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장사'에 출판기념회 놓지 못하는 정치권
"돈에 덜 의존하는 정치 분위기 만들어야"
국회의원이 '작가'로 소개되는 장소. 출판기념회에서 의원들은 '책'을 팔지만, 찾아온 이들은 주로 의원의 지지세를 고려해 산다.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오가는 돈 봉투, 주인공과의 인증샷은 예식장을 방불케한다. 책의 '탄생'을 알리는 시끌벅적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나면 책의 '돌봄'은 방치된다. 출판기념회가 돈줄이 막힌 의원들의 '정치 후원금 전달식' '우회 로비 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 야당 인사는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억 원대 현금다발이 나오자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언제까지 '정치자금법 위반' 사각지대를 손 놓고 있어야 할까. 20대·21대 국회에서의 책 출간과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살펴보고,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
☞<상>편에 이어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014년 8월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측으로부터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 상당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정치권이 들썩였다. 당시 신 의원은 "공식 출판기념회를 통해 받은 수익금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신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시절 관련 법안 2건을 대표발의했다며 '뇌물' 성격이 짙다고 봤고, 결국 신 의원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2015년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노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산자위 산하 공공기관 등에 자신의 시집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갑질' 논란이 일자, 노 의원은 대국민 사과하고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1년 2월 황희 민주당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3인 가족 생활비 월 60만 원' 신고가 논란이 되자 출판기념회 수익 7000만 원 등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수입으로 전세금을 갚고 생활비로 쓰는 등 사적 사용했다고 해명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2022년 11월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금 3억 원가량의 현금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출판기념회 때 남은 돈과 아버님 조의금에 대해 임의로 봉인 조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기간 정기재산변동신고 과정에서 보유 현금을 등록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본인, 배우자, 본인의 직계 존‧비속이 소유한 현금이 1000만 원 이상이면 등록해야 한다.
출판기념회는 '입법 로비 창구'는 물론 최근 들어 불법 정치자금의 '세탁' 역할까지 한다는 오명을 받고 있다.
◆상임위원장 출판기념회, 피감기관 관계자 '눈 도장'
지난달 26일, 단국대 난파음악관 콘서트홀 로비에는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의 '북 콘서트'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긴 책상 위에는 책 1권을 담은 노란색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안이 보이지 않는 흰색 모금함 2개가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해온 봉투를 모금함에 넣거나, 현장에서 직접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봉투에 담았다. 모금함에 넣기 전 돈 봉투와 함께 인증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정 의원의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 책 정가는 1만5000원이지만 봉투에 담긴 액수는 5만 원에서 20만 원 이상까지 제각각이었다. 한 사람이 봉투 세네 개를 가져와 전달하고, 책 십여 권을 양손 가득 들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책 판매 현장이었지만 책값을 묻지도, 거스름돈이나 영수증을 내주지도 않았다.
행사장 로비에는 여러 기관, 단체에서 온 화환들이 줄지어 놓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문신사중앙회'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경기도치과의사회' '대한화장품협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연금공단' '국립암센터' '중앙사회서비스원'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등 피감기관 단체장, 지역구 단체 인사가 보낸 것이 다수였다.
600석 규모의 행사장도 꽉 찼다. 책만 구매하고 발길을 돌린 이들까지 포함하면 총 참석자는 1000명이 넘어 보였다. 3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도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출판기념회 기본 취지와 달리 "아주 굳게 지지해 주셔서 다음번 총선에서 아주 큰 결과가 여기서 나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반드시 여러분께서 함께 힘을 합해서 3선을 만들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며 정 의원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도 나왔다. 이 같은 풍경은 여느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정치권에선 상임위원장의 출판기념회를 더 까다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행사를 개최한 위원장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임위 회의와 입법을 조율하는 상임위원장 출판기념회 개최는 피감기관이나 단체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 의원) 5월까지가 임기인데 그 전에 (정치자금을) 걷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몫인 21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장은 정 의원과 한정애 의원이 1년씩 나눠 맡기로 해, 정 의원의 임기는 이달까지다. 의료업계 단체에 속한 한 참석자는 '상임위원장의 출판기념회 개최에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총선 앞두고 있으니 열심히 준비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라며 말을 아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기관 및 단체 측 다수는 국회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자발적으로 행사에 참석했다고 답했다. 초청장을 받았다는 측은 소수였다.
