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제주 4·3 사건' 대하는 자세 오락가락
'친윤계' 공부 모임에 등장한 '숨은 보수 실세'
☞<상>편에 이어
[더팩트ㅣ정리=허주열 기자]
◆민심 악화에 '공공요금 동결'…때아닌 '포퓰리즘' 논란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가운데 겨울철 난방비 급등으로 민심이 악화하자 정부가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전기·가스요금 인상 속도 조절' 카드를 꺼냈어. 이 결정이 이뤄진 날 "정부 정책이 과학이 아닌 이념과 '포퓰리즘'에 기반하면 국민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묘한(?) 대통령 발언까지 나왔네?
-맞아.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결과 대통령실은 △고속도로, 철도, 우편, 광역상수도 등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 인상 속도 완만하게 늦추기 △은행권 예대마진 축소 및 취약차주 보호 △통신요금 부담 경감 방안 등을 논의·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어.
-윤 대통령의 '포퓰리즘' 발언은 위 결정이 논의된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 발언에서 나왔지. 문맥상 이 발언은 전 정부에서 포퓰리즘 정책으로 에너지요금 인상 요인이 분명했는데도, 요금을 동결 및 소폭 인상해 국민 고통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돼. 다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언급한 포퓰리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어.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 정책을 무엇으로 단정하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제가 이해하기로는 과학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며 "대통령이 발언한 것에 제가 어떤 예시를 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명확히 답하지 않았어.
-이에 다른 기자가 '포퓰리즘 질문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제한했던 여파로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정부가 밝혀왔는데) 그걸로 해석돼 보여서 질문이 나왔던 것 같다. 포퓰리즘에 기반하면 국민이 고통받는다는 게 공공요금 관련해선 어떤 것 때문에 이 발언이 나온 것인지 해석을 해 달라. 또 그렇게 읽히는 것이 맞다면 윤석열 정부도 오늘 공공요금 동결을 기조라고 밝혔는데, 이것과 배치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재차 물었어.
-그런데 최 수석은 "기자가 가정에 따라서 말을 해서 거기에 답변을 드릴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답변을 피한 뒤 엉뚱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변만 내놨어. 대통령실이 명확히 전 정부의 에너지요금 정책을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공공요금·에너지요금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표현인 만큼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해당 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상반기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에너지요금 인상 속도도 늦추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하지 않나?
-아무래도 그런 측면이 있지.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 21일까지만 해도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내년에 상당 폭의 가스·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했었거든. 그러면서 지난달까지만 해도 대통령실과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해당 요금을 올리지 않아 현재 난방비 폭탄 문제가 터졌다는 논리를 펼쳤어.
-이후 국민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달 올 1분기 가스요금을 동결한 데 이어 15일 에너지요금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민생이 어렵다는 것을 고려해 에너지요금을 동결 및 소폭 인상한 문재인 정부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상반기에 미뤄둔 요금을 하반기에 한꺼번에 올리지는 않을까?
-안 그래도 15일 최 수석에게 한 기자가 '공공요금 동결을 말했고, 상반기까지로 기한을 명시했는데, 그럴 경우 하반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하반기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상황을 봐서 판단해야 될 사항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어.
-사실 하반기면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총선 정국이 시작되는 시점이야. 특히 하반기에 미뤄둔 요금을 올리면 다음 총선 직전 맞이하는 겨울철에는 이번 겨울보다 더 큰 난방비 폭탄이 불가피해. 그 시점까지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우세하고. 윤석열 정부 집권 3년 차에 열리는 차기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여야 극한 대치 상황에서 국정운영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중요한 전국단위 선거를 앞두고 과연 정부가 공공요금, 에너지요금 인상에 나설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해.
◆당 지도부는 첫 '4·3 평화공원' 참배…일부 후보 '엇박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점점 과열되는 듯 해. 제주 합동연설회가 있던 지난 13일 탈북자 출신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가 '제주 4·3 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라고 발언해 비판받았어. 태 후보는 별도의 사과를 하지도 않았어.
-제주 4·3 사건은 제주민들에서 민감한 사안인데, 당에서는 어떻게 했어?
-'주의' 조치를 내렸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언행은 삼가달라"고 말이야. 배준영 선관위 대변인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추가 징계 논의는 없다"며 "계획된 것도 없다"고 했지. 유야무야 넘어가는 모양새야.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에서 의견이 엇갈려. 이번 제주 합동연설회 일정만 봐도 그래. 김기현·안철수·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4·3 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했어. '개혁 후보'를 내세운 천 후보는 이준석계 김용태·허은아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와 함께 유족회와 간담회도 열었지.
