 의견을 줬고, 업무 배제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조치를 원했다면 (신고 당시) 서류에 그런 내용들을 좀 담아줬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피해자 B 씨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조국과 혁신이 빠진 조국혁신당." 피해자들은 당의 대응을 이같이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당의 늑장 대응 배경으로 조국 전 대표의 최측근들이 지도부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을 지목했다.
A 씨는 "고위 당직자들이 조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이뤄진 곳의 한계가 느껴진다. 고위 당직자들이 조 전 대표와 친분이 두터우니 의원들조차도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며 "기본중의 기본인 성비위 문제를 당직자뿐만 아니라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당내에서 의견이 갈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들이 처음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는 못 들은 척하더니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이 좋지 않자 부랴부랴 사과문을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히고 온갖 정이 다 떨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의 주장처럼 혁신당 일부 의원들은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를 '당 흔들기', '정치 행위'로 규정했다.
<더팩트>가 입수한 당 텔레그램 메시지에 따르면 해당 사태에 대한 입장문을 두고 의원들 간 입장이 크게 갈렸다. 한 의원은 "언론에서 당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 (전) 대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B 씨는 일부 의원들의 이런 태도에 분노했다. 그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음해가 퍼졌다"며 "'B가 들쑤셔서 일이 커졌다', '피해자들이 하는 말, 전부 사실은 아니다', '가해자도 억울할 수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불만을 성추행 사건에 얹어 분노를 키워 분파를 조장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며 참담함을 토로했다.
당 지도부가 쉬쉬하고 시간을 끄는 사이 성비위 파문이 확산하자 개별 의원들이 피해자들을 위해 나섰다. 백선희 의원은 9일 SNS에 입장문을 올리며 피해자에게 연대의 뜻을 밝혔고, 김준형 의원은 이를 공유하며 동참 의사를 드러냈다. 황운하 의원은 백 의원이 제안한 조직문화 개선 활동에 힘을 보탰다. 김재원 의원은 당의 늑장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며 단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밖에도 일부 의원들은 직접 피해자들을 만났다.
또 다른 혁신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당의 조치가 매우 잘못됐다. 신속하게 직무 배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은 '당이 그들이 겪는 심적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것 아니냐'라는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믿고 의지했던 어른들마저 자신의 이미지 보호에만 몰두하는 걸 보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은 조직 내부의 침묵과 고립으로 일상까지 무너졌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공론화 이후 여의도에서 다시 일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지만, 또 다른 피해자와 당직자들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A 씨는 "똑같은 내용의 진술을 반복하는 게 지쳐 그만두고 싶었다. (가해자가) 고위 핵심 당직자인 만큼 국회에 아는 사람도 많아 무서웠다"며 "저 말고도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한이 맺힐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A 씨는 "여성 의원들조차 피해자 연대에 망설이는 걸 보면서 이 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며 "황현선 사무총장과 김 권한대행 모두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사과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B 씨는 어느 순간 자신보다 어린 당직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조용함이 진실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의 침묵 뒤에는 열 사람의 강요가 있다"며 "그 강요에 저항하려 한다. 조직은 무너져도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정당만이 진짜 '혁신'을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또 정치 현안에 매번 '옥중 메시지'를 내던 조 전 대표의 침묵 역시 또 하나의 깊은 상처가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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