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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파는 의원들 <상>] 판매 수익 '깜깜이'…정치자금 모금 '우회로' 전락

  • 정치 | 2023-05-02 00:00

20대 국회 출판기념회 79건, 절반이 '총선 5개월 전' 열려
'북적북적' 출판기념회, 시중 판매는 뒷전…21대 의원 중 단 3명 공개


총선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 '출판기념회'를 열었거나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2019년 7월 30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 /이새롬 기자
총선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 '출판기념회'를 열었거나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2019년 7월 30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 /이새롬 기자

국회의원이 '작가'로 소개되는 장소. 출판기념회에서 의원들은 '책'을 팔지만, 찾아온 이들은 주로 의원의 지지세를 고려해 산다.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오가는 돈 봉투, 주인공과의 인증샷은 예식장을 방불케한다. 책의 '탄생'을 알리는 시끌벅적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나면 책의 '돌봄'은 방치된다. 출판기념회가 돈줄이 막힌 의원들의 '정치 후원금 전달식' '우회 로비 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 야당 인사는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억 원대 현금 다발이 나오자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언제까지 '정치자금법 위반' 사각지대를 손놓고 있어야 할까. 20대·21대 국회에서의 책 출간과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살펴보고,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총선이 임박하면 여의도 정가에 '출판기념회'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그러나 시중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거나, 책의 주민등록번호라 할 수 있는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도서 번호) 발급이 안 된 경우도 있다. 출판기념회에선 정가보다 수 배 비싼 책값이 오가지만 판매 수익은 깜깜이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총선 직전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자신의 비전을 담은 책을 내거나, 퇴임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이용득 의원 블로그·뉴시스

◆21대 국회 출판기념회 개최 13명...20대에선 69명

<더팩트>가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4월 26일 기준 300명 중 21명이 책 1권 이상을 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출판기념회를 연 의원은 13명이다. 총선이 1년 남은 데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단체 대면 행사를 자제했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출판기념회 개최를 정당별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의힘 3명 ▲정의당 2명 순이었다.

책을 두 권 내고 출판기념회도 두 차례 가진 의원은 1명이었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수필집 '우리 안의 영웅을 찾아서'와 '숨은 정치를 찾아서' 출판기념회를 각각 2021년 11월, 2022년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와 충남 아산 모나무르 콤플렉스홀에서 열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2021년 12월 4일 지역구인 광주에서, 이틀 뒤 국회에서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20대 국회에서는 300명 중 93명이 책을 냈다. 이중 69명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중복을 포함하면 출판기념회 개최 횟수는 총 79건이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총선 직전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자신의 비전을 담은 책을 내거나, 퇴임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이용득 의원 블로그·뉴시스

정당별로 보면 20대 국회 의석 보유율은 민주당 41%,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38%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민주당 소속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38건으로, 18건의 새누리당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국민의당 14건 ▲정의당 5건 ▲무소속 4건 순이다.

두 권 이상의 책을 내고 각각 한 차례씩 출판기념회를 연 의원은 4명이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인생'으로 2018년 3월과 2019년 6월에 각각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안상수 새누리당 의원은 '일자리 대통령'과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구하라'로 2017년 2월에 이어 2년 후에도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수필가로 등단해 매해 책을 내면서 '책 쓰는 국회의원' 별명을 가진 이명수 의원은 2020년에도 세 권의 책(그리운 미래 대한민국을 사랑한 모두의 소망, 함께 부르는 소망 동행시 십년 후 한국인에게 쓰는 편지)을 내고 2017년부터 3년 연속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최순실 저격수'로 유명한 안민석 의원도 국정농단 추적기를 담은 두 권의 책(끝나지 않은 전쟁 최순실 국정농단 천 일의 추적기, 끝나지 않은 전쟁 한반도 운명을 바꾼 국정농단 추적기)을 비롯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시절 낸 '안민석의 물향기' 등 총 3권의 책으로 각각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책 하나로 국회와 지역구에서 중복해 출판기념회를 연 의원도 3명 있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비례)은 '제4의 물결 희망의 미래 시작-Q!'를 발간해 2020년 1월 1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문화원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이틀 뒤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도 열었다.

