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 공물 봉납할 듯…한일관계 악재 예고
태평양전쟁 희생자 명단 대다수…과거사 반성은 어디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대일감정을 자극할 또 하나의 악재가 있다. 바로 오는 21, 22일 열릴 일본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춘계 예대제(제사)다. 일본 정치인들은 매년 4, 10월 두 차례 제사 때와 패전기념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는 식으로 신사에 합사된 이들을 기념해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번에도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리 취임 전까지는 신사 참배도, 공물 헌납도 하지 않았던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한 이후 봄·가을 제사와 8월 15일 패전일, 네 차례 공물을 바쳤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가 '내각총리대신' 명의로 공물을 바친 데 대해 "개인 자격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총리 명의를 쓰는 것은 지금까지 관례로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국에 미칠 외교적 파장을 의식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사실상의 참배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국을 위해 숨진 영령들에게 참배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이뤄지는 일 아니냐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야스쿠니 신사엔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 14명과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 중 사망한 군인·군속(군공무원)·정치인·민간인 등 246만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 이들 중 대다수인 213만3000여명은 일제 군국주의 야욕이 극에 달한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 때 사망한 이들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 이유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업적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들을 기리는 행위는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미화·정당화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등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나라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와 공물 봉납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와 일제의 부역자, 전쟁에 강제로 동원돼 희생된 피해자가 야스쿠니 신사라는 한 공간에서 동등한 신으로 떠받들여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 국립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이 1976년 발간한 '야스쿠니신사 문제 자료집'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은 2만636명, '도쿄신문' 1995년 8월 26일 기사에 따르면 2만1181명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유족들에게 야스쿠니 신사 자료제공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족에게 전사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동북아역사 리포트 35호) 살아서는 강제로 침략전쟁에 동원돼 군국주의에 희생됐던 영령들이 죽어서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일부 유족들은 무단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된 상태다. 2001년 한국인 유족 416명이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을 시작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제기한 무단 합사 철회 소송은 총 5건이다. 3건은 한국인, 2건은 일본인에 의한 소송이다. 원고 측은 △ 야스쿠니 신사의 모든 명부에서 고인의 이름 삭제 △ 개인정보를 야스쿠니 신사에 제공해 합사에 협력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했다. 일본인이 제기한 소송 2건에 대해 대법원은 2011년 12월과 2012년 6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한국인이 제기한 소송 3건 중 1건은 대법원(2011월 12월), 1건은 고등법원에서 기각(2013년 6월)돼 종결됐다. 2019년 5월 도쿄지방법원에서 기각돼 항소 중인 나머지 1건은 오는 5월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근대화 개혁 운동인 메이지 유신(1868) 시기와 그 이후에 일어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신으로 모신 곳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1869년에 세워진 도쿄쇼콘자(東京招魂社)다. 도쿄쇼콘자는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사망한 정부군을 애도할 목적으로 세워졌다가, 1879년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 신사'로 개명된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서 사망한 일본군 등이 합사 대상이 됐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육·해군이 관리하던 야스쿠니 신사는 지금은 일반 종교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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