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명단·특활비·업추비 내역 등 공개 거부
거부처분 취소소송 관련 7건 진행 중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國政)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 1996년 제정된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명시된 목적이다. 부처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정보 공개 범위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추세지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실은 예외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대통령실 청사를 통째로 이전하고 '열린 용산시대'를 천명하며 출범했지만, 정작 대통령실 대상 정보 제공 요구에는 소극적이다. 대통령실의 정보공개 요청 처리 현황을 살펴보고, 정보공개 및 비공개의 법적 근거와 효과, 해외 사례 비교 등을 통해 최고 권력기관의 바람직한 정보공개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은 현재 시민단체와 법정 다툼 중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한 국정운영을 위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며 시민단체가 청구한 '정보공개'에 응하지 않으면서 현재 기준 7건의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3건에 대해선 1심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에 불복하고 모두 항소를 제기하면서 '정보 공개'를 둘러싼 다툼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 특활비 공개 여부 두고 법정으로
대통령실이 공개를 거부하며 법정까지 다툼을 가져간 '정보'는 의외로 기본적인 것들이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이 대표적이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는 5급 이상 공무원의 부서, 직위, 이름, 담당업무 등을 공개해달라고 청구했고, 이를 대통령실이 거부하면서 각각 지난해 9월과 10월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당시 대통령실은 해당 정보가 국가안보와 관련되고, 공개될 경우 개인정보와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거부했다. "이익단체의 로비나 청탁 또는 유·무형의 압력 등으로 국가이익이나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도 추가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대통령비서실이 특별한 사유 없이 소속 공무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시민단체가 요청한 '직원 담당 업무' 정보는 비서실이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청구를 각하했지만 소속 부서와 직원 이름, 직위 등은 공개하라며 사실상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비서실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누구인지는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인적 구성의 투명성 확보 등 공익에 크게 기여한다"고 판단했다. 또 '정보 공개 시 로비나 악성 민원 등에 시달릴 수 있다'는 비서실 주장에 대해선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에 노출된다고 볼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봤다.
대통령실은 예산 집행내역 공개를 두고도 정보공개 다툼 중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해 6월 윤 대통령 부부가 영화 '브로커'를 관람할 때 지출한 비용 내역과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의 고급 한식당에서 450만 원을 지출했다고 알려진 저녁식사 비용 내역,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출된 대통령실 특수활동비(특활비)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특활비 집행내역을 공개할 경우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정 활동 및 활동 주체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고,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며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이후 단체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월 1심 재판부는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지난 4월 부산 해운대 횟집 당시 회식비가 얼마였고, 누가 냈는지에 대한 정보공개도 '국방 등 국익 침해'를 이유로 거부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첫 변론에서 대통령실은 해운대 횟집 회식비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정보의 부존재'를 거부 이유로 들기도 했다.
이 외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달가량 대통령비서실이 맺은 수의계약 내역을 공개해달라는 언론매체와 시민단체 요구도 거부하면서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조달청 나라장터 누리집에서 대통령비서실이 발주한 계약들이 조회됐는데, 용산 대통령실 청사 공사에 모 업체가 특혜를 받고 수의계약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비서실 계약현황 조회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수의계약 내역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도 공개 청구 범위에 포함됐다. 이와 관련한 소송은 오는 7일 1심이 선고된다.
아울러 '대통령비서실 운영등에 관한 규정'과 '대통령실 내부 감찰조직의 운영규정' 등 내부규정 공개와 관련해서도 행정소송 중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의 명예훼손 소송 관련 대통령실이 관여할 법적 근거가 있는지에 대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대통령비서실 관련 민사⋅행정⋅형사소송에 관련된 고소⋅고발장 작성 및 제출의 권한이 있다"면서 그 근거로 '대통령비서실 운영등에 관한 규정 제10조'를 제시했지만, 관련 규정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자 정보공개거부 취소처분 행정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2건 모두 내년 1월과 2월 각각 2차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소송 시간 끌기->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봉인' 반복
이번 행정 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나오면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이나 내부 규정,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잇딴 '1심 승소'라는 희소식에도 정보가 공개될 것이란 전망은 어둡다. 재판 중 정권 임기가 끝나면 관련 정보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돼 임기 종료일로부터 최대 30년간 봉인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공개가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비서실은 재판부가 자료를 비공개로 열람·심사하겠다면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해도 정보를 제출하지 않는 식으로 소위 '시간끌기'를 하게 된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대통령실 상대로 낸 특활비 집행내역 등을 공개하라며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도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났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고 임기가 종료되면서 공개 요구한 정보들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대통령비서실에 자료가 없게 되자 이내 '각하'됐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도 마찬가지다. 특활비 내역, 대통령 내외 의전비용 등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고, 취소소송 과정에서 관련 정보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서 관련 재판은 각하됐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 대법원 판결이 나오느냐가 '정보 공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송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정보의 실효성은 약해진다는 맹점도 있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보 공개를 청구한다는 건 해당 정보가 현시점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원 명단의 경우 그 직원들이 공정하게 임용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직원 명단을 청구하는 건데 1~2년 지나고 받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정보다. 또 소송에서도 사법부에서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불리한 판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실은 성역? 대통령실 정보 비공개율, 박근혜·문재인 때보다 높아
국가 최고권력자가 있는 대통령실의 정보는 역대 정권에서도 접근하기 힘든 '성역'이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라 행정 부처를 비롯해 모든 공공기관은 사용일시, 사용처, 금액, 사용목적, 인원 등 업무추진비 세부집행내역을 각 기관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예외다. 또 행정안전부가 발간하는 '정보공개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도 기준 정보 비공개율이 19개 부처와 견줬을 때 외교부(23.6%), 기획재정부(22.6%)에 이어 세번째(17.8%)로 높았다.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윤석열 대통령실에 대한 접근은 더 까다로워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누리집에 공개한 '대통령비서실 정보공개 청구현황'에 따르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부터 2023년 3분기까지 모든 청구 건수 238건 중 '비공개' 건수는 87건으로, 비공개율은 36.5%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도)와 문재인 정부(2018~2022년 1분기) 임기 기간 대통령비서실의 비공개율은 각각 19.9%, 23.5%였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 현황, 대국민 소통 창구인 국민제안 심사위원회 명단 등도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정보 공개'에 매우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언론이 관보에 실린 병무청 공고(공직자의 병역사항)를 통해 대통령실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4급 이상 행정관급 직원 명단 일부를 공개한 데 대해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바깥에서도 '정보 비공개' 흐름은 이어졌다. 지난해 6월 대통령 집무실 리모델링 공사를 시공 능력이 없는 건설사와 수의계약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조달청의 대통령실 계약 정보가 갑작스럽게 모두 비공개 전환됐다. 대통령실은 병력 이동, 국가안보 등에 따른 사유로 체결하는 수의계약은 계약사항을 전자조달시스템에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국가계약법 시행령 92조2항)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서울경찰청에서 생산한 공공기록물 중 '여사님 주요행사 관련 근무인원 동원보고' 문건도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한 매체가 지난해 8월 해당 기록물을 파악한 결과, '여사님'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문건 25건을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김건희 여사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동안 최소 20건의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고 보도한 이후부터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통화에서 "우리나라 정보공개법상으로는 대통령비서실이라고 예외를 두고 있지 않은데 대통령비서실은 자신들의 정보 공개를 일종의 치외법권지대처럼 인식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부정부패나 비리, 예산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실 같은 최고 권력기관들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런 부분들이 사법부 판결을 통해서라도 빨리 정리가 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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