임종성 의원은 '사람을 담다, 광주를 담다'로 2019년 10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약 두 달 뒤 남한산성아트홀 대극장에서 다시 열었다.

홍문종 의원은 '꼴통보수 그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로 2019년 12월 27일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2020년 1월 14일 지역구 소재의 경민컨벤션 그랜드볼룸에서 출판기념회를 또 열었다. 홍 의원은 '동이 튼다 자, 이제 가자 그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로도 2018년 12월 20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추이를 보면 출판기념회 개최 횟수는 최근 들어 줄어드는 양상이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9대 국회(2011년~2014년 7월 기간)에서 총 192명이 총 279건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권의 책으로 국회와 지역구 등에서 출판기념회 중복으로 연 의원은 13명이었다.

21대 국회에서는 현재 기준(2023년 4월 26일) 21명이 책을 출간했고 13명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의당 강은미·배진교 의원의 책은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다. /강은미·배진교 의원 블로그 갈무리
21대 국회에서는 현재 기준(2023년 4월 26일) 21명이 책을 출간했고 13명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의당 강은미·배진교 의원의 책은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다. /강은미·배진교 의원 블로그 갈무리

◆잿밥에만 관심? 시중 판매 안 하는 책도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우회로가 아니냐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열었지만, 막상 서점에 입고가 안 돼 찾아볼 수 없는 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선 배진교 정의당 의원의 '당신을 찾을게요'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사람 속에 길이 있다'는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지 않고 있다. 두 의원 측은 출판기념회에서 거의 판매됐으며, 이후 출판기념회 참가자들 위주로 택배를 통해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배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인쇄한 게 모두 구매가 돼서 여유분이 없어서 (온오프라인 판매를) 안 한 걸로 알고 있다. 못 오신 분들은 추가로 택배로 전달한 걸로 안다"고 했다. 시중 판매의 경우 실적이 저조할 것을 감안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20대 국회에선 ISBN을 발급받지 않은 책도 7건 있었다. ISBN은 사람으로 따지면 주민등록번호 개념으로, 독립 서점 등에선 ISBN 없이 책을 유통할 수 있지만 대형서점에선 판매가 안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의 ISBN·ISSN·납본 시스템으로 검색한 결과, 20대 국회의원이 발간한 책 중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의 '탄탄한 생활정치로 채운 18만km의 의정'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저희요, 무허가 국회의원입니다만' ▲문희상 민주당 의원, '동행'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 '박주선'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 '대장 철새는 헬스클럽 가지 않는다 100가지 낙서, 100가지 혜안' ▲원혜영 민주당 의원, 원혜영이 그린 만화도시 이야기▲윤재옥 새누리당 의원, 소리 없이 강한 정치 여의도로 간 ‘첫 번째 펭귄’의 새 정치 도전기' 는 ISBN 발행을 받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책 판매 수익을 공개한 의원은 3명이다.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하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박성준 민주당 의원(왼쪽부터). /이명수 의원 블로그 갈무리·남윤호 기자
21대 국회에서 책 판매 수익을 공개한 의원은 3명이다.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하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박성준 민주당 의원(왼쪽부터). /이명수 의원 블로그 갈무리·남윤호 기자

◆판매 부수·수익 '깜깜이'...20대 출판기념회 절반이 '총선 4~5개월 전'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정치 활동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연간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지만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액은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출판기념회 모금은 한도나 내역 공개 의무가 없고 과세 대상도 아니다. 의원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한, 판매 부수와 수익은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진이나 상임위원장 등 영향력 있는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뇌물 창구'로 변질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더팩트> 취재 결과, 21대 국회의원들의 책 판매 부수는 박성준 민주당 의원의 '스피치의 정치'가 약 2200부, 이용우 민주당 의원의 '두 발로 선 경제(공정 그리고 혁신)'는 4903부(4월 24일 기준)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책을 출간한 의원실 다수는 판매 부수나 수익을 알지 못하거나 정확한 수치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배 의원은 수익 공개 여부에 대해 "수익도 그렇게 많지 않다. 행사 비용으로 아마 거의 다 썼을 것"이라고 했다. 대형 서점이나 출판사도 저자와의 계약상 비공개 방침이라며 밝히기를 꺼렸다.

