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발 돈 봉투 의혹·尹 외교 행보 역공
"자체 진상조사 없다" 방침 유지…"지도부 리더십 포기하는 것" 쓴소리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중심인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예정보다 두 달 앞당겨 24일 조기 귀국했다. 당 지도부가 수사선상에 오른 의원들에 대해 제명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자체 진상조사 없이 수사를 지켜보겠다며 '조용한 대응' 방침을 유지했다. 국빈 방미길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실언 논란으로 역공세도 펼쳤다.
송 전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45분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당대표 후보의 캠프 관계자 9명이 현금 9400만 원을 현역 의원 20여 명에게 전달했다는 의혹 관련, 검찰이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에 나선 지 12일 만이다. 당초 송 전 대표는 조기 귀국 계획이 없었으나 당 안팎의 강력한 요청에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는 의혹을 정면 돌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 위중하게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저로 인해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오늘이라도 저를 소환하면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며 "저 송영길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절대 회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파리 기자회견에선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탈당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귀국한 송 전 대표는 우선 전당대회 당시 캠프 관계자 보고를 받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가 귀국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조용한 대응' 방침을 유지했다. 수사권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자체 진상조사는 보류하고 사건의 윤곽이 나올 때까지 수사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 후 권칠승 수석 대변인은 "오늘 송 전 대표가 입국하면 상황 변화가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게 낫지 않나 싶다"고 했다. 이어 의혹이 제기된 인사들의 출당 조치나 자체 진상조사 등 의견이 나오는 데 대해 "지도부도 잘 알고 있다"고만 했다. 오후 들어 1시간 넘게 진행된 고위전략회의에선 송 전 대표 귀국에 따른 '돈 봉투 의혹' 대응 논의는 아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여권발 '돈 봉투 의혹'과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을 정조준해 반격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내 '돈 봉투 의혹' 관련한 질의에 "(국민의힘)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 전 의원(고양시정 당협위원장)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겨냥한 것이다. 서영교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원이 고양시에서 공천을 미끼로 돈 봉투를 주고 갔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내용을 낱낱이 세상에 밝히고 국민의힘이 이에 대해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며 반격했다. '불법 정지차금 의혹'이 민주당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5박 7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하는 윤 대통령 외교 행보에 대해서도 거센 공세를 이어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쟁하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외교는 철저하게 국익 중심 실용 외교여야 한다"는 글을 올리는가 하면, 최고위 회의에서도 "혹독한 실패로 끝난 일본 퍼주기 외교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공개된 윤 대통령의 미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 발언을 두고 파장이 일자, 이 대표는 이례적으로 카메라 앞 발언을 자청한 뒤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추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도부의 역공 전략에도 당내에선 당분간 '돈 봉투 의혹'을 둘러싼 파열음이 지속될 전망이다. 여당은 돈 봉투 의혹에 연관된 송 전 대표의 보좌관이 과거 성남시에 근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대표와 송 전 대표의 연결 고리를 부각하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심송심, 송이연대였는데 돈 봉투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이 대표는 특유의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주장하며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의 귀국, 탈당으로 돈 봉투 사건을 꼬리 자르기할 수 있다는 발상을 즉각 접어야 한다"고 했다.
당 내부에서도 지도부가 조속히 자체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 불신임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적 비명계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송 전 대표 귀국에 대해 "한숨 돌릴 상황은 아니다. 돈 봉투 사건의 진실이 하나도 안 밝혀졌다"면서 "검찰 수사와 별개로 그 조직의 자체 정화 조사는 해야 하는데, 미리 포기하는 거는 지도부의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 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당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두고도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돈 봉투 사건이 다 밝혀져야 되겠지만 이것은 전당대회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면서 "'대의원 비율이 너무 높아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 부분은 개선해 나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논의가 될 것"이라고 방안을 예고했다. 현재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비중은 30%로, 대의원의 1표가 권리당원 60표 가치를 갖는다. 이에 '개딸' 등 강성 당원들은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대의원이 많이 포진된 친문계 등에선 강성 당원에 휘둘릴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돈 봉투 파문'을 계기로 당 지도부가 대의원제 폐지를 추진할 경우 계파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한편 당 지지율은 '돈 봉투 파문' 영향으로 하락한 모습이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7~23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3.1%포인트 하락한 45.7%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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