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병행 도입해야"
野 "아동 알 권리 침해, 양육 포기 조장 우려"
"부정적 효과 최소화" 제언 나와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정치권에서 영아 유기 등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출생신고 시 미혼 산모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보호출산제' 도입 요구가 일고 있다. 미혼 출산이나 주변 환경적 요인 등을 고려해 여성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아기의 출생신고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찬반이 팽팽해 입법으로 제도화는 간단치 않다. 찬성 측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영아 유기나 출생 미등록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반대로 부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고, 태생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여야는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을 막자는 취지에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출생통보'가 핵심인 이 법안은 의료기관이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출생 사실을 포함한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심평원이 이를 시·읍·면에 통보하도록 했다. 지자체는 출생 미신고 7일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부모가 응답하지 않으면 감독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기록을 하도록 했다.
여야는 임산부와 태아의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부모가 양육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 영아 유기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사원의 출생 미등록 아동 조사 결과, 병원에서 출산했으나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아기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2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소년이나 미혼모 등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의 익명 출산에 대한 보완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회에서 보호출산제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12월 대표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총 4장·19개 조문으로 구성된 제정안의 주 내용은 임신·출산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보호하고 그 태아와 자녀에게 안전한 출산과 양육환경을 보장하며, 친생부모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와 자녀의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021년 5월 비슷한 취지의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와 여당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의 병행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출생통보제의 도입으로 병원 밖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영아의 생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오히려 더 많은 아이가 위험에 처할 수 있기에 보호출산제가 같이 시행돼야만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박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자신의 법안에 대해 "보호출산법이 덮어두고 바로 익명 출산을 권유하는 게 아니"라며 "먼저 임신부를 충분히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상담을 통해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도움도 준다. 또한 자립할 때까지 모자(보호)시설에서 지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법안은 불안한 여성들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고 아이의 생명을 지켜주고자 하는 차선책"이라며 "단 한 생명이라도 (국가가) 보호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와 야당 일각에선 아동의 알 권리 침해, 양육 포기 조장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여가위 야당 간사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실제로 위기 임신 여성이 출산했을 때 스스로 키우고 싶어도 그렇지 못해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들이 있다"며 "원가정 양육을 위한 공적 지원을 강화해 위기 임산부와 영아가 안전한 사회 안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보호출산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숙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정 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보호출산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미혼모가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면 아이는 별도로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게 되고, 엄마는 출산한 사실을 숨기게 될 것"이라며 "이 자체가 친모와 자녀를 분리하기 쉬운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혼모뿐 아니라 여러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임산부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가운데 보호출산제를 시행해 엄마와 아이를 분리시키는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김 의원은 "충분한 상담을 통해서 직접 양육하거나 출생신고 이후 입양을 보낼 때는 모든 정보가 있으며, 익명 출산의 경우에도 생부모와 아이에 대한 정보를 다 기록해 비밀로 밀봉해서 영구 보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동에게 정보공개청구권도 인정된다"면서 "현재 아이들이 바로 죽거나 버려지는데 무슨 알 권리가 있고, 정보는 어디에 있나.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이' 상태를 국가와 법의 보호 아래 산모와 아이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알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임산부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영아의 출생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도 익명출산을 법제화했다. 두 나라 제도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1941년 도입된 프랑스의 익명출산제(Accouchement sous X)는 친모가 자신의 신상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고, 친모의 동의가 있을 때만 자녀가 모(母)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출생신고는 의료기관이 하도록 했으며, 출생등록부에 친모 이름 등이 기재되지 않는다.
독일은 2013년 비밀출산제(vertrauliche Geburt)를 도입했다. 모(母)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허용하고, 아이는 친모에 대한 정보청구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임신갈등상담소는 모(母)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신상 서류를 밀봉한 뒤 연방가정청에 보내고, 아동은 만 16세가 되면 연방가정청에 보관된 친생부모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단, 친모는 자기 자녀가 정보열람권을 갖기 1년 전부터 공개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이 경우 아동은 가정법원에 소(所)를 제기할 수 있고, 판결에 따라 정보열람 여부가 결정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지난 6일 발표된 보호출산제 입법 논의에 관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독일의 사례를 두고 "모(母)의 열람거부권을 인정하고 있기에 자녀의 알 권리가 항상 충족되는 것은 아니고, 비밀출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기록을 남겨야 하기에 결국 엄밀한 의미에서 비밀출산을 보장받는 것이라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독일의 비밀출산은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임산부의 의료기관 방문을 주저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사안 자체가 모든 쟁점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고려한다면 현실을 반영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박은영 사회복지사는 통화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는 첨예한 쟁점을 내포하는 것처럼 임산부와 태아·영아가 얽힌 보호출산제의 찬반 논쟁은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당장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운 만큼 정치권이 법제화하기 전 정부와 국회, 전문가와 여성단체 등이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보호출산제에 대한 찬·반 진영 모두 아이와 임산부의 건강과 안전을 주요 논지로 내세우고 있기에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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