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비공개 사유' 비슷
해외순방 비용 공개부터…직원 검색 시스템까지
'자의적 해석' 여지...'공개 의지'에 달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國政)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 1996년 제정된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명시된 목적이다. 부처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정보 공개 범위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추세지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실은 예외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대통령실 청사를 통째로 이전하고 '열린 용산시대'를 천명하며 출범했지만, 정작 대통령실 대상 정보 제공 요구에는 소극적이다. 대통령실의 정보공개 요청 처리 현황을 살펴보고, 정보공개 및 비공개의 법적 근거와 효과, 해외 사례 비교 등을 통해 최고 권력기관의 바람직한 정보공개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을 비롯해 모든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있다. 1998년 법 시행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공공기관이 선제적, 능동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발전해 왔다.
정보공개법이 있는 대다수 국가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 기밀 유출과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비공개 사유로 정해놨지만, 최고 권력기관이 직원명단이나 예산 집행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는 국가도 적지 않았다. 결국 '공개'와 '비공개' 결정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이 보다 공공의 이익에 적합한지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관건인 셈이다. 이를 위해 자의적 해석을 최소화하도록 입법 노력과, 공개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심판 기구를 구성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보 위협' '사생활 침해' 등 비공개 사유, 국가 공통
우리나라는 1996년 12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보공개법을 제정했다. 법은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정보에 대해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8개 사항을 규정해 비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른 법률이 비공개로 규정하거나 △국가안보·외교 사항으로서 공개되면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거나 △진행 중 재판 관련 정보로서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할 이유가 있거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경영상 영업상 비밀 사항으로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부동산 투기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이다.
이같은 비공개 사유는 해외의 정보공개법에서도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정보공개법제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연방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은 1966년 제정돼, 최대 정치 스캔들이었던 '워터게이트 사태' 등을 거쳐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됐다. 해당 법안은 국가안보, 사생활보호 등 9개의 비공개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특유의 '비밀주의적 문화'로 2005년에야 '정보자유법'이 시행됐다. 정보공개와 관련해 완전 면제(비공개)가 8가지, 제한적 면제는 17가지 사유를 정해놨다. 독일 역시 '관청 비밀주의' 관습에 따라 연방정보자유법이 2006년에야 제정됐다. 비공개 대상정보와 정보공개 거부 사유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1978년 제정된 프랑스의 '정보자유법'도 비공개대상과 사유를 매우 자세히 규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행정결정 과정 중에 있어 공개로 인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정보, 사생활 침해, 의료비밀이나 상업적·산업적 기밀을 침해할 수 있는 정보 등이다.
'개인 정보'와 관련해선 국가별로 공개 방침이 미묘하게 달랐다. 독일의 경우 개인 관련 정보의 경우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공적인 기능 수행에 관한 것에 대해선 예외로 하고 있다. 일본도 국가 공무원 정보에 대해선 직과 직무 내용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라도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성명에 대해선 관보 등 공표 관행이 있는 경우에 한해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사적 정보에 대해선 공개권이 이해관계인에게만 배타적으로 인정되는데, 성명이 들어간 정보에 대해선 사생활 비밀과 관련한 언급은 숨기는 방식으로 공개할지, 정보 공개를 아예 거부할지 기관이 판단토록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직원 검색 시스템까지...인도, 총리 해외 순방비용도 한눈에
우리나라 대통령실은 비서관급(1급) 이상 고위 참모 대상으로만 명단과 재산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비서관급 밑으로 근무하고 있는 행정관(3~5급 공무원)과 행정요원(6~9급 공무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국가안전보장, 공정한 업무수행,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속 직원의 정보를 비공개해 왔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비공개 사유를 규정한 국가들의 최고 권력기관들은 어떨까.
