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 보이지 않아...1년째 같은 말" 혹평도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2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핵심 내용은 '거대 야당 심판론'이었다. 김 대표는 "정권교체 심판을 받고도 반성이 없다"면서 상당 시간을 지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비판에 쏟았다. 노조, 시민단체, 언론, 법원을 향해서는 색깔론을 꺼내 들어 비난했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철학과 비전을 보여주기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갈라치기'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대표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무엇을 했냐"면서 "소득주도성장 실험으로 자영업 줄폐업시키고, 집값 폭등시켰다. 전월세 대란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탈원전, 태양광 마피아, 세금 폭탄, 흥청망청 나라 살림 망쳤던 게 바로 민생 포기, 경제 포기"라며 "공수처, 검수완박, 엉터리 선거법 날치기 처리와 같은 정쟁에 빠져 조국 같은 인물이나 감싸고 돌던 반쪽짜리 대통령, 문재인 정권에 '정치'라는 게 있긴 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도대체 왜 국민을 실망하게 해서 민생을 구렁텅이에 빠트린 문재인 정권 5년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냐"며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심판을 받고서도 쇄신은커녕 퇴행의 길을 이렇게 끝까지 고집할 거냐"고 물었다. 50여 분의 연설 내내 민주당 의원들의 고성과 항의가 이어졌다.
김 대표는 연설에서 "문재인 정권 동안 국가 채무가 400조 원 넘게 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죽창가를 부르며 조직적인 '반일 선동'을 주도했다", "세상의 인권 탄압을 일삼는 세습 독재자 김정은의 이익만 대변했다", "당리당략에 빠져 과학을 부정하고 원전 폐기 정책을 저질렀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매섭게 꾸짖어 주시라"고 호소했다.
전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연설을 두고는 "동의하기 힘든 장황한 궤변"이라며 "사법 리스크, 돈 봉투 비리, 남 탓 전문, 말로만 특권 포기, '사돈 남 말' 정당 대표로서 하실 말씀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새 정부 출범 1년 만에 윤석열 정권은 민생, 경제, 정치, 외교, 안전을 포기했고 국가 그 자체인 국민을 포기했다. 한마디로 '5포 정권', 국민 포기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을 향한 날선 비판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민주화는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문제는 민주를 참칭하는 특권 세력"이라며 "이들이야말로 전형적인 반(反)민주"라고 했다. 그는 "한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민주를 빙자해 반칙을 합리화하고 민주라는 이름으로 '진짜 민주'를 허물었다"며 "법을 어기거나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큰소리치며 정의의 사도인 양, 탄압받는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모습,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거래와 길거리 투쟁으로 범죄와 비리를 덮으려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을 주장하며 노조와 '진짜 노동자'를 구분했다. 그는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는 거대 노조의 기득권을 위한 카르텔"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구직자는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없는 진짜 노동자와 국민들만 손해를 봤다"고 했다. "적법한 노동쟁의와 집회·시위 권리는 확실하고 철저하게 보장될 것"이라면서 "우리가 근절하려는 것은 오로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를 두고는 "최근 민간 단체 보조금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 혈세에 빨대를 꽂아 사리사욕을 채운 부정한 기생 세력의 실체가 수없이 드러났다"며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다.
색깔론도 꺼내 들었다. 김 대표는 "나라의 주요 공공기관이 특정 이념과 정파적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면서 사법부와 공영방송을 겨냥했다. 사법부를 향해서는 "우리법·국제인권법·민변의 '우국민'으로 구성된 사법부"라고 주장했고, 공영방송을 향해서는 "한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퍼 나르는 방송, 이건 공영방송이 아니라 민주당·민노총 프로파간다 매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교육계를 두고도 "전교조 출신, 야당 편향 교육감들이 교실의 정치화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방조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일 외교 성과를 부각하는 한편 반중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국내에 거주 중인 중국인 약 10만 명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며 "왜 우리만 빗장을 계속 열어놓아야 하냐"고 했다.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을 두고는 "중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면서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강보험기금이 외국인 의료 쇼핑 자금으로 줄줄 새선 안 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날 이 대표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의식한 듯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무노동 무임금 제도 도입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 등 '정치 쇄신의 3대 과제 공동 서약'도 제안했다.
김 대표의 연설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여당이 계속 야당 탓만 했다"며 "집권당으로서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넘었는데, 1년째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평론가는 "윤석열 정부가 정국을 풀어낼 수가 없다. 정치가 실종된 상태"라며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서 적과 동지를 갈라치기를 해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도 뜬금없는 소리"라며 "논리적인 근거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본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국정을 책임진 여당으로서 '이 나라를 어떻게 책임지겠다', '어려운 민생경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 이런 말씀보다 오로지 남 탓, 전 정부 탓"이라고 평가하며 "특히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야당 비난하는 데 저렇게 주력하는지 이해가 좀 안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권한만큼 국민의 삶이나 국가 미래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협치 의지, 공감 능력, 책임 의식을 찾을 수 없는 여당 대표의 내로남불 연설"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는 "극우 유튜버의 막말 라이브 방송만 보셨나? 오늘 김기현 대표의 연설은 여당 대표의 품격을 찾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면서 "50분 연설 내내 내로남불로 일관하며 윤 대통령의 일방 독주를 옹호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대표의 연설에서 야당에 대한 협치 의지나 국민에 대한 공감, 국정에 대한 책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노동계, 언론계, 교육계, 사법부, 야당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찬 공격적 언사로 가득했다"며 "닥쳐온 경제 위기를 해결할 의지도, 대안도 없이 노조 적대시 정책과 감세 정책을 받아들이라고 윽박질렀고, 자랑스럽게 꺼내 든 것들은 전부 정권의 권력 장악을 위한 방편뿐"이라고 했다.
이어 "상호주의를 말하면서도 윤 대통령의 대일 굴욕외교를 찬양하고, 후쿠시마 핵 폐수의 위험성에 눈감고 국민의 우려는 '괴담 기획', '선전선동술' 운운하며 매도했다"며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민생과 경제를 지키려다 늘어난 국가채무를 마치 문재인 정부가 무작정 늘린 것처럼 호도했다. 이렇게 남 탓으로 점철된 여당 대표의 연설은 일찍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통합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한심한 연설은 할 수 없다"며 "국민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용산만 바라보며 대통령실의 앵무새가 되려고 하냐"고 비판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를 두고 "애처로운 용산의 푸들"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김 대표의 첫 교섭단체 연설은 오만한 적반하장 그 자체였다"며 "자기 묻은 똥은 보지 않고,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 없이 전 정권 탓, 남 탓, 심지어는 국민 탓으로 국정운영 실패를 가리려는 최악의 여당 대표 연설이었다"고 혹평했다.
또한 김 수석대변인은 "연설 태도 또한 최악이었다. 정작 강해야 할 사람에게는 한없이 숙이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윽박지르며 취조하는 듯한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웠다"며 "국민들은 무능과 약함을 감추려고 주인 품에 안겨 밖을 향해 더 크게 짖어대는 애처로운 용산의 푸들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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