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학생인권조례, 진보 교육감 탓 교권 추락"
野 "교사들을 학부모 갑질로부터 지켜줄 시스템 마련해야"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정부·여당이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진보 교육감 주도로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됐다'고 지적하며 개정 카드를 꺼냈다. 야권은 당장 "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권리가 아니다"고 비판하면서, 교육의 정쟁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25일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반항 조장 조례, 학부모 갑질 민원 조례"로 규정하며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며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단체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만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교권 추락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2010년경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학생인권조례"라며 "교권 회복은 교육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같은 날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진보 교육감들과 전교조가 지나치게 교권을 추락시키고 학생들만 어화둥둥 했던 것이 지금의 교권 추락 사태를 만든 본질적 원인"이라며 "이런 참담한 분위기를 누가 만들었느냐는 지적 앞에서 저는 소위 말하는 진보 교육감들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진보 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학생들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교사의 권한과 또 훈육받는 학생들의 책임도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다 누락하고 배제했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부산은 학생인권조례가 없다"며 "진보 정부에서 계속 학생 인권만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 해석을 해서 규정화시켜 오다 보니까 선생님은 아예 보조 참가자적인 의미에서 의무와 책무밖에 없는 규정으로 남아 있다. 학생의 인권만을 논의할 환경은 20~30년 전에 지났다. 학생 인권, 교사 인권 등 전체적인 인권 (문제를) 통합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이 개정 카드를 꺼낸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상생활이 존중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도입됐다. 현재 서울·광주·전북·충남·제주·인천 등 전국 7개 시도가 이를 마련하고 있다. 인천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라는 이름으로 학생인권조례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지금 타이밍에 학생인권조례를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애를 때리지 못해서 교권이 침해됐다'라는 주장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면, 대화가 될 리가 없다"면서 "학생인권조례와 관계없이 상위법으로 애는 못 때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동학대에 대한 허위신고에 대해서 강한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일선의 선생님들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또, "대구는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지 않은 지역이고,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 교육감이 있는 지역"이라며 학생인권조례 수정·폐지 논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모든 게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면 이 모순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며 "제발 이성을 되찾고 악성 민원인을 퇴치할 현실적인 방법들을 제시하자"고 강조했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교권 회복은 체벌이 난무하는 교실의 부활인가"라며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교육 현장의 문제는 일부 갑질 학부모"라며 "원인은 일부 학부모들의 갑질과 괴롭힘인데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학생 인권 탓을 하겠다니 황당하다"고 했다.
그는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학생 인권을 더 보장했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학생 인권을 제약해야만 교권이 회복되느냐"면서 "이런 비극적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교사들을 갑질로부터 지켜줄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했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정쟁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이때를 빌미 삼아 보수 세력은 진보 교육감과 정책 때리기에 골몰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정쟁이 또다시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 사건이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 파탄의 단적인 예'라면서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뭣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이념 갈등의 뇌내망상에 빠져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이번 비극은 교사에게 민원·책임을 전부 떠넘긴 채 방치되어 온 교육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교사에게 모든 부담이 전가되는 이 현실을 놔둔 채 '학생인권조례 폐지', '과도한 학생 인권이 문제'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 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왜곡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들은 학생을 때릴 권리를 달라는 게 아니라 교사의 권리가 보호받길 원하는 것"이라며 "교사들에게 가중된 업무 분산, 민원인과의 접촉 최소화, 무분별한 신고에 대한 면책 조항 삽입 등 이번 사안과 관련된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드러난 비극적 현실 앞에서도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고, 반사이익을 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상실해 버린 작금의 정부와 여당 정치꾼들의 도 넘은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17개 시도 중에 학생인권조례는 일곱 곳에 있다"며 "인권 조례가 없는 지역이 더 많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인권 조례와 상관없이 교권 침해 발생률은 거의 비슷하다"면서 "인권 조례에 원인을 돌리는 건 교권 침해 예방 방지책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형민 전교조 대변인도 통화에서 "학생 인권 때문에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문제"라며 "악성 민원의 근거는 대부분 아동학대방지법이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법적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학부모가 많은 지역일수록 교사들이 근무를 기피한다. 자신들의 소송 권한을 이용해 아동학대방지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교권의 장애물은 학생 인권이 아니다"라며 "악성 민원과 그로 인한 교사들의 정서적 학대를 방치했던 교육부의 적극적인 구제 대책 부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부모에게는 교육기관이 학생을 충분히 존중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교사에게는 문제가 생길 때 보호받을 수 있는 공적인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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