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절단 이끌고 '세일즈 외교'
부산박람회 유치전 참패…'전략 부재' 비판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3차례 해외 순방을 통해 15개국(중복 포함)을 방문했다. 국빈 방문만 7차례다. 기간으로는 46박 72일이다. 이를 통해 한 차례 이상 정상회담이나 약식 회담, 환담을 한 국가는 81개국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공급망 등 각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주력하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지렛대 삼아 한미일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순방 성과를 냈다. 그러나 미일 외교에 치우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고, 전력을 쏟았던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앞으로의 해외 순방은 더 전략적으로 계획,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사절단과 중동·아시아·유럽으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에 동행한 기업인들 앞에서 스스로를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처음 소개하며 세일즈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칠 것임을 예고했다. 또한 "정상 순방외교는 우리 국민과 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돕는 최적의 플랫폼"이라고도 했다. 내수시장이 좁은 만큼 정상 순방을 통해 국내 기업의 수출과 수주를 지원하고 국내 투자를 유치토록 해 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 분절, 에너지 수급 불안 등 글로벌 복합 위기에 정상 외교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재임 중 대한민국 국민과 기업이 진출해 있는 모든 나라의 정상들과 만나고 국민과 기업을 뒷받침하겠다"고 천명할 만큼 세일즈 외교를 위한 해외 순방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1월 101개 기업과 동행한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6월 윤 정부 취임 후 최대 규모인 205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간 베트남, 10월 각각 130명, 59명의 경제사절단과 함께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11월 영국과 12월 네덜란드(37개 기업 동행)까지 모두 국빈 방문을 통해 '1호 영업사원'으로 활약했다.
주로 공급망 구축·해외수주·국내투자 유치·첨단산업 협력에 집중했다. 먼저 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방문 계기에 총 502억 달러(약 65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 또는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제2의 중동의 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또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첨단기술 강국인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을 방문해 인재 교류와 첨단 기술 협력 등 중장기적 성장 기반의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는 '반도체 동맹' 수준으로 격상해 반도체 산업 전 영역에 걸쳐 강력한 전략적 연대를 구축토록 했다. 이 외에 핵심광물 공급망, 인프라, 탄소중립 분야에서 방문국들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했다. 우리 기업의 시장 진출을 돕는 제도 기반도 구축했다. 윤 대통령의 지난 9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필리핀과 '높은 수준의 관세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했다. 또 영국 국빈 방문 때는 FTA 개정 협상 개시를 선언해 새로운 통상 환경에 맞게 개선·보완하기로 했다.
다만 순방 계기에 정부 기업 간 맺은 계약은 대부분이 MOU로, '약속' 차원에 그쳐 온전한 성과라고 보기 어렵고, 이미 기업 간 긴밀히 협력해온 것을 정부가 대통령의 순방 업적으로 과대 포장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美日과 "새로운 수준 관계" 격상...중국과는 회담 1차례
윤 정부는 역대 정권의 지역 구상처럼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인도 태평양 지역으로 시야를 확장해 역내외 국가들과 양자·지역·글로벌 현안에 대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다는 인태 전략을 갖고 있다. 또 대북 확장 억제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밀착하고 자유민주 진영을 중심으로 한 '가치외교'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외교 기조는 순방 횟수에서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올해 들어 7차례 만났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안을 발표하면서 냉랭했던 관계가 풀렸고, 양국 정상이 서울과 도쿄를 오가면서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정상 외교의 효과는 곧바로 체감될 정도였다. 양국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를 복원했고 안보정책협의회, 경제안보대화, 외교차관전략대화 등 정부간 협의 채널도 다시 작동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4월 5박 7일간의 미국 국빈 방문, 8월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9월 유엔총회 참석 계기에 만났다. 특히 미·일과는 캠프 데이비드 회의를 통해 한반도 역내 공조에 그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체에 준하는 관계로 진화했다. 협력 분야도 안보는 물론 경제, 첨단기술, 환경, 보건, 여성, 인적교류 등으로 대폭 넓혔다. '3국의 공동 위협에 즉각 공조한다'는 협약도 맺었다.
반면 중국과는 올해 한 차례 정상급 회담을 갖는 데 그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머문 동안 리창 중국 총리를 약 50분 간 만나 북한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다. 지난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개최도 기대됐지만, 두 정상은 3분가량 서서 대화를 잠시 나누는 데 그쳤다. 방문국을 보더라도 올해 미국은 4번, 일본과 프랑스는 각각 2번 방문했지만, 중국은 취임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은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기 전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선(先) 방중' 관행을 이어왔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모두 취임한 해에 중국을 방문했다.
대중 관계 개선은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중요한 정상외교 과제 중 하나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북한 위협을 막고 한반도 안정을 확대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대북 압박을 호소하고 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이 불가한 구조다. 한미일 간 안보 밀착은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적으로도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중국의 요소수 수출 제한 등 공급망 위기가 우려되면서 양국 간 정상 외교는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내년 해외순방 일정을 계획할 때는 국익을 우선하는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80여 개국 정상 만났지만 '엑스포 유치 실패'
윤 대통령은 '글로벌 중추국가 구현' 목표에 따라 해외 순방을 통한 다자외교에도 집중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부터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9월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엔(UN)총회,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 주요 다자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특히 올해는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해 많은 국가들과의 양자 회담에도 힘썼다. 다자회의 계기에만 70여 개국 정상들을 만났다. 산마리노, 모리셔스, 부룬디, 몬테네그로, 레소토 등 이름조차 생소한 국가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네스북에 한 달 안에 가장 많이 정상외교를 한 현대사의 대통령으로 신청해 볼 예정"이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정확한 정보 수집과 방향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실효성 없는 회담만 진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해외 순방 비용으로 올해 총 578억 원을 쓰는 등 역대 최대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잦은 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따가워졌다.
결과적으로 세계박람회 유치전이 예측을 훨씬 빗나간 실패로 막을 내리면서, 윤 대통령의 다자 외교는 체감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다자회의 참석을 계기에 광물 자원이 풍부한 신흥공업국·개발도상국과 정상 외교를 펼쳐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망을 구축하고, 인프라 지원 등 공적 개발원조(ODA) 지원 확대를 약속해 글로벌 중추 외교의 기조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또 대통령 순방비가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순방 비용이 든다고 해서 (해외에서) 투자 유치 활동을 멈추면 오히려 국가적 손해"라고 했다.
◆동행 경제인과 잦은 오·만찬..."내년엔 민생, 국내 정치에 더 집중해야"
순방 계기에 경제인을 격려하고 기업인 간 교류를 지원한다는 명분 하에 대통령과 정부 인사, 재계 인사가 반복적으로 만나는 데 대해서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윤 대통령의 13차례 순방 중 7차례나 동행했다. 전임 대통령 때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순방 일정을 살펴보면 UAE와 스위스, 일본,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순방에 동행한 대기업 총수가 윤 대통령과 '간담회'를 이유로 오·만찬까지 함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11월 엑스포 개최지 투표 전 파리 방문 당시, 윤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과 늦은 시간까지 비공개 일정으로 저녁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분간은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보다 민생과 국내 정치를 안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최근 추세는 대통령들이 해외로 많이 가는 것인데 이는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 특히 올해는 부산 엑스포 유치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현재 국내 여건이 정치적으로도 경제도 너무 좋지 않다"며 "국내 민생이나 정치적인 안정 부분에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내년에도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해외 순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내년 4월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해 상반기 순방 일정을 줄인다는 기류지만, 내년도 대통령 해외순방에 편성이 확정된 예산은 올해보다 22억 원 인상된 271억1300만 원이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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