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제사 기간 日각료 3명 야스쿠니 직접 참배
국내정치 요인 작용한 듯…정부 "깊은 실망과 유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정부는 이날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 정부는 추계 예대제 기간 일본 측 주요 인사들의 참배와 공물 봉납 동향을 주시해 가며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대응 계획에 대해서는 "과거 일본 측의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 사례와 비슷한 수준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 기시다 총리의 공물 봉납 때와 마찬가지로 대변인 명의의 논평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추계 예대제(제사)를 맞아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공물 마사가키(비쭈기나무 화분)를 봉납했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한 이후 봄 제사인 춘계 예대제, 8월 15일 패전일, 가을 제사인 추계 예대제 때마다 공물을 봉납해왔다. 참배한 적은 없다. 19일까지인 이번 예대제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참배하지 않을 예정이다.
일본 각료와 정치인들의 직접 참배도 있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이날(현지시간) 일본 경제안보상은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공물을 바쳤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경제재생상도 예대제 기간에 맞춰 신사를 참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안보상, 니시무라 산업상, 신도 재생상은 극우 성향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측근이거나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이다.
일본 각료 일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일관계 측면보다는 일본 국내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다카이치 안보상과 니시무라 산업상이 8월 15일 패전일에 이어 이번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본은 이미 '총선 모드'에 접어들었는데, 의회 해산 시기를 저울질하는 기시다 총리가 정권 지지율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 내에서 아베 전 총리 같은 '강력한 지도자'를 고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차기 총리 경쟁자들이 저마다 아베의 진정한 후예임을 어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일본 정치인의 신사참배와 기시다 총리의 공물 봉납은 별다른 악재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아베 전 총리의 장기집권 동안 일본 사회가 많이 우경화돼 참배에 대한 비판을 '내정 간섭'으로 여기는 수준인데, 기시다 총리는 그나마 주변국을 배려하는 온건파에 속한다"면서다. 양 교수는 "정부도 어떤 채널로든 일본 측의 자중을 요청하겠지만, 양국 모두 연내 한일중 정상회담 추진 등 한일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지속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공물 헌납과 관련해서는 과거 일제 군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가해국인 일본 사이 입장차가 존재한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 14명과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 중 사망한 군인·군속(군공무원)·정치인·민간인 등 246만6000여명이 합사돼 있는데, 이들 중 대다수인 213만3000여명은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 때 사망한 이들이다.
야스쿠니 신사 존재 이유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업적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들을 기리는 행위는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미화·정당화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공물 헌납을 전몰자를 추도하는 의례적 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지만, 주변국을 의식해 현직 총리·관방장관·외무대신의 직접 참배는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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