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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대법 판결 뒤집은 '日 강제동원' 해법…설익은 발표에 후폭풍 불가피

  • 정치 | 2023-03-07 00:00

외교부, 우리 기업 '자발적' 참여로 모은 기금으로 '배상금 지급' 
피해자지원단체 "日 정부에 저자세로 일관한 굴욕적인 해법"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과 관련해 우리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식의 '제3자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과 관련해 우리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식의 '제3자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인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을 6일 공식 발표했다. 미쓰비시중공업·신일철주금(일본제철) 등 우리 국민을 강제로 동원해 노역을 시켰던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피해자지원재단)이 국내 기업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출연한 금액으로 조성한 재원으로 배상금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이 핵심이다.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가 없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 취지에 어긋나는 해법에 '반쪽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우리 대법원 판결에 반발한 일본이 보복 조치로 시행한 '수출 규제'도 해결되지 않아서, 가시적인 이익도 없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우리 정부가 가해자인 일본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피해자들도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서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965년 협정' 근거로 물러서지 않는 日 입장 고려해 해법 마련

앞서 지난 2018년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은 여운택·신천수·이춘식·김규식 할아버지 등 4명에 대한 승소 판결을 확정하면서 "신일철주금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같은 해 11월 29일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해당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 뒤에 숨어 우리 사법부의 판단에 응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으로 그다음달(8월)에는 일본의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수출 규제로 맞대응한 것이다.

이에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하면서 물러나지 않았고, 한일관계는 급격히 경색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래 강제동원 판결 문제의 해결과 한일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

그 결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행안부 산하 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 및 피해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며 "나아가 동 재단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해 미래 세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해,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더욱 내실화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재원과 관련해선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 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는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에 발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 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해법을 제시한 것은 일본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일본이 납득할 만한 다른 제안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 대부분이 90대의 고령이고, 확정판결 피해자 15명 중 3명만 생존해 있어 시급히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또 국위에 걸맞은 우리의 주도적인 그리고 대승적인 결단"이라며 "정부가 이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피해자들에게는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또 새로운 노력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것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6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의견을 경청했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6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의견을 경청했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부 각본을 짜놓고 여론을 호도한 명분쌓기였다"고 비판했다. /나윤상 기자

특히 박 장관은 "지금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외교, 경제, 안보 모든 분야에서 한일 간의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장기간 경색된 이런 한일, 경색된 관계를 방치하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 국민을 위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며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본 니혼게이자신문(닛케이),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며 "앞으로 한일 간 정치·문화·경제적 관계가 심화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하야시 외무상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선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와는 다른 논의다"라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한일 정부는 수출 규제에 관한 한일 간 현안 사항에 대해 양측이 2019년 7월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관련한 양자 협의를 신속히 해나가기로 했다"며 "한국 정부는 관련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 규제를 '보복 조치'라면서, WTO에 제소해 국제적으로 분쟁 해결 절차를 밟고 있던 것을 중단하고, '이제부터' 한일 양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대상자인 일본 기업들은 이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기존 입장만 거듭 되풀이했다.

◆피해자 "동냥해서 주는 듯한 배상금 안 받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과 달리 일본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지 않고, 무엇보다 피해자도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측의 입장만을 대부분 반영한 해법을 제시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국내 비판 여론도 상당하다.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 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하는 배상금은) 안 받으련다"고 말했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소송 원고대리인과 민족문제연구소는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식민지배 불법성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의종 기자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소송 원고대리인과 민족문제연구소는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식민지배 불법성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의종 기자

강제동원 배상 확정판결 피해자의 지원단체와 대리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오늘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해법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저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오늘의 굴욕적인 해법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들은 "생존 피해자 3명은 모두 정부 해법에 반대하고 있다"며 "정부 해법에 동의하는 피해자들에 대해선 채권 소멸 절차를 진행하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에 따르면 피해자 유족 9명 중 4명만 명시적으로 한국 정부 입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많은 유족분들께서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 이해를 표해주셨고, 또 '상당수'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주셨다"는 박 장관의 발표와 상반된 입장이다.

정부는 상당수 유족이 이해를 해서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제시했다는데, 정작 당사자인 피해자의 상당수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피해자 및 유족의 의견을 왜곡해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해법을 밀어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정부는 '앞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정부 해법안과 이후 절차를 직접 설명하고 판결금 수령에 대한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피해자 한분 한분 직접 뵙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성실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윤석열 정권이 결국 역사 정의를 배신하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며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짓밟는 2차 가해이자,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폭거다. 가히 '삼전도 굴욕'(조선 인조가 삼전도로 나아가 청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한 사건)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 아닐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 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 발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 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 발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野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결정"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가 내놓은 안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강제징용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 측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이는 '대일 굴욕외교'의 결정판이자 '완전한 외교 실패'"라며 "강제징용 문제 해법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직접 사과와 전범 기업의 직접 배상이다. 피해자들의 일관된 요구이자 2018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확인한 판결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배치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대승적 결단이라는 어불성설 자화자찬으로 국민의 분노를 돋우고 있다.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결정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 이번 참사는 대승적 결단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정부의 자발적 굴욕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결국 정부는 '미래'에 방점을 두고 제3자 변제라는 대법원 판결과 다른 해법을 제시했지만, 피해 당사자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고 있고 부정적인 여론도 상당해 한일관계 불확실성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 (가해) 기업이 어떻게 법적인 조치는 아니더라도 정치적으로 사과에 표현을 담아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양국 경제 단체끼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에서 오늘 합의한 내용을 우리가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 일본 기업이나 정부도 어떤 판단을 하고 전향적으로 나올지에 대해서는 계속 기대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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