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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비사㊳] 美 "중공군 유해는 '지평리', 인민군은 '가야읍'"
반기문 미주국장-주한 美 참사관 대화록
"韓, 유해 정보 관심 있다면 통보하겠다"
이라크 주변국 식량 지원 우려 등 현안도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0년 10월 24일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과 메이슨 헨드릭슨 주한미국대사관 참사관이 나눴던 대화 전문을 싣는다. 한미 양측은 6·25 전쟁 당시 사망한 북한·중국군 매장 장소와 걸프전 사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0년 10월 24일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과 메이슨 헨드릭슨 주한미국대사관 참사관이 나눴던 대화 전문을 싣는다. 한미 양측은 6·25 전쟁 당시 사망한 북한·중국군 매장 장소와 걸프전 사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전 유엔사무총장)과 메이슨 헨드릭슨 주한미국대사관 참사관은 1990년 10월 24일 오전 11시 미주국장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주요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측은 우리 정부에 6·25 전쟁 과정에서 사망한 북한·중국군 매장 장소를 알려줬고,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쌀 지원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 전문에 기록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중국 의용군 유해 매장 장소 통보

헨드릭슨 : 지난번 한국전 당시 사망한 북한 인민군 시체 매장 장소를 통보해 드린 바 있는데, 오늘은 중국 의용군 유해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 관해 말씀드리겠다. 지평리 부근에 유해가 발견되고 있다. 한국전 당시 이곳 전투에서 사망한 중국 의용군 5000명 중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유해 관련 정보에 관심이 있으면 앞으로는 관련 정보가 입수되는 대로 계속 한국 측에 통보하겠다.

지평리 전투기념관에 따르면 지평리 전투는 미 제2사단 제23연대(프랑스 대대 배속)가 1951년 2월 13~16일 지평면 일대에서 중국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 공격을 막아낸 방어 전투다. 해당 전투는 유엔(UN)군이 중국군을 상대로 싸워 얻은 최초의 전술적·작전적 승리이자, 38도선 회복을 위한 반격의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반기문 : 중국과 달리 북한은 우리가 발굴한 인민군 유해 인수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비교적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 인민군 또는 중국군 유해에 대한 정보를 군정위(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 측에 통보하는 것은 좋은 제스처로 본다. 미군 유해 송환을 촉진시키는 효과도 있을 수 있을 거다. 한편 지난번에 경남 함안군 가야읍 삼거리 인민군 유해 매장 장소에 관한 정보를 북한 측에 통보할 예정인지?

반기문 미주국장과 헨드릭슨 참사관 간 대화록 중에는 비공개로 처리된 대목도 있다. /외교부
반기문 미주국장과 헨드릭슨 참사관 간 대화록 중에는 비공개로 처리된 대목도 있다. /외교부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 부근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할 당시, 경남·전라 경찰 6800명과 미 25사단은 함안군 등에서 인민군 4개 사단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친 바 있다. 현재 함안군에는 6·25 전쟁 경찰 승전탑이 조성돼 있다.

헨드릭슨 : 그 문제에 관한 아직 정책적 검토를 하지 않았다. 휴전 협정상 인민군 또는 중국군 유해를 발굴하게 되는 경우에는 정전위를 통해 이를 통보하고 유해를 송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전쟁 시 전사한 인민군 및 중국 의용군 유해 매장 장소가 대단히 많은데, 북한 측에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북한 측이 유해 인수를 수락할 경우 취할 대책은?

이후 반기문 미주국장의 답변은 비공개로 처리돼 있다. 다만 이후 헨드릭슨 참사관이 "전사자 또는 MIA(실종자)에 대한 취급은 나라마다 다르나, 미국 정부는 전쟁 중 실종되거나 전사한 미군을 가족에게 인도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답한 점을 미뤄보면, 유해 송환과 관련한 절차 등을 물어본 것으로 추측된다.

◆표류 소련인 신병 인도 문제

헨드릭슨 : 지난 9월 중 미국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소련인 2명이 한국 어선에 의해 구조된 사례를 알고 있는지?

반기문 : 금시초문이다.

헨드릭슨 참사관은 이후 사건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해당 발언은 모두 비공개로 처리돼 있다. 반기문 미주국장은 이후 "외무부로서는 동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는 바, 미국 측의 문의 사항에 대해 관련 기관에 알아보겠다"라고 답했다.

당시 작성된 '소련 표류 보트 구조와 관련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 원양 냉동 오징어 운반선은 소련인 2명을 발견 후, 기존 항로에 따라 부산항에 들여오려 했지만 법무부 등의 조치에 따라 소련 나홋카항으로 향했다. /외교부
당시 작성된 '소련 표류 보트 구조와 관련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 원양 냉동 오징어 운반선은 소련인 2명을 발견 후, 기존 항로에 따라 부산항에 들여오려 했지만 법무부 등의 조치에 따라 소련 나홋카항으로 향했다. /외교부

소련인 표류 사건은 1990년 9월 10일 발생했지만 반기문 미주국장은 별다른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내 수산 관련 업체가 용선한 원양 냉동 오징어 운반선은 북태평양 공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한 보트를 발견했다. 당시 보트에는 소련 국적의 20대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미국에 거주 중인 부모를 만나기 위해 항해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운반선은 그해 9월 28일 어획물 적재 후 기존 항로에 따라 이들과 함께 부산항에 입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 등 관계기관의 조정에 따라 9월 30일 소련 나홋카항에 입항, 이들을 현지 당국에 인계했다.

◆페르시아만 사태 관련 쌀 지원 문제

헨드릭슨 : 미 국무부와 재무부는 한국 측의 쌀 지원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한국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쌀을 전선국가에 지원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많은 쌀을 지원할 경우 잉여분이 이라크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음에 비춰, 필요한 양만 지원하며 쌀 지원 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헨드릭슨이 언급한 쌀 지원 문제는 걸프전과 관련 있다. 걸프전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시작으로 발발했다. 이후 미국 등 30여개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전개했다. 미국 측은 이라크에 인접한 국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식량 지원이, 뜻하지 않게 이라크를 도울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 아국은 쌀 지원에 수반되는 민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미국의 입장을 고려, 전선국가에 대한 쌀 지원 계획을 취소하고 다국적군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 500만달러의 쌀 지원을 할 계획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 약 6억달러가량의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이라크 및 쿠웨이트 내 자국 근로자 수송 지원 등을 포함해 아국이 가능한 지원을 해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한 바 있다. 방글라데시에 대한 쌀 지원에 대한 미 측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아국은 나머지 500만달러 쌀을 내년도로 이월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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