책 판매 수익은 3명만 공개했다. 국회의원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명수 의원은 '우리안의 영웅을 찾아서'와 '숨은 정치를 찾아서'로 각각 4500만 원, 70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 '문인 출신'인 도종환 의원은 2020년 1570만2000원, 2021년 1502만1000원, 2022년 1574만5000원의 지적재산권을 신고했다. 도 의원은 출판기념회를 열지는 않았다. 박성준 의원은 '스피치의 정치학'으로 389만8000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공개했다.

20대 국회에서 책 판매 수익을 공개한 의원은 5명이다. 도종환 의원은 2016년 1625만7000원, 2019년 2321만3000원의 소득을 냈다고 신고했다. 출판기념회는 역시 열지 않았다. 표창원 의원도 출판기념회 없이 '표창원의 정면돌파', '셜록을 찾아서' 책 판매 저작재산권으로 2100만 원을 신고했다. '행정학자 출신'의 유민봉 의원은 한국행정학 4판 출판권에 대한 2000만 원 수익을 공개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자서전 '열정과 도전'에 대해 3000만 원 판매 수익을 신고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2019년 12월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바 있다. 세 차례 출판기념회를 3년 연속으로 개최했던 이명수 의원은 '그리운 미래'로 5000만 원, '함께 부르는 소망 동행시'로 4500만 원, 십년 후 한국인에게 쓰는 편지로 6500만 원의 수익을 냈다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개최는 총선 직전에 몰렸다. 시점별로 보면 총 79건 중 49.3%(39건)가 총선 4~5개월 전인 2019년 12월(14건), 1월(25건)에 열렀다. 총선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것을 감안하면 선거 직전에 줄줄이 연 셈이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총선 직전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자신의 비전을 담은 책을 내거나, 퇴임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이용득 의원 블로그·뉴시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총선 직전 출판기념회를 열지만, 자신의 비전을 담은 책을 내거나, 퇴임을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이용득 의원 블로그·뉴시스

이례적으로 국회의원 임기 직전인 2020년 5월 출판기념회를 연 사례도 3건 있었다. 정계 은퇴를 앞두고 '퇴임식' 성격이 짙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5년 정치 인생의 생각을 담은 글들을 묶은 '동행'을, 원혜영 의원은 두 번의 부천시장과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부천시를 만화 콘텐츠 도시로 자리잡도록 한 경험담을 담은 '원혜영이 그린 만화도시 이야기'를, 이용득 의원은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꿈꾸다'라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장소를 살펴보면 출판기념회가 국회에서 개최된 사례는 21대에선 4건, 20대에선 23건이다. '국회청사 회의장 등 사용 내규'에 따르면 회의실 대관은 의정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만 허가한다. 사무처는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주관하는 행사이기에 출판기념회가 의정활동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출판기념회는 정치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없기에 수익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정치관계법과 충돌된다. 국회에서는 영리목적의 회의실 사용도 불가한데, 별도의 대관비 없이 출판기념회를 열고 책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역시 의원들의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좌진 출신 A 씨는 "출판기념회가 세 과시나 자금 확보 쪽으로 많이 (목적이) 바뀌었다. 정치인들이 지역에서도 출판기념회를 많이 여는데 그때는 정말 세 과시 느낌이 많이 난다"며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대필 작가들도 많이 썼다. 대필 작가가 의원들을 인터뷰하고 거기에 맞춰서 글을 가져오면 의원이 검토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한 의원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어 "책 출간은 출판기념회를 열기 위해 맞춰서 하는 것, 정치 인생을 정리해보는 식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책의) 학술적 의미는 많이 비껴 있다. 출판기념회를 한다면 좀 더 책에 집중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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