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수입 없어 7월 초부터 건설현장 일용직…"현실 선택지"
후원 못 받는 원외 정치인…"제도적 방안 마련도 쉽지 않아"
[더팩트ㅣ성남=조채원 기자] 우연찮게 지난 주,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이 7월 초부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단 얘길 들었다. 총선 때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경기도 의원직을 사퇴한 이 최고위원은 지금 고정 수입이 없다. 자영업자인 아내 수입도 일정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 90여일된 아들 아빠 노릇을 병행해야 하니 여러 돈벌이를 고민했단다. 월·목요일은 최고위원회의 참석, 금요일은 방송 출연을 하고 있어 취직은 사실상 어려웠다. 기업체 입장에서도 당 '수석 최고위원'을 직원으로 고용한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런 결정일 테다.
매주 화·수, 때론 토요일 오전 5시 20분쯤. 이 최고위원은 성남 몇몇 인력사무소로 '오늘의 일'을 구하러 나선다. 인력사무소에서 그 날 일할 장소와 일이 정해지면 보통 7시 30분까지 알아서 현장 출근이다. 인력사무소를 찾은 첫 날엔 일이 없어 공(空)을 쳤다. 이런 날은 배달 노동자로 하루벌이를 하는데 20만 원을 벌어도 빠지는 기름값이 적잖다. 그에 비해 현장 일용직은 별다른 기술 없이도 적게는 하루 13만 원, 많게는 19만 원까지 번다. 몸은 더 고되지만 하루 수입을 가늠할 수 있고 일이 끝나는대로 통장에 일당이 꽂힌단 장점도 있다. 내손내발, 내땀내눈물로 무언가 일궈낸 현장에서 느끼는 보람도 쏠쏠하다.
이 최고위원을 만난 건 지난달 30일 11시20분 쯤. 성남 한 고급 주택가 옥상 방수 작업의 허드렛일꾼으로 전날 미리 일이 잡힌, 운 좋은 날이었다. 시의원 시절 지역구에서 오늘은 시다(일하는 사람 옆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조공'을 이르는 말)로 현장을 청소하고 자재를 날랐다. 그와 두 방수기술자 '선배님'들은 현장 인근 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 중이었다. 두 선배님은 84년생인 그, 88년생인 기자만한 딸과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낸 가장들이다. 한여름 아스팔트 마냥 맹렬히 끓는 김치찌개 3인분에 밥 한 공기가 더 놓였다.
"이기인씨 일 잘 하나요?"
땀으로 얼룩진 손으로 한 술 밥을 떠올렸던 선배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자기 본업이 아닌데 어떻게 잘하나. 그저 열심히 하면 돼."
그는 싹싹하게 일손을 돕는 아들뻘인 이 최고위원을 대견하게 여기는 듯 했다. 이 최고위원이 아기 아빠이자 정치인인 줄은 이날 안 사이다.
"잘 하길 바라는건 희망사항이고. 열심히 하면 돼.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걸 다 하면서 살아나가면 되는거야."
'자녀분들은 결혼 하셨느냐'는 기자 질문에 묵묵히 밥알을 삼키던 다른 '선배님'도 입술을 뗐다.
"집값이 너무 비싸 아이들이 밖에 나가 살 생각을 못 해. 정치가 잘못된 탓에 젊은 애들이 가정 꾸리고 아이 낳고 사는 재미를 누리질 못한다니까. 고생스럽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경험인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이들의 그다지 높지 않은 기대치조차 채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정치가 어떤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요새 보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정치해야 하는데 당을 위해 정치하는 것 같아. 선거 때나 국민 어쩌고 하면서 공약이고 연설이고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당선되면 '난 몰라' 하잖아.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이 정치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하는 일 없이 월급은 뭐할러들 받나."
