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화해야" 찬성론…"시기상조" 신중론 팽팽
상대방 동의 여부 판단 쟁점 두고 이견 갈려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갈렸다. 성범죄를 근절하며 처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비동의 강간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찬성론 무고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고 피해자의 동의 요건도 모호해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충돌했다. 다만 법 조항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30일 더팩트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비동의강간죄, 젠더갈등을 넘자!'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박상병 시사평론가(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 사회로 류 의원과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 대표' 신인규 변호사, 법무부 형사법제과 이정아 검사가 토론에 참여했다. 이번 토론회는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대한 이견을 좁혀 젠더 갈등의 벽을 허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21대 국회에서 이를 개정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폭행 ·협박으로'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로 개정하고, 사람의 저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사처벌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백혜련 민주당 의원 발의)과,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장 제목을 '성적 침해의 죄'로 바꾸고 강간의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인 경우'로 유형화하자는 내용의 법안(류 의원)이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비동의강간죄의 첨예한 쟁점은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확인하느냐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상호 간 합의했다더라도 피해자의 변심이나 거짓 진술의 가능성이 있으며 어떤 의사 표시를 동의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해석이 갈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사법부가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에 두고도 시각이 엇갈린다. 마찬가지로 패널들은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신 변호사는 자유토론에서 "우리나라에서 성범죄에 대한 유죄율은 89~90% 정도로 워낙 높다. (범죄 특성상) 증거를 남기지 않기도 하지만, 사적 내밀한 공간에서 이뤄지기에 판사들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처벌한다. 따라서 유죄 판결을 받는 억울한 사람이 분명히 나온다"며 경계했다. 그는 "특히 성범죄로 처벌받으면 사회에서는 거의 매장당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 나오면 안 된다"며 "우리가 이러한 형사사법 체계의 대원칙을 가지고 비동의강간제 도입 여부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동의 개념은 결국 판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며 '내가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동의 여부를 구속 요건에 넣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동의라는 것을 구성 요건을 넣어버리는 순간 명시적 동의가 없는 모든 남성은 잠정적 범죄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면 비동의간음죄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법화되는 것은 대단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내가 무고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어 "예를 들어 물건을 누구한테 줬는데 며칠 뒤에 마음이 바뀌어서 물건 준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성범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한 대로 처벌받는다. 그래서 무고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증 책임이 전환 여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폭행이나 협박에 따른 성범죄는 검사가 입증해야 하지만, 비동의강간죄가 입법화된다면 성관계 비동의에 대해 가해자가 입증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극명한 시각차가 드러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검사가 입증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며 "성범죄 구성 요건에 동의 여부를 넣게 되면 그 무죄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고인이 동의가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무죄를 다투게 된 하게 된다"고 말했다. 형사법제의 대원칙인 '범죄의 입증책임은 검사가 진다'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서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 이후 강간죄에 있어 경찰의 불송치 비율은 더 늘어났다는 비공식 통계가 있다. 경찰과 검찰이 거르고 른 사건들, 검사가 입증할 수 있고 공소 유지할 수 있는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성범죄는 결코 피해자가 신고만 하면 바로 기소까지 이루어지고 유죄까지 이뤄지는 식의 범죄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류 의원은 "원칙적으로는 형사재판에서 공소 제기된 범죄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자 측에게 있지만, 현실에선 양 당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부담을 진다"며 "당사자 모두 이런 입증에 실패했을 때 불이익을 누구에게 돌리느냐 하면 그 입증책임은 여전히 검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검사는 법무부 공식 의견이 아닌 실무자 검토 의견이라는 단서를 단 뒤 "원칙적으로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으나 실제 재판에서는 객관적 반대 자료가 없으면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할 수 없다는 판례의 태도에 따라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될 것"이라며 "피·가해자의 진술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한 찬반 양측은 쟁점 사안에 대해 접점을 찾아보려고 했다. 류 의원은 반대 측 진영을 향해 "형법 개정안 본문 구조를 '상대방의 성교에 동의한다'라는 직간접적 의사표시를 기본으로 하고, 양해나 승낙처럼 법원의 해석을 통해 좀 보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법문 구조를 바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내용의 법안을 새로 만들고 '그 의사는 명확하고 표현된 것이어야 한다'라고 입법 취지를 보완하면 어떻겠나"라고 물었다.
신 변호사는 "폭행·협박이라는 구성 요건 등 법 해석 적용권을 가진 대법원의 해석권을 입법화하자는 것까지는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무고죄에 대해 특수 무고 등을 (법안에) 넣어 무고의 엄격한 요건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무고죄에 대해 "'동의' 여부 문제만큼이나 찬반 논란이 많은 부분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추후 접점을 찾아가기 위한 토론회 개최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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