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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님' 몸값 두고…찬반논쟁 불 붙은 정치권

  • 정치 | 2024-09-02 00:00

오는 3일 본격 실시 앞두고…여권은 의견 엇갈려
반대기류 강한 여권…'실전'엔 제도적 보완 필요


서울시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달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달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서울시 제공

[더팩트ㅣ국회=조채원 기자] 정치권에서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위해 지난달 6일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오는 3일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하면서다. 야권은 국내 돌봄서비스 시장 악화, 국제기준 위반 우려를 들어 반대한다. 여당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노동계 반발이 크고 법률 개정 사안이니만큼 다각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필요"…여권에선 의견 엇갈려

대통령실은 지난달 23일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외국인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국내법과 국제 협약 등을 고려하면서 불법 체류 등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대통령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외국 인력 활용 사업을 시범 추진하고 있고, 이를 통해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시급은 최저임금, 주휴수당, 4대보험 등을 감안해 1만3700원으로 책정됐다. 주 5일 8시간 근무를 가정하면 월 238만 원이다.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해 돌봄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을 도입됐지만 사업 시행 전부터 비용 논란에 휩싸였다. 홍콩(2797원), 대만(2472원), 싱가포르(1721원) 등 해외 사례에서의 시간당 평균임금을 비교해봐도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권에서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과 공동으로 차등적용 목소리를 냈다. 나 의원은 지난달 28일 SBS 방송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수요는 절실하다"며 "최저임금 적용이 되다 보니 중산층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헌법, 국제노동기구(ILO) 차별대우 금지협약 위반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ILO 협약이라든지 헌법상의 평등권은 무조건적인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고 합리적 차별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노동생산성과 생계비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외국인 노동자는 임금의 80%를 본국에 송금한다"며 "결국 그들의 가족생계비는 그 나라의 기준으로 따져주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 세미나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김해인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 세미나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김해인 기자

서울시는 올해 초 법무부에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간병, 돌봄 자격증을 보유한 외국인을 특정 활동 전문직종(E-7)으로 인정해 '가사사용인'의 형태로 고용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개별 가구와의 사적 계약을 통해 고용되는 가사사용인에게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 시장은 나 의원 등이 주최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홍콩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비용이 월 최소 83만 원, 싱가포르는 48~71만 원인데 이번 시범사업은 월 238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보통의 맞벌이 가정이 이용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합리적인 비용으로 양육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드리겠다는 것이 당초 제도 도입을 제안한 취지"라며 "지금과 같은 비용이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같은 여권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차등적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 장관은 장관 후보자였던 지난달 26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헌법(평등권), 국제기준(ILO 111호 협약), 국내법(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7월 전당대회 토론회에서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ILO 차원의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돌봄노동 가치 폄하·이주민 차별 강화' 반대기류 강한 야권

야권은 반대 기류가 강하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7월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고 하면서 더 낮추자고 하자면 이것이 최저임금이냐, 최최저임금이냐, 초저임금이냐"고 꼬집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할지 표결을 앞둔 시점에 밝힌 입장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자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야당들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국제 규범에 위반될 뿐 아니라 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강화한다는 이유에서다. ILO협약에 비준하지 않은 홍콩, 비회원국인 대만, 최저임금제가 없는 싱가포르 등과 제도적 여건의 차이가 크다는 점도 제시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수석최고위원은 지난달 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될 경우 돌봄 서비스의 질은 누가 관리할 것이며 행여 발생할지 모를 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며 "우리사회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공 영역에서 안정적인 서비스 체계만 이룩한다면 국내에도 왜 일할 사람이 없겠느냐"고 지적했다.

진보당, 녹색정의당, 기본소득당 등도 같은 취지로 당 차원에서 공식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미선 진보당 부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논평에서 오 시장을 겨냥해 "돌봄, 가사노동은 오히려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겨야 하며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노동"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 가치를 어떻게 존중하고 보장해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천만 서울 시민들이 기대하는 단체장의 모습"이라고 직격했다.

2024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9860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투표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뉴시스
2024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9860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투표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뉴시스

◆ 현실가능성·정책효과 논란 속 보완점은

여권이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다시 불을 지폈지만 실제 도입까지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가 6월 발간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의 쟁점과 과제 : 또 다른 최저임금의 설정은 가능한가?' 보고서는 "현행 법규정 및 제도 취지를 고려할 때 '더 낮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생산성이나 지불능력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더 낮추는 방향의 차등적용 논의는 최저임금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제도 목적인 인간의 존엄성 보장과 근로자의 생활 안정 등을 유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238만 원 지출이 부담스럽다는 게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저임금 가사관리사'가 저출생 해법이 될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의 쟁점 분석 및 제언' 보고서는 "가사 분야 외국인노동자의 도입이 여성의 출생율 제고를 위한 본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30년 이상 가사 분야 외국인력 제도를 도입 및 운영해 왔음에도 합계출생률의 유의미한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하락(1978년 도입한 싱가포르의 경우 2001년 1.41명에서 2022년 1.05명)하는 추세"라는 점에서다.

천소라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27일 YTN라디오에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현재 워낙 돌봄 인력이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숨통을 트는 일부 효과는 있을 것"이라며 "제도적인 허점이 있다면 보완하는 정책 설계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1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구체적 보완점에 대해 "전반적인 서비스업 일자리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만약 식당 등 가사관리사보다 임금이 더 높은 쪽에 수요가 있다면 노동시장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관리·감독, 혹은 사적 계약 관계에서 사고나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 등에 대한 대응 체계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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