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한동훈 모두 비판…책임 소재는 모호
"패배 원인 막연하게 '당정 갈등' 표현한 건 꼼수"
[더팩트ㅣ국회=신진환·김수민 기자] 계파 간 내홍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이 28일 4·10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해 공개한 총선백서에 '불안정한 당정 관계'와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한 한동훈 대표의 '전략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적시했다. 반년이 넘도록 준비한 기간이 무색하게 '당정 엇박자'로 에둘러 비판하며 총선 참패의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가 이날 최고위원회의 보고를 거쳐 공개한 '제22대 총선백서: 마지막 기회'에 따르면, 백서는 총선 패배 원인 분석에서 가장 먼저 '불안정한 당정관계로 국민적 신뢰 추락'을 지적했다. 특위는 총선 전 잇따라 불거진 대통령실발 악재 이슈가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이는 상황에서 당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봤다.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과 황상무 당시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의대 정원 확대 등 악재 이슈에 대한 당의 관리 부재를 지적한 것이다.
백서는 "당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정부의 기조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당정 사이에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감이 조성되지 못했다"며 "당정 간 다른 목소리를 내고 대립 관계를 보이는 순간 당정 갈등이 집중 부각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싸우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선거가 끝났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총선 전 불거진 악재가 떨치나 싶으면 또 악재가 터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특히 판세를 가를 수도권의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열세를 보였고 위기감이 컸었다"고 회상했다.
특위는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실패 사례로 '의대 정원 확대'를 꼽았다. 실제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재논의 필요성을 밝혔지만, 대통령실은 "변동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당 지도부가 모든 의제를 열어놓고 대화를 해달라는 요구를 일축했다. 당시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내각에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추진이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간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총선 패배 두 달 뒤에 드러난 한 대표의 '김 여사 문자 무시' 의혹도 당정관계가 주요 패배 원인이었음을 확인해 준 사례로 뒷받침했다. 이는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명품가방 수수 논란에 휩싸인 김 여사가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이를 무시했다는 의혹인데, 비대위원장과 대통령실 모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특위는 대표적인 당정 엇박자로 인한 혼란 사례로 '경기-서울 편입(메가시티)' 정책을 짚었다. 백서는 "당과 지역구 후보들은 서울 편입을 외쳤으나 대통령이 용인을 방문해 특례시 권한 강화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당정 불협화음으로 현장 혼란이 가중됐다"며 "총괄선대위원장은 민주당 경기도지사의 경기남북 분도 제안을 수용하면서 야당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백서에는 "한동훈 선대위원장 한 사람에게만 너무 의존했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전격 비대위원장으로 정계에 진출하면서 참신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당시 당내에선 한 대표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중도층과 청년, 수도권 등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컸다는 점에서 이러한 평가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있다.
한 대표가 내걸었던 '시스템 공천'에 대해서는 '반쪽짜리'라고 평가했다. 백서는 "당이 일찍부터 인재 영입을 준비하지 못해 후보군에 한계가 있었고, 사실상 총선 직전에 만든 기준은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다"며 "일부 출마자들은 경선·결선 기준이 다소 비합리적이었다는 점, 현역의원 재배치나 국민 추천제와 같이 기존의 원칙과 기준에서 벗어난 공천 사례들이 발생하며 시스템이 100%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부연했다.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는 "사천 논란으로 막판 내홍을 야기했고, 특히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배정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비례 공천에 대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전달됐지만 지도부는 공천을 강행했다"고 짚었다. 집권여당의 승부수 전략(공약) 부재와 관련해선 "이미 예측됐던 야당의 정권심판론 공세에도 속수무책이었다"며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데 반해 우리는 운동권 심판,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읍소 전략으로 변하며 일관성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조직 구성 및 운영의 비효율성과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 부재, 당의 철학과 비전 부재, 기능 못한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여연)을 패인으로 꼽았다. 여연에 대한 지적은 한 대표도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지난 6월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여연 등 당의 정책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당의 체질을 바꾸겠다"며 "정책 중심의 유능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당의 정책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6대 개혁 과제로는 △당의 정체성 확립 및 대중적 지지기반 공고화 △미래지향형·소통형 조직 구조로 개편 △빅데이터 기반 정책 개발 및 홍보 역량 강화 △공천 시스템 조기 구축 및 투명성 강화 △취약지역 및 청년·당직자 배려 기준 구체화 △비전을 가진 싱크탱크, 미래를 위한 준비를 제시했다.
총 267쪽의 총선백서는 22대 총선을 치른 지 6개월여 만에 공개됐다. 당초 지난 7월 당 전당대회 전까지 발간이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작업 과정에서 잡음이 지속됐다. 총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대표의 책임론이 부각될 경우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발간 시기가 미뤄졌고, 최종 내용에 담길 내용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이어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패배의 원인을 막연하게 '당정 갈등'으로 표현한 것은 핵심을 피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박 평론가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문제는 총선 이전부터 계속 있었고, 당정 갈등의 원인은 윤 대통령이 제공한 게 맞다"며 "이와 함께 당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했는지 짚어내야 하지, 두루뭉술하게 '당정 갈등'이라고 짚으면 그 책임은 아무에게도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이날 총선백서가 공개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총선백서에서 패배 요인이 불안정한 당정관계로 꼽힌다'는 질문에 "평가는 백서가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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