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서 "모든 독립운동, 합당한 평가 받아야"
"한일 '새 세상'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어"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번째 3·1절 기념사 핵심 키워드는 '자유주의 확대'였다. 윤 대통령은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모든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대통령실은 '자유주의 비전'을 담는 식으로 통일관을 수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제105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라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구절을 직접 언급하며 "기미독립선언의 뿌리에는 당시 세계사의 큰 흐름인 '자유주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가 '자유주의 확대'의 틀 속에서 이뤄졌다는 역사관을 재강조한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광복절과 3‧1절 기념사 때마다 독립운동이 자유 인권 법치의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언급해 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윤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를 통해 독립운동사 전반을 재조명했다. 항일 무장투쟁뿐 아니라 외교·교육·문화 등 다양한 독립운동 노선도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었다며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제국주의 패망 이후, 우리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모든 선구적 노력의 결과였다"며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어느 누구도 역사를 독점할 수 없으며, 온 국민과, 더 나아가 우리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이 자랑스러운 역사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제 치하에서 폭력 투쟁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외교 각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최선을 다해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반추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다만 이승만 전 대통령 등 특정 지도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외교 독립 노선을 이끈 대표적 인물이다. 이 관계자는 "오늘 연설에 고속도로를 닦고 원자력 건설하면서 우리의 산업화 이뤘다고 (적시)한 것은 결국 두 분 대통령의 결단을 시사하는 것"이라면서도 "굳이 연설에 특정한 지도자 이름을 거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시각에 따른 통일관도 천명했다. 현재는 2600만 북한 주민이 전체주의 억압, 통치, 궁핍, 절망의 늪에 갇혀 있는 상황으로 독립운동과 자유주의 구현이 미완성인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통일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 가치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통일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진시켜야 한다면서 '자유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대의 통일 유훈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북한 헌법에서 삭제하는 등 통일을 부정한 데 대한 반박 성격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가며, 최악의 퇴보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우리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멸의 주적으로 규정했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통일은 비단 한반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역사적, 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다시 일으켜, 자유를 확대하고, 평화를 확장하며,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 끝에 있는 통일을 향해 모두의 마음을 모아야 한다"며 "저희 정부가, 열정과 헌신으로 앞장서서 뛰겠다"고 거듭 밝혔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은 이날 기념사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할 경우 단계적으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과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등 전폭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념사는) 2022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담대한 구상의 연장선"이라며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핵과 미사일 위기 극복하고 남북 간 필요한 경제 정치 안보 협력을 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담대한 구상의 마지막 지향점은 결국 남북한 국민 주민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의 남북 관계에 대해선 "그때(담대한 구상 발표) 이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우리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건 어떤 각급에서, 어떤 주제에 관한 남북 간 대화에도 우리는 열려 있다는 것"이라며 "대화가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대화를 환영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열려 있다는 입장이고 북한 당국의 결심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유 통일'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통일 비전을 조만간 수정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통일 정책은) 담대한 구상과 1994년 나온 우리나라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 병행되고 있다. 다만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는 자주·평화·민주라는 3대 원칙이 있고 화해 협력 단계, 남북 연합 단계, 통일 국가 완성이라는 기계적인 3단계의 통일 방안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 비전이 누락돼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통일관, 통일 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30년 넘게 우리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 대해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반드시 관철해야 할 자유 민주주의 통일, 북한의 모든 주민이 함께 자유와 평화와 번영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당위이고 명분"이라며 "지난 70년 분단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이 서로 과 극으로 다른 결과를 야기한 것도 모든 사람이 무엇이 옳고 원하는 것인지를 확연하게 대답을 해준다. 그런 비전, 철학적인 콘텐츠를 조금 더 담아내면서 개념화하고 기존의 통일 방안을 다듬어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본과 관련해선 '자유주의 확대'를 위한 국제 연대라는 틀 속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는 메시지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측이 먼저 '강제징용 피해배상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양국은 정상 간 셔틀 외교를 재개하고 관계를 복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함께 풀어나간다면, 한일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언론에 보도된 이달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대통령실 관계자는 "3월 중 한일 정상회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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