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의 삶과 정치, 그리고 한국 정치가 가야 할 길
[더팩트ㅣ강서구=허주열 기자]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가난한 유·청소년기를 보냈다. 성인이 되어 군 복무를 마친 후 가족 생계와 자신의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머나먼 타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국내로 돌아와 KT에 입사한 이후에는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면서, 한국노총 사무총장까지 역임했다.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 보수정당에 어려운 지역구인 서울 강서을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에선 정당의 투톱 중 하나인 원내대표도 맡았다. 아무런 배경 없이 맨몸으로 이뤄낸 성취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간 김성태 국민의힘 서울 강서을 당협위원장 이야기다. 정치적 자수성가를 이뤘다고 평가할 만한 삶이다. 가정사로 21대 총선에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을 맡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특별 사면·복권돼 선출직에 재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작금의 '막장·천박한 정치' 청산해야"
바야흐로 정치가, 여야 협치가 실종된 시대다. 김 위원장이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던 4~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상대 정당과 치열하게 다투면서도, 협치가 있었다. 왜 갑자기 정치가 사라지게 된 것일까. 정치의 복원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정치가 살아있던 마지막 시기 보수정당의 요직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정치적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20일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김 위원장의 지역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현실 정치의 문제와 나름의 해법, 개인적 구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제가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드루킹 특검 관철을 위해 9박 10일간 노숙 단식을 통해서 처절한 모습으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설득해 특검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때는 정치가 살아있어서 가능했죠. 그 결과는 민주당에 엄청난 타격으로 돌아왔습니다. '촛불 민주주의 정권'이라고 자평했던 문재인 정권은 '댓글 조작 정권'이 됐고, 일찌감치 문재인 정권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제가 너무 큰 칼을 휘둘렀고, 저는 단검을 맞았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그렇게 책잡힐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움이 있었죠. 저는 정치 보복, 누명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지난 총선 불출마를 통해 나름의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졌습니다. 전직 의원으로서의 지난 3년 6개월이라는 기간은 자성과 성찰의 시기였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당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1일째 단식 투쟁을 하던 때였다. 국회 내 제1야당 대표가 장기간 단식 투쟁을 하는데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에선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정치가 사라진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과 본인의 근황을 한 번에 풀어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작금의 '막장 정치', '천박한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중압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가진 사명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현역 의원으로서 휴지기를 가지기 전 정치 활동 중 잘한 것과 아쉬움이 남는 부분에 대해 물었다. 김 위원장은 "정치를 하면서 드루킹 특검 관철 외에도 민주당과 협의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 및 주 52시간제 도입, 보편적 복지로 아동수당의 차별 없는 지급, 장기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삶의 질 향상 지원 등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제도 도입을 여야 협치로 현실화했다"며 "여야가 때로는 갈등과 반목을 하지만, 타협과 협상의 산물이 정치다. 저의 원내대표 임기가 마친 이후에도 정치의 본질인 인간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한 여야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아쉬운 부분은 22대 총선에 도전하는 그의 정치적 과제로 남았다.
◆"국가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정치'"
아울러 김 위원장은 "국가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정치다. 가장 정치가 활발히 살아있어야 할 곳이 바로 여의도, 대의민주주의 공간"이라며 "정치를 실종시킨 국회의원이 무엇을 위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나. 그 배지는 정치를 하라고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이를 외면해 여야 갈등의 골이 회복 불능 상태로 가고 있다"고 현 정치권에 쓴소리를 가했다.
또한 그는 "여야 협치와 상생은 옛날에 있었던 추억이 됐고, 지금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고 하면 각 진영에서 변절자 내지는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며 "정치가 이렇게 천박해지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는 작금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고 '이전투구'"라고 강조했다.
해법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워서 공격하기보다는 우리 국민의힘이 국정운영에 무한한 책임을 진 집권당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며 "집권당이 정치를 살려야지, (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야당보고 살리라고 할 수는 없다. 하루빨리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국민의힘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데 정상화가 시급하다. 국회가 코로나 팬데믹 극복 이후 우리 사회·경제 전반을 시급히 손보고, 또 입법적인 뒷받침을 통해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민생이 살아 숨 쉬는 그런 정치의 참모습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며 "이 역시 국민의힘이 집권당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당이 특단의 의지를 갖고 민주당에 정치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 내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만큼 집권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이재명 대표를 (당대표로) 선택한 것이 불행한 판단이었다고 본다"며 "사법 리스크가 있는 대표를 선출해 1년 이상 국회라는 대의민주주의 공간이 이 대표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만 난무했다. 그 사법 리스크는 결국 수사·재판 방해로 이어졌고, 국민 지탄의 대상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이 대표는 여러 차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국민께 천명하고, 지키지 않았다"며 "이 대표의 선출은 민주당 역사에서 치욕사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 정치에도 큰 퇴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 6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한다면 열번이 아니라 백번이라도 응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지난해 5월 22일 지방선거 지원 유세 중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라며 "불체포특권 같은 것은 뇌물 받고 부정부패 저지르는 국민의힘의 부패한 정치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추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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