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채상병 특검법' 처리 과정서 고성·항의
끝까지 '극한 대치'…민생 법안도 무더기 폐기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여야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도 고성을 지르며 입씨름을 벌였다. 폐원 직전까지 대치 정국임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말 그대로 끝까지 정쟁의 연속이었다. 22대 국회에서도 남는 자와 '여의도'를 떠나는 자가 석별의 정을 나눌법한데 여야는 마치 막판까지 '물'과 '기름'처럼 융화하지 못했다. 오는 29일 4년의 임기를 마치는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받는다.
28일 국회 본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재의의 건이 상정됐다. 재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총출동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된 무소속 윤관석 의원과 공천 배제에 반발해 민주당을 탈당한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이 불참했다.
국회의 '고질병'과도 같은 장면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재의요구 이유를 설명하는 중에서 나왔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양심에 걸리지 않느냐", "대표적인 정치검사가 윤 대통령이었다"고 외쳤다. 옆자리에 앉은 장경태 의원은 "대통령이 수사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민주당 의석에서 "짧게 해" "빨리 들어가"라는 말도 나왔다. 한 의원은 "한동훈(전 법무부 장관) 따라 하느냐"고도 했다. 여당은 "21대 조용히 마무리하자"고 응수했다.
이어진 찬반 토론에서 여야의 고성은 더 격해졌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반대 토론 말미 "(박정훈)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수사자료 일체를 경찰에 전달해 의미 없는 일을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않았으니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축소되고 은폐됐냐는 말인가"라고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의원이 "부끄럽지 않냐. 국회의원 양심이 없다"며 호통쳤다.
박주민 의원은 차분히 원고를 읽으며 여당 의원의 찬성을 설득하다 발언 시간 종료로 마이크가 꺼진 뒤 큰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의석을 바라보며 "균형 잡힌 근거하에서 무엇이 진실을 더 밝히는 데 적합하고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지 제대로 된 판단을 해주시면 좋겠다.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호소드린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여당 의석에서는 "사실만 말하라" "양심에 손을 얹고 얘기하라" 등 온갖 고성이 터져 나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반대 토론 이어 연단에 오른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발언이 시작하자마자 목소리가 나오는 여당 의석을 보며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강 의원의 반대 토론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여야 의원들은 자리를 이탈해 투표장 앞에 줄지어 늘어섰다. 끝까지 경청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미 당별로 찬반 당론이 정해졌다고는 하지만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자세는 비판받아 마땅할 대목이었다.
재의결에 부쳐진 채 상병 특검법은 결국 부결·폐기됐다. 재석 의원 294명 가운데 찬성 179명, 반대 111명, 무효 4명으로 의결 정족수(196표)에 모자라 법률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방청석에서 표결 결과를 지켜본 예비역 해병대원들은 "너희들은 아들도 없느냐",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 "국민의힘이 보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말없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민주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방청석을 올려봤다.
야당은 '선(先)구제 후(後) 구상권 청구'를 골자로 하는 ‘전세사기특별법’과 운동권 특혜 여지가 있다며 여당이 반대한 '민주유공자법'도 여당의 불참 속에 강행 처리했다. '농어업회의소법안', '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안',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법률안도 의사일정 변경 절차를 거쳐 처리했다. 끝내 협치는 없었다. 마지막까지도 여야는 민생 법안을 뒷전으로 미뤘다. 1만6000개의 각종 법안은 무더기로 폐기된다. 이게 21대 국회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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