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초반부터 곳곳에 뇌관…협치 난망
대화·타협 노력 필요…당정관계 재설정 제언도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폐원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여대야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도 여소야대 국면 속에 거대 양당의 지속적인 정쟁으로 얼룩졌다. 임기 끝까지 국민을 실망시켰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22대 국회는 타협과 양보의 정신에 입각하는 새로운 국회상을 보여줘야 할 때다. 새출발하는 국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지난 국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되짚어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가 출발대에 섰다. 이번 국회는 직면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산적한 국정과제를 정부와 초당적으로 협력해 해결할 책무가 있다. 국가경쟁력 제고와 미래세대를 위한 여러 개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적대적 대결 정치와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고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에 대한 양보와 타협이 실종되면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범야권이 192석을 확보하고 있어 22대 의회는 지난 국회와 마찬가지로 힘의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헌법 개정과 대통령 탄핵소추,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200석에는 8석 모자라더라도 야권은 합의되지 않은 쟁점 법안을 단독으로 입법할 힘을 지녔다. 강력한 의회 권력을 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새 국회에서도 21대 국회처럼 여야 간 갈등과 대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 국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희망적이지 못하다. 또다시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둘러싼 난타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전날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한우산업지원법, 농어업회의소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법안,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등 야권은 21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4개 법안뿐 아니라 가맹사업법과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가격안정법, 채 상병 특검법까지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법안 발의→본회의 강행 처리→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재의결하는 장면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이런 과정에서 여야 간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지난 국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국회 파행 등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사견을 전제로 "거부권 행사로 대표되는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22대 국회의 가장 큰 문제 소지로 보인다"며 "정치의 논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국회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협치가 실종된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임기 초반부터 거부권 정국이 예상돼 이번 국회도 파란만장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면서 "국회가 국민을 위해 정말로 협치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원 구성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는 점도 협치의 기대감을 떨어뜨린다. 원내 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최종 관문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둔 운영위원회장을 갖겠다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의 외회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실제 원 구성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때문에 서로 양보 없는 질주가 지속된다면 22대 국회도 지난 국회처럼 지각 개원을 면하기 어렵다. 21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핵심 상임위를 두고 대립하면서 개원식은 임기 시작 후 47일 만인 2020년 7월 16일 열렸다. 상임위 배분 문제는 여야의 양보와 절충이 요구되는데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의 국정과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여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야당 사이에서 쟁점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쟁점을 얼마나 원만하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지만 힘의 균형에 따른 밀어붙이기와 발목 잡기의 구태가 반복돼왔다. 여야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당리당략에 치우치는 등 변화하지 않아서다. 정치권 안팎에서 여당은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대우하고, 야당은 국민의 삶과 국가적 과제에 있어서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은 국가기관 중 신뢰도에서 최하위에 머무는 국회의 협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여당과 야당의 협력 수준에 대한 인식은 4점 만점에 1.8점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중앙정부와 국회의 협력 수준에 대한 인식은 2.0점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통화에서 "국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가장 큰 원인은 상대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동료라는 인식보다는 아군과 적군 식의 이분법적으로 나눠 상대를 대하다 보니 흔히 말하는 대화와 타협이 안 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쟁점의 해법을 찾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는 게 필요한데도 근래에 들어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훨씬 안 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21대 국회 마지막 날에도 여야 간 협상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9일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차등 지원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여당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거부했다. 쟁점 민생 현안은 다시 꽉 막히게 됐다. 다만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통화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이 내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는 글로벌 경제의 심각성과 재정건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상생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요인으로 당정관계의 재설정이 꼽힌다. 야권이 여당에 대해 '용산 출장소'라 비꼬는 데는 수직적 당정관계라는 인식이 깔렸다. 심지어 민주당은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결과를 두고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여당의 보조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운명공동체라지만 수직적 당정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당정관계일 때 생산적·유기적인 정치가 가능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 전 교수는 "직설적으로 대통령이 여당을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대했기에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고 본다"라며 "윤 대통령이 당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국민의힘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돕고 국민의 편에 서서 정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점차 대통령의 힘이 빠지겠지만 아직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난 상태"라면서 "차기 여당 대표는 용산을 향해서도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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