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은 운명공동체"...갈등 해소 아니었나
이철규 긴급 기자회견, '사천' 논란 재점화
'친윤·친한' 대결 구도에 당 안팎 우려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실을 상대로 이종섭·황상무 사태를 조기 수습하고, 친윤(친윤석열)계가 제기한 비례대표 공천 문제를 일부 수용했다. 최고조에 달했던 당정 갈등이 어느 정도 누그러드는 양상이다. 다만 '윤·한 갈등'에 이어 공개적으로 불거진 '친윤·친한 대결 구도'는 또 다른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오전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조기 귀국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를 언급하며 "최근 여러분들이 실망하셨던 문제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같은 조치가 민심에 순응하는 일환이었다고 평가하며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총선 승리라는 대의 앞에 당정이 손을 맞잡았다는 점을 피력한 셈이다.
앞서 이 대사는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받던 중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도피성 출국' 논란을 빚었고, 황 수석은 기자들과 점심 식사 자리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꺼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한 위원장은 '이종섭·황상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민심에 민감해야 한다"며 사실상 대통령실을 향해 결단을 촉구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심상치 않은 여론의 추이에 한발 물러나게 됐다.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출마자들의 호소와 대통령실 출신을 비롯한 친윤계 인사들의 고언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으로서는 대통령실의 조처에 부담을 덜 수 있게 됐고,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불거질 수 있었던 당정 갈등도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20일 오후 친윤계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돌연 비례대표 공천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이 불투명했다며 일련의 상황을 조목조목 따져 들었다. 한 위원장에 대한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당초 국민의힘에서는 비례대표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고심해서 결정한 후에 국민의미래로 이관하기로 뜻을 모았지만 지도부에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저는 우리 당 공동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비례 공천 과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며 "당규에 근거해 비대위원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국민의미래 공관위원장에게 당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 특히 호남 지역 인사, 노동계, 장애인 종교계 등에 대해 배려를 개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밀실에서 권한 없이 청탁한 게 아니라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책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18일 비례대표 명단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호남 인사와 사무처 당직자 등이 제외됐다며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한동훈 비대위' 내 비대위원 2명이 포함되고, 생소한 이름의 공직자 출신 2명이 당선권에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지난 19일 "원하는 사람, 추천하는 사람이 안 됐다고 그걸 사천이라고 얘기하는 건 굉장히 이상한 프레임 씌우기"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사천 논란의 당사자는 한 위원장이라는 점을 넌지시 내비쳤다. 이 의원은 "부득이 윤재옥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호남권 인사와 사무처 당직자 배제라는 잘못된 비례 공천을 바로잡아주길 건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윤 원내대표는 '협의가 다 된 것 아니냐'고 했고 저는 '없었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윤 원내대표에게 '이렇게 협의 없이 단독으로 밀실에서 이뤄지면 어떻게 함께 하겠느냐. 함께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도 맞다"며 "바로 잡아주기를 바라는 충정이었고 이게 전부다"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 문제를 두고 자신과 한 위원장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발표 직전까지 명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례 추천과 관련해 한 위원장과 충돌할 이유가 없다"며 "일요일(17일) 오후 4시 반 이후부터 한 위원장과 대면한 사실도 없다. 오로지 짧은 전화 통화를 한 게 전부고, 그 통화도 지극히 사무적이고 의견을 전달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는 식의 왜곡 보도가 나무한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기자들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 기자회견 약 2시간 뒤 한 위원장 측인 장동혁 사무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우선 총선을 20일 앞둔 중요한 시기에 당의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공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당내 잡음으로 인해 공천 결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그로 인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 당원들은 물론 우리 당에 지지를 보내주시는 국민들께서 전혀 바라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당 안팎에서는 총선 20여 일을 앞두고 세력 간 충돌이 벌어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총선 출마자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여의도에서만큼은 자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 갈등은 순번 조정으로 이어졌다. 국민의미래 공관위는 20일 밤늦게 일부 조정된 비례대표 명단을 발표했다. 당선권(1~20번)에는 4선 출신 조배숙 전 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이 13번으로 새로 이름을 올렸다. 당직자 출신인 이달희 전 경북 경제부지사도 17번에 배치됐다. 호남 인사와 사무처 당직자를 배려해달라는 친윤계의 요구가 작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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