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위협 시 즉각 공조' 합의
한미일 정상회의 연 1회 이상 개최
연 단위 '3자 군사훈련' 실시
'조기 경보시스템' 가동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오늘 우리 세 정상은 처음으로 한미일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국 정상은 18일(현지시간) 북한 핵 위협과 우크라이나 전쟁, 지정학적 경쟁 심화 등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3국 파트너십 새로운 시대'(a new era of trilateral partnership)의 출범을 선언했다.
그동안 한미일 대화가 국내외적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고 한반도 역내 공조에 주로 머물렀다면, 향후 불가역적인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체로 진화하고 협력 분야도 안보는 물론 경제, 첨단기술, 보건, 여성, 인적교류 등으로 넓히기로 한 것이다. 특히 한미일 정상회의를 연 1회 이상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각 분야 장관급 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수준과 분야에서 3국 협력체제를 제도화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정부 출범 이후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한미일의 포괄적 협력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 비전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일 간 과거사 문제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등 한일 양자 간 현안과, 중국과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따른 역내 불안정성이 수반되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3국 정상은 18일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65분 동안 정상회의를 열어 △3국의 공동 위협에 대한 공조 방안을 담은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3국 협력의 장기적인 지침인 '캠프 데이비드 원칙'(Camp David Principles) △3국 협력의 장기적인 비전과 이행 방안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The Spirit of Camp David:Joint Statement of Japa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등 3개 문건에 합의하고,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한미일 정상, '공동위협 즉각 공조'...핫라인 구축
한미일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3국이 즉각 협의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문건을 통해 "한미일 간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공약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미일 공동성명'에도 명시된 '역내외 공동 위협 발생시 3국의 즉각적인 협의와 공조'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따로 떼어내 문서화한 것이다. 특히 신속히 협의하기 위한 소통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해 "(3국 간) 핫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조율함으로써 역내 위기 있을 때 적극 대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통령실은 "3국 간 정보 공유, 메시지 동조화, 대응 조치 공조를 통해 실현될 수 있으며 향후 한미일 협력이 앞으로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기반 마련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국 정상은 또 앞으로 한미일 정상회의를 최소 연 1회 이상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외교장관, 국방장관, 상무·산업장관, 국가안보실장 간 협의도 최소 연 1회 이상 열어 3국 간 협력 방안을 긴밀하게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 또 인도 태평양 지역 내 3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협력 분야 발굴을 위한 차관보급 '한미일 인도·태평양 대화'와, '개발정책 공조를 위한 협의체'도 창설하기로 했다.
◆연례 '3자 군사훈련'...연내 北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한미일 정상은 이처럼 협력 제도화를 기반으로 안보 분야 협력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먼저 지난해 11월 프놈펜 정상회의에서 3국이 합의한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의 실시간 공유' 시스템을 올해 안에 본격 가동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이는 3국의 북한 미사일 탐지와 추적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3국 간 방어훈련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연간 계획에 따라 한미일 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돈줄인 불법 가상자산 탈취 등을 차단하기 위해 '3국 간 북한 사이버 활동 대응 실무그룹'도 신설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한미일 3국이 이번을 계기로 준안보동맹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은 한미일 3국의 안보 분야 협력 방향에 대해 '동맹 수준'은 아니며 '3각 안보 협력체'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3국 정상은 또 역내 평화와 관련해 '현상 변경 시도 반대'를 분명히 했다. 3국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최근 우리가 목격한 남중국해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관련해, 우리는 각국이 대외 발표한 입장을 상기하며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며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조기 경보시스템' 가동...신흥기술 협력도 추진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다수다. 먼저 해외 공급망 리스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광물, 배터리 등 핵심 물자가 부족한 경우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는 '3국 조기 경보 시스템' 시범사업을 출범하기로 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3국이 각자 운용 중인 경보 시스템을 상호 연계해 경보 체계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제 안보와 관련해 3국이 참여 중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성공적인 타결을 위해서도 3국이 공조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상호 수출 제한 조치 등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의 경제 강압 대응에 대한 한일의 역할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 2월 출범한 미국의 '혁신 기술 타격대'를 벤치마킹해 핵심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3국 법 집행 당국 간 공조 체제도 구축하기로 했다.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첨단 혁신 분야 협력도 강화한다. 이를 위해 우주산업, AI(인공지능), 양자역학 등 핵심 신흥 기술에 대해 3국 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도 추진한다. 아울러 그동안 양자 간 진행해온 금융 협력을 3각 협력 차원으로 확대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도 3국이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한미일 3국의 GDP 총합이 전 세계 GDP의 3분의 1에 달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한미일 간 경제 협력의 잠재력이 클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보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 여전히 과제...'미국·서방 편중 외교 국익 배치' 비판도
대통령실은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된 데는 오랜 기간 교착됐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획기적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혀왔고, 지난해 9월 UN총회 참석 계기 한일 정상 약식간담 때는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는 모습까지 보여 '굴욕 회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국내 부정 여론에도 '제3자 변제'라는 방식의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고 올해 상반기 양국 간 셔틀외교,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이 이뤄지면서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등 양국 간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해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 국민들은 무엇보다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한일 간의 관계 개선과 한미일의 협력이 우리 안보와 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될 문제"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도 "윤 대통령과 함께 (관계 개선 방안을) 축적해 나감으로써 양국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며 "저희도 노력을 경주해 나갈 생각"이라고만 했다.
일본 정부가 이달 중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3국 국민과 또 모든 인류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IAEA의 점검과 그 계획대로 처리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한국을 포함해서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치와 규범 중심의 외교 기조가 지나치게 강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과 서방에 대한 가치 편향성으로 중국, 러시아 등 역내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초래하고 실질적인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대치 구도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여전히 영향력이 큰 중국과의 관계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은 3국의 공동 위협에 대한 공조 방안을 담은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이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9일 "해당 공약은 사실상 '준군사동맹' 수준으로 일본을 포함한 3국 안보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라며 "일본과의 준군사동맹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설명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안보공동체 참여로 국민 부담이 늘어나고, 일본 위기 발생 시 우리나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등 우리 군의 전략적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반면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상황에서 가치외교 강화는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 7월 발간한 보고서 '한국형 가치외교의 필요성: 가치와 국익의 이분법을 넘어서'에서 "오늘날 미 ·중 체제 우월성 경쟁과 국제질서 주도권 경쟁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영역 모두에서 불붙고 있으며 우리 역시 이러한 양 측면 모두를 고려한, 종합적인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미래 국제질서 형성을 위한 우리의 발언권 강화를 위해서도 가치와 규범 차원의 적극적인 외교적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헬기를 타고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했다. 한·미·일 정상회의 전후로 한미, 한일 양자회담을 약 20분씩 각각 가졌다. 3국 정상은 '노타이' 차림으로 격식 없이 대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역대 대통령이 머물렀던 아스펜 별장 곳곳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소개했고, 두 정상은 테라스에서 담소도 나눴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1박 4일 일정을 마치고 20일 오전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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