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 사례, 학생인권조례 유무와 '무관'
교사들 "교권과 학생인권, 반비례 관계 아냐"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최근 '교권 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 무너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교권이 추락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을 겪는 교사가 없도록 올바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가운데 대통령실, 교육부, 여당은 진보 성향 교육감이 주도해 6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례를 만들었던 지역이나 교육청에서도 문제가 있으니까 조금 손질은 해야 되겠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학생인권조례가) 우리 교육 현장을 왜곡하고 특히 교사의 수업권, 생활지도권을 많이 침해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초등학교 교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당연히 학생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필요하지만, 한쪽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학생의) 책임 부분이 빠져 교실에서 여러 가지 교권 침해의 큰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 방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지난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현재 7개 시도에서 진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정비하지 않고는 교권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이 대두되고 있다"며 학생인권 중심의 기울어진 교육 환경을 바로잡아야 교권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추락의 연관성을 살펴봤다.
[검증대상]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추락 연관성
[검증 방법]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시도와 없는 시도의 교권 침해 사례 비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문조사, 학생인권조례 실제 내용 분석, 현직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 인터뷰
[검증 내용]
◆'학생인권조례' 있는 시도는 없는 시도보다 교권 침해가 많은가? NO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경기(2010년 10월) △광주(2012년 1월) △서울(2012년 1월) △전북(2013년 7월) △충남(2020년 7월) △제주(2021년 1월) '6개 시도 의회'가 의결, 해당 지자체에서 적용되고 있는 조례다. 박대출 의장이 발언한 7개 시도 시행은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과 학부모를 아우르는 '학교구성원인권증진조례'를 제정, 2021년 9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당·정·대의 주장이 사실이면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대전 △강원 △세종 △전남 △충북 △인천 등 11개 시도에선 '교권 침해 행위'가 타지역보다 작아야 한다.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2017~2021년 시도별 교육활동 침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곳이 있는 곳보다 교육활동 침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조례가 있는 곳에선 5349건(48.0%), 없는 곳에서 5799건(52.0%)의 교육활동 침해가 있었다. 조례를 시행한 지역에 시차가 있는 만큼 2017~2019년은 조례가 시행 중이었던 서울·광주, 경기·전북 4곳, 2020년은 충남, 2021년에는 제주를 추가해 집계한 결과다.
다만 이 수치는 교원 수가 많고 적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이에 정의당은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현황을 따로 집계했다. 그 결과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5년간 조례가 있는 곳이 평균 0.50건, 조례가 없는 곳이 0.54건으로 조례가 없는 곳에서 침해가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의당 정책위는 "교원 수를 감안해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를 살펴보니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침해)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적어도 2017~2021년 5년 동안은 조례가 있다고 상대적으로 교육활동 침해가 많아지는 모습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직 교사들은 교권 추락이 학생인권조례 탓이라고 보고 있는가? 일부 YES
이와 관련한 현직 교사들의 목소리는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5~26일 전국 유·초·중·고 교원 3만2951명을 대상으로 '교권 침해 인식 및 대책 마련 교원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해 27일 발표한 결과에선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 응답 교원의 83.1%가 동의했다. 특히 '매우 동의'한 비율은 과반인 55.9%였다.
이에 대해 정성국 교총 회장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주요 원인"이라며 "절대다수의 교원들은 '아동학대 면책 입법', '중대 교권 침해 학생부 기재', '학생인권조례 재정비'를 절박하게 요구하는 만큼 이를 정부와 국회가 즉각 반영해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2~24일 전국 유·초·중등 교사 1만44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25일 발표한 자료에선 교사가 교육활동 중 어려움을 겪었던 항목으로 '부적응 학생 생활 지도'(95.3%), '과중한 업무'(87.1%), '학교 공동체의 지지 및 보호 체계 부재'(84.1%),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81.6%) 등을 꼽았다.
전교조 설문에 응답한 선생님들은 교권 보장을 위해 교육 당국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질문엔 '관련법 개정을 통한 정당한 교육활동의 아동학대 처벌 방지'(89.2%)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 및 교육부 고시에 교사의 생활지도권 구체적 명시'(66.2%), '학교교권보호담당관(교장·교감), 교육활동 침해 학생 지도 시스템 및 지원 인력 배치'(43.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승혁 전교조 청년부위원장은 28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이 반비례하는 것처럼 대치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교권을 보장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외한 다른 모든 학생의 수업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보완적인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부위원장은 "학생인권 문제가 정쟁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며 "지금 교권 추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부모와 학생의) 악성 민원 문제 해결, 무분별한 아동학대신고 방지책 마련 등 교육권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생인권조례에 교권 추락과 관련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가
6개 시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의 세부 내용도 살펴봤다. 기본적으로 학생인권조례의 목적은 우리 헌법과 법률,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해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원칙으로 하고 있다.
경기도, 제주, 충남·전북에선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교육의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 학생이 그 제정, 개정에 참여한 학칙 등 학교 규정으로써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학생인권 제한'과 관련해 내용도 포함돼 있다.
'체벌'을 방지하는 내용은 6개 시도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다만 상벌점제 도입을 못 하는 지역은 경기도뿐이었다. 교사가 '문제아'에게 제재를 가할 수단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진 측면(체벌 제한)은 있지만, 학생인권이 교권에 앞선다거나, 교권 침해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
[검증 결과]
종합하면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은 한쪽이 우위를 점하면 한쪽은 손해를 봐야 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기 어렵다. 당·정·대의 주장대로 교권 추락을 진보 교육감이 주도한 일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탓이라고 여기면, 자칫 정쟁으로 흘러가 진짜 필요한 대책 마련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020년 7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충남에서 10여 년 전부터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한 교사는 28일 통화에서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전과 후 교육활동에 큰 차이는 없다"며 "교사를 폭행하고, 폭언을 하는 문제아는 극소수다. 그런 아이는 조례가 제정되기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다. 늘 있었던 문제아들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이후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사는 "정당한 교사의 지도활동에 아동학대죄 적용을 못 하게 하고, 교권 침해 행위가 발생했을 때 교사를 지원하기 위한 관리자(교장·교감)의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소영 교사노조연맹 전국초등교사노조 정책국장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번에는 기필코 교권 회복과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 중에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정쟁은 안 된다. 특히 생활기록부 기록 찬반 논란,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 등은 갈등만 일으킬 뿐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다. 부디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승호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도 토론회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의 인권을 '제한'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보호'해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학생인권과 교권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되는 개념이다. 교실에서 한 학생이 교사에게 폭언을 해 교권이 침해되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 해당 학생을 일시적으로 강제 분리하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 공동대표는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 침해자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현행 헌법과 법률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원리이지만, 이게 유독 학교와 교실에서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이 당연한 원리가 지켜지기 위해선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아니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혹은 훈육과 훈계 과정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부정적 감정이나 인간 본연의 수치심을 정서 학대라고 말하는 개념의 오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육부는 8월 말까지 교권 보호·확립을 위한 종합적 정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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