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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 풀뿌리 정당 조직?…20년 만에 지구당 부활할까

  • 정치 | 2024-06-30 00:00

정치신인 형평성·지역 당원 참여 확대 등 지구당 필요성 커져
고비용 구조·정치자금 문제 해결이 관건


정치권은 지난 2004년 불법정치자금 창구로 전락했다며 지구당을 폐지했다. 그러나 20년 만에 지구당 부활 주장이 부상해 주목된다. /배정한 기자
정치권은 지난 2004년 불법정치자금 창구로 전락했다며 지구당을 폐지했다. 그러나 20년 만에 지구당 부활 주장이 부상해 주목된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최근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구당 부활'이 떠올랐다. 지구당은 과거 지역구마다 존재했던 정당별 지역사무소를 말한다. 각 지역 당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창구로서 역할을 했으나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불법정치자금의 창구로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지난 2002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불법 대선자금 전달 사건)이 발생한 뒤 2004년 '오세훈법'(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지만 당협은 정당법상 조직이 아니고 유급 직원을 채용할 수도 없어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 또 지역구에 사무소를 둘 수 있고 합법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현역의원과 달리 원외인사, 정치신인들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따라 지구당 부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논의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뤄졌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지구당 부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다. 최근 당권 도전에 나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다"며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3일 부산에서 열린 당원 콘퍼런스에서 당원권 확대 방안으로 지구당 부활을 언급했다.

입법 논의에도 시동이 걸렸다. 민주당이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당원 수가 250만 명에 육박하고 당원들의 정치참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 및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창구로서 지구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 1호 법안으로 참여정치 활성화법(지구당 부활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의원 30여 명이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은 다음 주 의원총회를 열고 지구당 부활법의 당론 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 1호 법안으로 참여정치 활성화법(지구당 부활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의원 30여 명이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국회사진취재단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 1호 법안으로 참여정치 활성화법(지구당 부활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의원 30여 명이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국회사진취재단

김 의원은 통화에서 "차떼기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 원인은 지구당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지구당이 비용이 과다하게 든다는 등의 비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 돈을 갖다 쓴 건 중앙당의 대선 후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당시에는 정치적 투명성도 낮았고 시민의 참여나 감시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있었다"면서 "이제는 당원 1000만 시대가 도래했고 국회의원 후보까지 경선으로 뽑는 시대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통로를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민주당 재선의원도 통화에서 "옛날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지구당이 폐지될 때만 해도 후원제도가 없었고 비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제도적으로 보완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지구당에 대해 "당의 문턱이 낮아져 당원들이 당에 접근하기 용이해진다. 당원들의 참여와 주인의식을 제고할 수 있다"며 "원외의 정치 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지구당은 당원과의 만남, 의견을 교류하고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장소"라며 지구당 부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서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시 당원 여론과 당내 여론과의 괴리를 언급하며 "지구당이 있었다면 이런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당내 선거인 원내대표 선거에서 당원 여론조사를 반영키로 당헌을 개정한 데 대해서도 그는 "근본적으로 지구당을 통해 지역 당원들과의 소통을 늘리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구당 부활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지만 조국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구당 부활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지만 조국혁신당은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보적이다. /남윤호 기자

국민의힘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김 의원과 비슷한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내놓았다. 권영세·안철수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원외 인사들은 지구당 부활에 한목소리를 냈다.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정치신인이 활동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라며 지구당 부활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국민의힘 원외위원장도 통화에서 "현역의원과 경쟁하기 매우 불리하다"며 "현역의원과 달리 지역사무실도 둘 수 없고 후원금도 모금할 수 없다. 지구당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했다.

반면 지구당 폐지를 이끌 오세훈 서울시장을 필두고 홍준표 대구시장·유승민 전 의원 등 유력 주자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특히 홍 시장은 "(한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외위원장의 표심을 노린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조국혁신당도 지구당 부활에는 유보적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장식 혁신당 의원도 "지구당 부활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지구당이 더 이상 '돈 먹는 하마'가 되지 않을 만한 정치문화의 혁신이 이루어졌는지, 이를 막을 제도적 대안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복우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장은 통화에서 "현역의원과 원외 신인과의 형평성 등을 감안할 때 필요성이 있다"며 "과거 차떼기 문제 등 불법정치자금의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당 선거보조금, 정당보조금 제도가 있고 중앙당 후원회도 설치됐다. 과거와 달리 현금 흐름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일장일단이 있는 문제"라고 봤다. 그는 "정당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서도 "지구당에서 돈을 많이 쓴다는 게 과거 문제로 지적됐는데 이 문제가 재발할 여지는 남아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당원 수가 많아지고 당원들의 목소리를 관리하기 위해 현재는 지구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풀뿌리 정당 조직이라는 점에서 있으면 당연히 좋다"며 "이상적으로는 지구당을 통해 당내 여론을 상향식으로 반영하며 지도부를 견제할 수 있다. 원외 인사들, 정치 신인들과 현역의원과의 형평성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렇게 돼도 과연 돈 없는 젊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을지, 결국 돈 많은 사람들만 유리해지는 것 아닌지는 의문"이라며 "온라인 등 정치참여 플랫폼이 있는데 돈이 많이 드는 지구당을 운영해야 하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지구당을 통해 정당의 하부구조를 강화한 뒤 문제점은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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