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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근로시간 유연화' 혼선…尹 "주 60시간 이상 '무리'"

  • 정치 | 2023-03-22 00:00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혼선 끝에 '60시간 상한' 가닥
보건사회연구원, '취업자 희망' 주 근로시간은 '약 37시간'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사진)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사진)에서 "최근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관해 다소 논란이 있다"며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통해 16일 발표한 입장을 재차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문재인 정부 시절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도입한 '주 52시간 근로제'를 보다 유연화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시작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관련 메시지가 엇갈리면서 '어떻게 유연화할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가중됐다. 윤 대통령의 관련 '지시'를 고위 참모가 "개인적 생각에서 말한 것"이라고 사실상 뒤집기도 했다. 혼란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21일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는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상한선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어느 정도 설정된 모양새다.

지난 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시간 유연화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4월 17일까지)했다. 노사가 합의할 경우 '현행 주 52시간'이 최대인 근로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총량 관리할 수 있도록 추가 선택지를 부여해 이론적으로 특정주에 최대 주 '69시간' 또는 '64시간' 근로가 가능하게 하고, 나머지 주에는 앞서 몰아 쓴 연장근로만큼 쉬게 하는 게 골자다.

◆노동부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 주 52 근로제 개편"

이와 함께 연장근로 단위 총량관리제도 도입해 분기는 10%, 반기는 20%, 연 단위는 30% 연장근로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이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 장관은 "현재 근로시간 제도는 근로자와 기업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제약하고, 날로 다양화·고도화되는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게 됐다"며 "이는 선택권과 건강권이 조화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낡고 불합리한 제도·관행을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라며 "이번 정부 입법안은 경제 규모 10위권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실제 노동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실상 주 69시간 근로제가 굳어질 수 있다", "공짜 야근이 심해질 수 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완전 폐기해야 한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른바 MZ 세대 노조라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정부 개편안에 대해 "더 큰 과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연장근로를 '극단적 경우다', '그럴 일 없다', '감독 철저히 하겠다'라는 말보다는 적어도 개편안에 대한 이런 우려로부터 노동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넣거나, 현행에서도 근로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바뀌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며 "이번 개편안은 취지가 불분명하고, (노동자들의) 우려점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4일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오늘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 법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입법예고 8일 만에 윤 대통령이 '재검토'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다음 날(15일) 김 수석은 브리핑에서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은 종래 주 단위로 묶여 있던 것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해서 자유롭게 노사가 협의할 수 있도록 하되,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세밀하게 청취한 후 방향을 잡을 것"이라며 여론 청취 후 방향 설정을 예고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은혜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16일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며 사실상의 상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께서는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대통령은)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주 근로시간)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 정부는 추후 MZ 근로자, 노조 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현장의 다양한 의견에 대해 보다 세심하게 귀 기울이면서 보완 방안을 마련해 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 60시간은 무리라는 것을 윤 대통령이 언제 직접 말을 한 것인지, 또 노동부 발표와 엇박자'라는 질문에 "노동부에서 발표한 법안 내용이 상당히 복잡하다"며 "주 69시간은 노사 합의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사실상 정부안의 장시간 근로 가능성에 대해 입법예고 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대통령실, '대통령 지시'와 다른 메시지…다시 뒤집은 尹

하지만 대통령실의 입장은 또다시 달라졌다. 20일 대통령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주 60시간 이상 무리' 언급에 대해 "그렇게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겠냐는 개인적 생각에서 말씀한 것이지, (근로시간 개편) 논의의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의견을 수렴해 60시간이 아니고 더 이상 나올 수도 있다. 캡(상한)을 씌우는 게 적절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굳이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대통령의 지시와 다른 메시지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의 입장은 하루 만에 윤 대통령이 또다시 뒤집었다. 윤 대통령은 2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관해 다소 논란이 있다"며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안 수석을 통해 16일 발표한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면서도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상한선 설정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노동 시장 유연화'를 노사법치 확립과 함께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으면서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할 것"이라며 "특히 MZ 근로자, 노조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와 폭넓게 소통하겠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 새로운 입법이 필요한 노동개혁 과제에 관해 국민들께서 좋은 의견을 많이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다르다는 전해철 환노위원장 질의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이 장관은 관련한 야당의 공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며 "대통령 말씀을 담아 보완 방안을 만들겠다"고 상한선을 둔 근로시간 유연화를 예고했다. 돌고 돌아 주 60시간 미만 근로로 근로시간 유연화의 상한선이 사실상 정해졌지만, 대통령실과 정부가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설정한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정부가 현재 주 52시간이 최대인 근로시간을 유연화해 더 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민들이 실제로 희망하는 주 근무시간은 이보다 훨씬 적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일 발표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주당 약 41시간으로 나타났으며, '희망하는 일하는 시간'은 약 37시간으로 나타났다(지난해 9월 20일~10월 7일, 전국 만 19~59세 2만2000명 대상 온라인 조사).

보고서는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장시간 일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로 알려져 있다"며 "과거보다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근로시간이 긴 편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인의 2021년 연평균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OECD 국가의 노동시간 평균(1716시간)보다 199시간 길며,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콜롬비아(1964시간), 칠레(1916시간)뿐이다.

OECD 회원국 중 연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의 1349시간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연간 566시간이나 더 일하며, 일본(1607시간)에 비해서 308시간 더 일한다. 또한 OECD의 일-생활 균형의 지표로 활용되는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자' 비율은 한국은 19.7%로 OECD 평균(10%)보다 2배가량 높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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