이 최고위원은 "건설현장은 여야가 없는 정치 대통합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진보·보수로 편 가를 삶의 여유도 없고 정치인 '불신(不信)으로 대동 단결'이 대세란 점에서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달 24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보수 성향인데 보수가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인데 이재명 당대표 후보의 정치 행보는 동의할 수 없다는 근로자들도 많이 봤다"며 "경기도 광주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난 분은 연구원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알앤디 예산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더라, 내가 다 낯 뜨거웠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정치가 안 그래도 고달픈 현재를 보듬기커녕 미래를 저버린다고 느낄 때. 정치인인 이 최고위원이 가장 뼈아프게 느끼는 순간이다. 왜 수십 년 멀쩡히 연구원 하던 사람이 건설현장에 와야 했나. 어쨌든 실직한 사람이 그나마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일용직인데, 건설 경기가 암울해 요새 조공 일조차 구하기 힘든 걸 정책 입안·결정자들은 알고 있나. 같은 돈 버는데 왜 누군가는 생리 현상도 제대로 해결 못하며 일해야 하나. 정치인 이기인에게 마구 떠오르는 상념들은 그의 어깨를 시멘트 포대처럼 묵직하게 내리누른다.
"석면으로 된 천장에 조명을 박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현장엔 가루가 많이 날려요. 화장실에서 대충 닦고 집에 가서야 샤워를 할 수 있죠. 아직까지 노동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잘 마련돼 있는 현장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당대표실이 화장실 앞이냐'고 했던 정치인, 일 하는 데서 몇 걸음 가면 화장실 갈 수 있는 거 감지덕지 해야 해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이 최고위원과 선배님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11시 넘어 점심 먹었는데, 30분이 막 지난 시간이었다.
"아이고, 해 난다. 어쩌냐."
영상 32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보된 날. 야속하게 덥고 습한 날씨 속 그늘볕 하나 없는 곳에서 계속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얼른 마치는 게 낫다는 게 두 전문가의 판단인 듯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쉬운 축의 일이고 날씨를 고려해 일당도 센 편이라 했다. 작업 현장에 동행해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경비원에 가로막혔다. 두 선배님이 오랜 기간 품었던 정치에 대한 아쉬움을, 답답한 속과는 달리 삭삭 시원스럽던 비질 소리를,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빠르게 녹던 그날의 장면을 더 담아내지 못한 이유다.
작업이 끝난 3시쯤. 땀방울이 옷에 무겁게 달라붙은 이 최고위원을 인근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25kg 포대 80여개를 옥상까지 계단으로 들어 옮기고 방수 페인트 바르기 전 사전 작업을 마치고 왔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라 조공은 필요없을 거란다. 약속된 일당은 17만 원. 세금, 인력사무소 수수료를 떼고 손에 쥐어지는 건 15만 원 남짓이다.
이 최고위원은 정치활동을 이어나가려는 원외 인사들이 건설 현장 일용직, 배달 플랫폼 노동, 대리운전 등에 종사하는 건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게 그 이유다. "최고위원이면 직책 당비도 내야 하고, 생계도 꾸려야 하고 나갈 돈이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원외 인사들이 정치활동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너무 제한적이에요. 선출직이 아니면 후원회를 열 수 없으니까요. 선거 때 아니면 절 후원하고 싶은 분들이 있어도 제도적으로 못 해요. '돈도 없는데 어떻게 정치를 해'란 말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제도적 방안은 없을까. 이 최고위원은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선출직인 국회의원들조차도 월급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원외 인사들의 수입 보장 방안을 논의하는 것조차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을 거란 얘기다. 다만 그는 "이 일을 해보니까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정치인들이 보좌진의 보고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경험은 꼭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거지만 '정책적으로 이런 걸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아끼고 싶어요. 현장을 경험하면 적어도 정치권에서 나오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말,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결실이에요. 그래서 저 같은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경험에 따른 짬바'가 쌓이면 국민들의 공감할 만한 대안들과 정책들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요."
☞이기인 최고위원은 누구? 1984년생. 제7·8대 성남시의회 의원(2014~2022)을 지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소장파이자 친이준석계로 불렸던 '천아용인'의 '인'을 담당했다. 지난해 12월말 개혁신당에 합류하며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당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지난 3월 경기도의회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개혁신당 첫 전국당원대회 2위 득표자로 '수석 최고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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