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만 가능한 '항공기 분리 기준'을 영부인도?
한준호 "황제 의전 받아…철저한 진상규명 필요"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역 축제에 참석하며 대통령이 탑승했을 때만 적용되는 항공기 분리 기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부인이 탑승한 비행기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김 여사는 대통령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23일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해 10월 6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회 서귀포 은갈치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했다. 당시 대통령경호처는 중앙방공통제소(MCRC)에 김 여사가 탑승한 비행기를 '대통령등 항공기 분리 기준'에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MCRC는 관제소에 대통령경호처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관제소는 분리 기준을 적용했다.
그러나 영부인만 탑승한 비행기는 규정상 분리 기준을 적용받을 수 없다. 대통령항공기등의 항공교통업무절차에 따르면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만 대통령경호처의 요청으로 다른 항공기와 분리돼 비행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항공로상 수평 20마일 또는 수직 5000ft(피트), 접근관제구역상 수평 10마일 또는 수직 3000ft다. 이를 통해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주변 항공기들의 우회 비행에 따라 비행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게 된다. 대통령 외에 이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외국의 국가원수급이나 행정수반뿐이다. 영부인에 대한 규정은 없다.
물론 항공교통관제절차에 따라 관제사가 특정 항공기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상황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대통령 경호원, 국무총리, 공식 수행원이 탑승한 대통령 탑승기 및 경호기만 해당한다. 이 역시 영부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준호 의원실에서 확보한 이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항공기 분리 기준을 김 여사에게도 적용한 것으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 여사는 규정에 없는 특혜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당시 제주 접근 관제소 및 제주 관제탑에 기록된 항적 이동, 항공기 교신 내역 등을 파악하고자 했지만 자료의 보존기간은 이미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단서는 남아 있었다.
지난해 10월 6일 제주공항의 항공교통관제 업무일지 보고 사항에는 '귀빈 항공기, 10월 6일, 오전 10시 56분 도착, 오후 19시 54분 출발'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귀빈 항공기가 의미하는 바와 해당 항공기의 이착륙 시간을 종합해 보면, 당시 김 여사는 윤 대통령 없이 홀로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 제주도 지역 축제에 참석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업무일지에 적시된 '귀빈 항공기'에서 '귀빈'은 통상 VIP를 뜻한다. 항공 약어 및 부호 사용에 관한 기준(국토교통부 고시)에 적시된 항공 약어에 따르면 VIP는 '귀빈'으로 표현된다. 당시 제주도 행사는 김 여사의 단독 일정으로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교권 보호 4법 계기 현장 교원과의 대화 일정을 소화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이 배포한 '김건희 여사, 제4회 서귀포 은갈치 축제 방문' 보도자료에도 윤 대통령은 언급되지 않는다. 즉 귀빈은 김 여사를 일컫는 의미로 풀이된다.
'귀빈 항공기'의 항공기는 민항기가 아닌 대통령 전용기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여사가 탑승한 비행기와 관련된 보고는 '오전 9시 50분 서울 이륙, 오전 11시 제주 착륙'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출발지가 김포나 인천이 아닌 서울이라면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또 보고된 내용 중 '오전 11시 제주 착륙'은 제주공항 관제탑 업무일지에 기록된 '오전 10시 56분 도착'이라는 시간과 사실상 일치한다. 이어 업무일지에 명시된 '오후 19시 54분 출발'은 김 여사의 일정과 맞닿아 있다. 당시 김 여사는 제주 서귀포항에서 오후 18시~18시 30분 사이 계획된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맡았다. 서귀포항에서 제주공항까지는 차량으로 1시간가량 소요된다. 김 여사가 행사를 마친 뒤 제주공항으로 이동해 제주를 떠나는 시간과 맞아떨어진다.
결국 김 여사는 지난해 10월 6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회 서귀포 은갈치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탔고, 윤 대통령이 없음에도 규정에 없는 분리 기준 특혜를 받으며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여부와 제주도 지역 행사에 참석한 배경 등에 대해 여러 차례 전화와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경호처는 23일 김 여사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 따른 항공기 분리 기준 적용과 관련해 "경호대상자의 공중경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공히 역대 정부 동일하게 관련 법률과 경호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다만, 경호대상자의 기동 수단 등 관련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경호보안상 확인해드릴수 없음을 양해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은 김 여사가 대통령 없이 홀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황제 의전을 받은 의혹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사실이라면 전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는 국정농단 사례가 될 수 있으므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 여사는 당일 축제에 참석하기 전 제주 해녀 어업인과의 대화, 반려해변 정화 활동, 해양 보호 단체 및 기관 관계자 간담회, 시식 행사 등을 가졌다. 김 여사는 이후 서귀포 은갈치 축제에서 축사를 통해 "제4회 서귀포 은갈치 축제 개막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저는 한국 방문의 해 명예위원장으로서 오늘 제주를 찾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여사의 서귀포 은갈치 축제 참석은 당시 주최 측이었던 서귀포수협의 김미자 조합장을 통해 이뤄졌다. 김 조합장은 "대통령실을 통해 문서를 보냈다"며 "오염수 관련으로 제주도 어업인들이 힘들다, 은갈치 축제가 있으니 제주도에 한 번 와서 어업인들을 위로하고 경제를 살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축제장에 제일 마지막으로 오신 걸 보면 방문 일정이 있어서 오신 것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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