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전문가 시찰단 결과 발표 전 우려 제기가 '괴담'?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선 여야의 '괴담' 공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야당, 시민단체, 일부 전문가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제기를 여당이 '괴담'으로 규정하며 날선 정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야의 정쟁을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갈등을 조정(調停)해야 하는 정치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오염수 관련 우려에 '과학'을 강조하며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여당의 주장엔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과학적인 검증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쿠시마 오염수 조사 종합보고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1~26일 현장을 다녀온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전문가 시찰단의 최종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전 전문가 집단의 과학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제기하는 안전성 우려가 '괴담'이라는 주장이야말로 '비과학적'입니다.
또한 과학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사실상 오염수를 방류해도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로부터 오염수 관련 강연을 들었습니다. 정 교수는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위원입니다. 강연에서 정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원전 오염처리수에 대해 "너나 먹으라고 하면 저는 먹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에 앞서 지난달 19일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TF는 "만약 지금 제 앞에 다핵종제거설비(ALPS, 이하 알프스)를 거쳐 저장조에 저장돼 있는 오염수가 있다면, 희석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1L가량을 바로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한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간담회에서 앨리슨 교수는 "오염처리수 1L를 섭취했을 때 우리 몸의 방사능 수치가 12일가량 2배가 될 수 있지만, CT, X-ray 등 의학 설비에 노출되었을 때 방사선량보다 적다"면서 "1L가 아닌 10L까지도 오염처리수를 마실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알프스를 거친 오염처리수는 안전하다는 게 앨리슨 교수 주장의 요지입니다.
심지어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는 발언은 국무총리 입에서도 나왔습니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오염처리수 안전이 검증되면 마시겠나'라는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완전히 과학적으로 처리가 된 것'이라는 전제를 단 뒤 "세계보건기구 음용 기준에 맞다면 마실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민의힘 주최 강연 및 간담회에서 친원전 전문가들이 나와 "오염처리수를 마실 수 있다"고 하고, 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이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오염처리수를 마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일본이 오염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하지만 지난 12일 일본 환경단체와 일반 시민, 전문가 등이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제출한 서면 의견에 경제산업성이 한 답변서를 보면 "알프스 처리수의 삼중수소 규제 기준을 준수할 때까지 (물로) 희석하면 이를 마셨다고 해도 방사선에 의한 건강상 영향은 없다"면서도 "처리수에 대해 음용이나 생활용수로 활용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피폭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음용하거나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러니 일각에선 우리 정부와 여당이 일본보다 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는 혼란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15일부터 매일(주말 제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안전성 우려 해소를 위한 브리핑을 하고 있습니다. 제기되는 여러 우려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해명을 내놓는 자리입니다.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정부는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미리 판단을 한 적도 없고, 또 방류에 동의한 적도 없다"며 "거듭 말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일본 오염수 처리의 과학적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미리 판단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정부·여당의 행보와 비교하면 거리감이 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항만 내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의 180배에 이르는 '세슘'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일본 현지 보도로 나오고, 오염수를 거르는 알프스가 지난 10년간 12차례 고장이 났다는 사실 등 안전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소식들도 잇달아 전해지며 국민 불안감은 상당히 높은 상황입니다. 실제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가 지난달 26~28일 18세 이상 한국인 1000명과 일본인 1017명을 대상으로 공동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한국 국민의 84%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12%에 그쳤습니다. 일본 국민은 찬성 60%, 반대 30%로 찬성 여론이 더 높았습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 가운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2의 광우병 괴담 기획이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해 본 매우 익숙한 선전선동 패턴"이라며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사드 괴담' 등을 언급한 뒤 "그때 활약했던 가짜뉴스 전공자들이 또다시 등장했다. 알고 보니 지금 민주당하고 찰떡 공조하고 있다면서요?"라며 민주당과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세력이 공조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퍼트리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과학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우려가 '괴담'이라는 이런 발언은 정부여당의 발표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원전 폭발 사고로 발생한 130만t 이상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비용 절감을 위해 바다로 방류하려는 나라는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우리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 나라인 일본이 세계 최초로 방사성 오염수를 방류하는 일에 우리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하 매설' 등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구 전체의 해양 생태계, 다른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해양 방류를 고집하는 일본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처음 시도하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를 과학적 검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상식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아 보입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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