상임위원장 신분으로 출판기념회를 연 경우는 21대 국회에서 한 차례 더 있다. 전임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 4월 5일 공군회관에서 '코로나 방역에서 글로벌 백신 허브까지'라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20대 국회에선 △이명수(보건복지위원장) △황주홍(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노웅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안민석(문화체육관광위원장) △양승조(보건복지위원장) △윤상현(외교통일위원장) 등 6건이다.
◆출판기념회 행사 비용 3000만~4000만 원...'남는 장사'
정치권에 따르면 출판기념회 행사 개최 자체에 드는 비용은 장소 대여비, 디자인 제작비, 현수막 제작비, 사회자 섭외비용 등 약 1000만 원 정도로, 의정보고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책 제작 및 인쇄 비용까지 합하면 3000만~4000만 원 소요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초판 발행 부수는 출판기념회 당일 판매용으로 1000부 미만으로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판기념회를 열어 1만5000원~2만 원 정도의 정가로만 판매한다면 큰 수익은커녕 적자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정치인의 책을 대형 출판사는 꺼리고 영세 출판사가 발간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정가보다 수 배 이상으로 파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출판사는 책 정가 만큼만 판매대금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의원에게 돌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수익은 의원 본인이나 극소수의 보좌진만 공유한다고 한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개최 경험이 있는 B 보좌관은 "출판사에는 정가로 계산되고 실제 수익은 모른다. 출판기념회 때 얼마가 들어왔는지는 의원하고 보좌관하고 둘만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출판기념회를 투명하게 관리한다면 정치 신인에겐 홍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장단이 있다고 분석했다. B 보좌관은 "책 장사를 한다면 욕먹어도 싸다. 하지만 출판기념회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4년 의정활동 결과물을 쓸 수도 있고 초선이나 정치 신인에겐 알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선거 경비를 마련하는 목적도 있지만, 선거 때 상대 후보에게 보여주는 세 과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출판기념회 폐지냐, 투명 공개냐...논의 착수부터
출판기념회를 폐지하거나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은 19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치권 무관심 속에 바뀐 건 없는 실정이다.
2014년 출판기념회가 '뇌물 통로' 논란에 직면한 2014년에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 153명의 명의로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법안까지 나왔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관련 법 개정 발의는 지난 2018년 8월이 마지막이다. △1인당 한 권으로 판매 제한 △행사 후 30일 이내에 수입 및 지출 내역에 대한 회계보고 의무화 △관련 법 위반시 피선거권 제한 등이 논의된 출판기념회 제도 개선안의 주요 내용이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이전 개최, 행사 참석자에 대한 다과 제공 한도가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제재 규정이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관련법이 마련되지 않아 나서서 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해당사자인 정치인들은 현행법상 정치자금 모금 한도(선거 없는 해 연간 1억5000만 원)로는 사무실 운영 등이 어렵다는 점을 토로한다. 2004년 개정된 '오세훈법'에 따라 기업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가 불가능해지자 정치인 돈줄이 막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출판기념회를 전면 폐지하자는 측과 상세 내역을 공개해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출판기념회를 정치자금으로 포함해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며 "출판기념회는 정치 홍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시민들에게 정치적인 소신이나 정치 철학을 그렇게 한꺼번에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출판기념회를 정치인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다만 사후에 꼭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투명하게 제도화하는 개선 방안을 만들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투명하게 관리할 수가 있겠나. 또 정식 후원금도 다 받고 있지 않나. 돈을 받아서 투명하게 쓰는 방법도 있지만, 돈이 안 드는 깨끗한 정치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돈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판기념회는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자율적으로는 (투명한 관리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돈의 유혹에 정치가 구속되면 유능한 젊은 정치 지방생들이 정치권에 쉽게 유입되지 못하고 정치는 국민과 멀어질 수 있다. 또 특정 이해관계자에 정치가 끌려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윤 교수는 이어 "현재 정당보조금, 선거보조금을 모두 지원하고 있다. 돈이 더 많이 필요한 정치 구조가 자꾸 만들어지면 공천 헌금 이런 문제들이 지속된다"며 "정치인 한 사람이 '나는 돈을 덜 쓸 거야'라고 해선 될 것 같지 않고 정치문화 자체가 음성적으로 불법적인 돈을 썼다간 큰일 난다는 인식과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돈이 더 필요한데 어떡하나' 하는 정치권 목소리만 받아주다간 정치가 언제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언제 발전하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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