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뭔 죄냐. 농가들 생각은 안 하나"
'가' '부'도 제대로 못쓰나…"코미디 같은 일"
<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이철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민주당은 국회로 체포동의안이 보고되는 순간부터 부결을 확실했고, 결과도 그랬다. 그러나 부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최소 31표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가결 같은 부결'로 평가되면서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 내 이탈자를 특정하며 '살생부'까지 만들어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로 혼란스럽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도 인사검증과 전당대회로 소란스럽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인사정보관리단까지 만들었지만, 정순신 전 검사 아들 학교 폭력 문제를 걸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윤심 후보를 자처한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도 울산 땅 투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는 수사를 의뢰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경쟁자인 안철수 후보와 황교안 후보가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무더기 이탈표'에 뿔난 민주당원…'수박 의원실' 전화기 불난다
-지난달 27일 있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온 것에 관해 민주당 내 여진이 계속되고 있지?
-앞서 지도부가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으나 막상 결과는 그 뜻대로 되지 않았어.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과 무효표가 합쳐 20표가 나왔어. '가결 같은 부결' 결과에 이 대표는 당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 민주당 169석 중 최소 32명에서 39명까지 이탈표가 나왔다는 사실이 당내 큰 충격을 줬어.
-일부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걸로 추정되는 비명(이재명)계를 포함한 44명 민주당 의원의 명단이 공유됐어. 지지자들은 해당 명단을 '더불어민주당 낙선명단'이라 제목 짓고 '우리 지지자들은 오늘 여러분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덧붙였어.
-지지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이른바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쓰는 멸칭)으로 지칭하며 찬성표를 추궁하면서 의원뿐 아니라 의원실도 '문자 폭탄' '욕설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의원들 반응은 어때?
-'낙선 명단'에 포함된 한 의원에게 문자가 많이 오냐 물으니 "슬프지만 이젠 익숙한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어. 이 의원은 지난 대선 때부터 '수박' 논쟁 때마다 지지자들의 문자와 전화에 시달려 휴대폰을 한 번 바꿨다고도 덧붙였어.
-명단에 포함된 한 의원실 관계자도 "SNS에 체포동의안 부결이라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의원실로 전화가 오고 있다"며 "보좌진이 해명하면 '의원의 결백을 믿지만 이재명 뒤에 2000만 명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며 하루 종일 전화에 시달렸다고 했어.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전화 폭탄도 이제는 익숙할 지경"이라며 자포자기 심정을 전했어. 모 의원실에는 아예 전화선을 뽑아놨다는 말도 하더라고.
-전화 폭탄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해봤다고?
-맞아. 2일 지지자들 전화 폭탄에 시달리는 한 의원실에 가서 전화를 대신 받아보기도 했어. 10분에 한 번꼴로 전화가 오더라고. "○○○ 의원실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자 자신을 민주당 당원이라 소개한 수화기 너머 중년 여성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이재명보고 사퇴하라고 한 ○○○ 의원이나 탈당하라고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고. 이 여성은 이어 "다음 구속영장이 오면 가결시킨다는 말도 있던데 그럼 민주당 의원들은 영장에 점 하나만 찍혀있어도 혐의도 안 보고 가결시킬 거냐. 당원으로서 얼굴도 보기 싫으니 ○○○ 의원도 꼭 탈당하라고 말씀 좀 전해달라"고 말했어.
-곧 또 다른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이번에도 중년 여성으로 추정되는 민주당 당원이 "저는 낙선 명단에 오른 40명 의원을 다 칭찬해주고 싶어서 감사 인사드리려고 전화 드렸다. 방송에서는 명단이 모자이크로 나와서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으나 ○○○ 의원은 포함돼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다"며 "가결을 한 의원들이야말로 양심 있는 의원들이다. 이재명을 위해서 목숨 건 사람들이야말로 다 배지 떼고 국회로 나가라고 전해달라"고 말했어. 이 여성은 "일부 '개딸'들은 '수박 깨기'를 당사 앞에서 한다던데 가만히 있는 수박이 뭔 죄냐. 농가들 생각은 안 하나. 화가 나서 전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열변을 토했어.
-다행히 욕설 섞인 전화는 안 왔어. 이 의원실 관계자는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전화도 종종 온다. 그럴 때는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고 업무를 볼 때도 있다"고 한탄했어.
-지지자들의 '배신자 색출'이 지속되자 당내에서는 의원들이 부결 인증을 하는 경우도 생겼어.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원입니다. 의원님께서는 부결입니까? 가결입니까? 의견표명 해주세요. 너무 한심해서 문자보냅니다. 다음에 심판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면서 "부결했습니다"라고 남겼어.
