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작으로 대전, 울산, 창원 방문
지역숙원사업 추진 약속…野 "선심성 공약 남발"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부터 전국을 돌며 지역 민심을 겨냥한 정책들을 발표하는 것을 두고 야당은 "대통령이 여당 선거대책위원장인 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역대 정권부터 반복돼 온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이 재차 불거진 모습이다.
지난달 4일부터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겸해 시작된 '민생토론회'는 이달부터 지방으로 무대를 옮겨갔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 지난 13일 부산을 찾았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불발된 직후 2개월 만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16일 대전, 21일 울산, 22일 창원에서 민생토론회를 연달아 가졌다. 다음 주에도 지방에서 민생토론회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토론회 때마다 지역 숙원 사업들을 짚으면서 정부가 예산 투입 등을 통해 적극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22일 경상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원전 산업 재도약과 경남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3.3조 원 규모의 원전 일감과 1조 원 규모의 특별금융을 공급하고,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방위·원자력 융합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20조 원 이상의 지역전략산업 투자가 이뤄지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노후화된 창원산단을 용도 규제를 풀어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지는 융복합공간으로 개조하고, 국가나 지자체가 산업단지 조성하면 기업이 토지를 수용해 활용토록 하는 '기업혁신파크사업'을 거제에서 먼저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부산에서는 '부산 특별법'을 제정하고 여건을 개선해 물류와 금융, 첨단 산업이 어우러지는 '글로벌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지역 숙원 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북항 재개발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에서는 대선 공약이기도 한 '제2 대덕연구단지 조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연구개발특구를 나노,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방위산업 클러스터로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구상도 내놨다. 아울러 국가연구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석사는 매월 최소 80만원, 박사는 매월 최소 110만원의 연구생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전날(21일) 울산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비수도권의 그린벨트를 대폭 해제해 지역전략산업을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3㏊(약 9000평) 이하 농지를 농지 이외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관권 선거'라며 문제 삼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민생 토론회'를 명분으로 각종 선심성 지원책을 약속하며 여당 총선 지원사격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며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민생토론회를 빙자한 사전선거운동이고, 관권선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선거를 앞두고 장관들 몸가짐부터 조심시켜야 할 대통령이 작정한 듯 여당 선대위원장처럼 사전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의 중립의무' 위반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르면 공무원은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수 없는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발표하는 등의 행보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민생토론회는 집권 3년차 최우선 목표인 '민생 회복'을 달성하기 위한 행보이며, 선거와 관계없이 연중 내내 지속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권 공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도 윤 대통령이 방문한 창원에선 경남 지역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에 대해 "엄청나게 큰 보따리를 풀어놓지만, 정작 제대로 된 것을 찾을 수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감언이설 잔치"라며 비판했다.
대통령이 지방을 돌며 지역 맞춤형 정책들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관건 선거'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대 정부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대통령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해왔지만, '법 위반' 문제로 불거진 경우는 극히 적었다. 대표적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사모가 다시 한번 뛰어달라",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 등의 발언을 해 큰 파장이 일었다. 야당은 대통령이 공직자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반발했고, 이후 대통령 탄핵안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며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정부 업무 보고에서 새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원 가운데 3명이 강원도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라고 말해 당시 야당의 반발을 샀다. 전임 문재인 전 대통령도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 현장 방문 행보가 늘자,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총선을 겨냥한 행보라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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