-가장 오른쪽에 있는 황교안 당대표 후보는 가지 않았어. 황 후보 캠프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정상 어렵다"고 하더라고. 제주 4·3 사건에 대한 당내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인 것 같아. 태 후보도 강경 보수 지지층을 공략하려 그런 말을 했을 테고.
-여당이 점점 우경화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사실 이는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 룰을 '당원투표 100%'로 바꿀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해.
-이번 제주 합동연설회를 계기로 국민의힘 지도부는 4·3 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했어.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식 일정으로 4·3 평화공원을 찾은 건 처음이야. 그런데 태 후보의 발언과 그에 대한 당의 조치는 지도부의 이런 노력을 퇴색하게 만들었어.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지 아마?
-과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도지사 등이 지난 2019년 공청회를 열고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적 있어. 당시엔 '당원권 정지 3개월'의 징계가 내려졌는데, 당시에도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많았지.
-맞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역시 당내 강경 보수층 중심으로 의견이 분분하던 주제였어.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기념식에서 현역 의원 전부를 대동해 참석한 뒤로는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잖아.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도 당이 분명한 메시지를 냈어야 했다고 봐. 이번 일이 정말 아쉬워.
◆'국민공감'에 임하는 與 의원들의 엇갈린 태도
-국민의힘 공부 모임 '국민공감'이 최근 모임을 가졌다며?
-맞아. 국민공감은 지난 15일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주제로 강연을 열었어. 국민공감은 국민의힘 현역 의원 70명으로 이뤄진 여당 내 최대 공부 모임이야. 총괄 간사 이철규 의원을 중심으로 유상범(공보), 김정재(총무), 박수영(기획) 의원 등이 간사단을 맡고 있는 까닭에 '친윤 모임'으로 불리기도 하지. 이날 참석한 현역 의원은 간사단을 비롯해 40명 정도였어.
-분위기는 어땠어?
-이날 강연은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맡았어.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회에서 상임기획위원을 맡아 탄소중립 분야를 담당했지. 김 위원장은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국가 미래를 결정할 어젠다라고 힘주어 말했어. 강연을 듣고 있는 의원들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임하더라고. 이용호 의원은 중간중간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도 했고, 김병욱 의원은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도 했어.
-반면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의원들도 있었지. 한 의원은 기념사진만 촬영한 뒤, 강연은 듣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떴어. 급한 일이 있나 보다 했지. 그런데 곧 해당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공감에 다녀왔다'며 홍보를 하더라고. 얼굴만 비추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었어. 또 다른 의원은 졸음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 공부 모임 시작이 오전 7시 30분인지라 꽤나 피곤했을 거야. 그 의원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결국 돌아오지 않더라고.
-현역 의원들만큼이나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누구야?
-공부 모임 구성은 현역 의원들이지만 강연장 출입엔 제한이 없어서 여러 사람이 오가더라고. 이영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새미준) 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지. 이 회장은 '숨은 보수 실세'로 알려져 있어. 오랜 기간 보수 정치권 외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해. 무엇보다도 당원 조직과 동원 능력에 있어서는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전해져.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의 조직지원총괄본부장으로 활동했고, 윤 대통령 당선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해.
-그런 이 회장이 여당 최대 공부 모임을 찾았으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어. 이 회장은 강연 중간에 의원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 숨은 보수 실세라는 세평답게 이 회장을 모르는 의원들은 없었지. 몇몇 의원들은 이 회장과 따로 이야기를 나눴고, 특히 한 의원은 이 회장과 굉장히 오랫동안 대화를 주고받았어. 이 회장은 취재진이나 외빈들을 위한 자리가 뒤쪽에 많이 남아있었는데도 국회의원 지정석으로 가서 앉아 강연을 듣기도 하더라고.
-이 회장은 현재 친윤계 최대 외곽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 새미준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어. 새미준은 지난해 12월 발대식을 열었는데 김기현, 권성동, 안철수, 윤상현, 이철규, 나경원 등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수십 명이 참석했지. 이후 이 회장은 지난달 열린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캠프 개소식에 등장했어. 당시 여권에선 이 회장의 이력과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당원 100% 투표'인 점을 고려해 '이 회장이 김기현 후보에게 '당심(黨心)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 이번 공부 모임을 포함하면 모두 세 차례의 공개 행보인 셈인데, '숨은 보수 실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딘지 궁금해지네.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은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송다영 기자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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