미국 백악관은 매년 '백악관 직원현황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to Congress on White House Staff)'를 통해 백악관 행정직의 이름, 소속 부서, 직책, 고용 형태, 급여 등을 공개하고 있다. 백악관 직원 신상 공개제도는 1995년 채용 적합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의회의 요구를 당시 클린턴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실시됐다. 당초 보고서 열람 권한이 의회에만 있었지만 오바마 정부 이후 백악관 누리집에도 공개하고 있다. 영국과 인도 총리실도 각각 소속 직원들의 명단과 연봉, 월별 보수를 밝히고 있다. 영국의 경우 정보공개법이 아닌 2010년 헌법 개혁과 거버넌스법(Constitutional Reform and Governance Act 2010) 제16조에 따른 것이 특이하다.
'비밀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총리실 소속 비서관급 이하 직원들까지 이름과 담당 부서, 업무 내용을 조직도에 담아 총리실 누리집에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일본 역시 내각부 누리집과 관보를 통해 안보와 관련 없는 부서를 제외하고는 총리실 직원 명단과 직책을 과장급까지 넓은 범위에서 공개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경우 보안 담당과 소방 담당을 포함해 총리실 모든 직원의 명단과 전화번호, 직무 설명을 공개하고, 더 나아가 일일이 검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둔 것으로 파악됐다.
예산 집행 내역은 공개 범위가 제각각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의 관리와 유지, 수리, 개조 등에 대한 지출, 공식 접대 비용과 대통령 공무 여행비 등만 예산으로 지원받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 회계 감사국(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에서 각 항목에 대한 총괄 집행금액만 공개하고 있다.
영국은 총리가 주최하는 공식 및 자선 리셉션의 주요 목적과 주최, 총비용을 분기마다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또 총리실을 포함해 정부 특별보좌관들이 받은 선물과 접대, 미디어 고위 간부와의 면담 내역도 분기별로 밝힌다. 이에 대해 영국 총리실은 "이는 투명성과 개인 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을 제공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도는 2014년 5월 이후 총리의 국내외 방문과 전세 항공편에서 발생한 비용, 기능 수행을 위해 정한 규범, 예산 집행 월별 지출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특수활동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정보공개를 청구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는 올랑드 정부 때인 2002년 대통령·총리실의 특별경비를 없앴다. 다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밀 활동을 하는 부서에는 비밀 예산이 남아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각 대사관을 통해 받은 답변에 따르면 노르웨이와 캐나다도 총리실에 배정된 특수활동비 예산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종합해 보면, 각 국가가 법으로 정한 '정보 비공개 사유'는 대체로 유사하지만 실제 정보공개 범위는 제각각이었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어떻게 법을 해석·적용하느냐에 따라 정보공개 범위가 달라지는 셈이다.
◆적극적인 정보 공개, 정부 신뢰 확대로
대통령실과 '정보 공개'를 놓고 법정 다툼 중인 시민단체들은 권력기관의 정보 공개 확대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키워 성숙한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공교롭게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인도를 제외하고 독일(9위), 일본과 영국(18위), 오스트리아(22위), 미국(24위) 등이 한국(31위, 63점)보다 순위가 높다.
대통령비서실 감찰규정과 비서실 운영규정 등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참여연대의 장동엽 선임간사는 "대통령실에서 절차대로 이행됐는지 여부를 관련 규정을 근거로 파악할 수 있는데 (해당 정보가 없으면) 관련 쟁점이 드러났을 때 비판이 두루뭉술해지는 한계가 생긴다"며 "권력기관들이 규정이나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임의로 운영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 공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늘리기 위해선 대표적인 비공개 사유인 '개인정보 보호 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해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와의 균형점을 찾는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와 관련해 입법 움직임이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발의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소속 직원의 성명·직위·부서·업무내용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보 공개를 전담하는 특별행정심판 기구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최고 권력기관의 공개 확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악의적인 비공개에 대해선 처벌이나 징계토록 하는 법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또 정보 공개와 관련해 일반 행정심판 기구인 중앙행정심판위원회로 가는데, 이곳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없어서 정보 공개 심사가 지연된다. 결국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대법원까지 가는 데 3년 이상 걸린다"라며 "한편으론 권력기관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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