-민주당 청원 게시판인 '국민응답센터'에는 이낙연 전 대표를 제명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지난 1일 오후 지도부 응답 기준인 5만 명을 넘기도 했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친명과 비명이 갈리며 당내 갈등 양상은 더 격화되는 분위기야.
◆李 체포동의안 유·무효표 소동..."의원이 글씨도 못 쓰나?"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상황도 극적이었다고?
-지난달 27일 본회의장에는 2명만 제외하고 국회의원 297명이 출석해 투표한 뒤, 오후 3시 20분께부터 개표위원들이 개표에 돌입했어. 통상 20분 정도면 결과가 나와.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더라고. 개표 과정에서 '부'인지 '무'인지 한글로 쓰인 글자가 한눈에 파악이 안 돼서 표 2장에 대해 반대표냐 무효표냐를 두고 여야가 입씨름을 했어. 실제로 봤더니 글씨가 정말 헷갈리게 적혀 있더라고.(웃음) 결국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표 90분 만에 한 표는 반대표로, 한 표는 무효표로 판단해서 정리했어.
-지켜보는 의원들이나 취재진 사이에선 "의원들이 글씨도 제대로 못 쓰나" 하는 말이 나왔어. 코미디 같은 일이지.
-애초에 전자투표로 하면 될 일 아냐?
-이걸 두고도 여야 말이 엇갈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민주당에 전자투표를 제안했지만,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어. 국회법상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은 수기투표가 우선이지만, 여야 합의로 전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투표용지에 한글이나 한자로 가(可), 부(否)를 직접 써야 하는 수기 투표는 아무래도 무효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반면 전자투표는 스크린으로 터치하기 때문에 무효표 가능성이 확 줄어들지. 민주당 측은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은 전자투표가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오히려 국민의힘이 수기 투표를 고수했다"고 반박했어. 국민의힘이 여기에 대해 또 재반박하면서 논란은 흐지부지됐어.
-개표 과정이 지연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결과는 찬성 139대 반대 138. 예상 밖이었지.
-표결 후 물어본 의원들은 하나같이 "전혀 예상 못 한 결과"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어. 취재진 역시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어. '유·무효표 소동'으로 국회의장이 양당 원내대표하고 이야기할 때만 해도 표 판단을 정확히 하려고 좀 시간이 걸리나 보나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웬걸. 취재 카메라에 찬반 표 수가 포착됐는데 가결표가 많이 나온 거야. 당사자인 이 대표도 표결 전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안 제안 설명할 때부터 주로 눈을 감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가결표가 더 많다는 사실을 듣고는 얼굴이 창백해진 표정이었어.
-부결표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알려지기로는 이 대표의 '오랑캐' 발언이 비명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 지난달 23일 이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고 총선에 승리할 방안이 있는지'라는 물음에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한다"고 답했어. 사실상 대표직 사퇴 주장을 일축한 거지. 현실적으로는 내년 총선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 같아. 친명계는 "비명계가 공천권 보장 거래를 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실제로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친명계 비례대표들이 자리 잡으면서 불만이 좀 쌓였다고 해. 반면 비명계는 경선에서 이겨도 본선에서 떨어지면 소용이 없는데, '이재명 방탄 프레임'에 갇힌 상황이 꽤 답답했다는 입장이야. 그래서 개표 지연 소통을 일으켰던 판단 불명의 무효표 두 장이 답답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야당 의원들의 결과물은 아니었겠나 하는 분석도 나와.
-당 내홍이 깊어지고 있는데 출구 전략이 뭐가 있을까.
-비명계가 주장하는 거취 문제를 이 대표가 어떻게 빨리 수습할지가 관건이야. 이 대표는 일단 당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어 보여. 다만 일부 친명계 주장처럼 다음 체포동의안을 당원 투표로 정한다거나, 부결을 당론 채택하거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않는 식으로 투표 보이콧 하는 방식은 "모양 빠지는 일"이 될 것 같아. 결국 비명계를 달래야 하는데 내년 총선 공천 시스템을 두고 당권파와 구주류가 벌써 신경전에 돌입한 모습이야. 한 의원은 이번 무더기 이탈표 사태에 대해 "우리 당 미래를 보면 정말 괜찮은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봤을 때는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만 하려고 하는 건 아니네. 괜찮다'는 사람도 있다. 다음 영장 청구가 왔을 때 이 대표가 영장실질 심사에 응하거나 반대 의견 있는 분들과 충분하게 대화하면 (현 상황을) 크게 문제없이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낙관했어. 당 지도부의 바람과 달리 강성 지지자들은 이낙연 전 대표 영구제명 등 틈을 계속 벌이고 있는데 이 부분도 이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지점이야.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송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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