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기본사회위 출범 등 '민생' 국면 전환
'사법 리스크' 대응에 '민생' 후순위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5번의 현장간담회와 4번의 시장 방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취임 후 6개월간 '민생' 행보다. 이 대표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마지막도 민생"이라며 '유능한 대안 정당'을 약속했다. 그러나 당력을 대정부 투쟁에 집중 투입하면서 당내에선 '유능한 야당'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최근 당 지도부가 '민생'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사법 리스크에 묻히면서 이마저 "방탄 도구"로 폄훼되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해 8월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살을 깎고 뼈를 갈아 넣는 심정으로, 완전히 새로운 민주당을 만드는 데 저 자신을 온전히 던지겠다. 오로지 혁신의 결과와 민생 개혁의 성과로 평가받겠다"고 다짐했다.
6개월이 지난 현재, 이 대표와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당이 총력 대응하면서 '민생 개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는 민생 이슈에 신속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먼저 의제를 발굴해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개 일정을 살펴보면, 이 대표는 민생 현장을 찾아 12차례의 최고위원회의를 열었고, 네 차례 시장을 방문했다.
현장간담회는 다섯 차례 열었다. 금융위기 대책 마련(2022년 10월 27일) △서민금융 위기 대책 마련(2022년 11월 16일) △반도체 경쟁력 강화 지원(2022년 12월 14일) △무역 적자·수출 상황 점검(2023년 1월 11일) △전세사기피해 재발방지대책 마련(2023년 2월 7일) 등을 주제로 했다.
안성시 저온물류창고 붕괴사고(2022년 10월 21일) 현장이나 울진 산불 피해복구 현장(2022년 12월 22일) 등도 방문했다. 다만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신당역 사건이나 SPC 근로자 사망 사건 당시 당 지도부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신당역 사건과 관련해선 당이 침묵을 이어가다 사건 발생 5일 만에 메시지가 나와 '뒷북' 비판도 받았다.
지난달 31일 당내 쓴소리 모임인 '민주당의 길' 첫 토론회에서도 현장성과 이슈 발굴 노력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당시 기자들과 만나 "정책 결정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건 여당이다. 야당으로서 민생문제 해결에 중요한 건 현장이다. 민생 현장에 철저하고 소통하고 달려가야 하는데 이게 안 보인다. 의례적인 민생 메시지로는 안 된다"면서 "민생 현장에 문제가 있는 곳, 어려운 곳, 갈등이 있는 곳에 민주당이 항상 앞서가야 하고 거기에서 진심을 보여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좀 변별력이 없었다"고 했다.
당내 '민생' 관련 기구는 다수 설치됐지만 대안 제시나 입법 등 성과가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첫 번째 지시사항으로 당내에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원내 제1당으로서 민생위기를 해결하고 급변하는 대내외적 경제 환경에 선제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기구다. 김태년 의원을 위원장으로 홍성국·김경만·김경협·김성환·김승남·김한규·맹성규·양이원영·오기형·이동주·이용우·정일영·정태호·조승래·홍기원·홍익표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중 홍성국·오기형 의원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진상조사 TF'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당력이 분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표 7대 민생 입법 추진도 내걸었지만 현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여야가 합의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 뿐이다. 기초연금확대법, 출산보육수당 및 아동수당 확대법, 가계부채대책 3법(금리폭리방지법, 불법사채금지법, 신속회생추진법), 장애인국가책임제법은 발의되지 않았거나 소관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입법 과제는 정부·여당과의 협의가 절실하지만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쌍특검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정쟁의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당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 대응과 당무를 분리하지 않아 민생 행보가 빛바랬다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10월 26일 국회 본청 계단 앞 규탄대회, 지난 4일 서울 남대문에서 개최한 대규모 장외투쟁 명칭에는 '민생파탄'과 함께 '검사독재'가 따라붙었다. 무대에 오른 민주당 인사들은 이 대표 수사의 부당성과 김건희 여사 특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외치는 데 시간을 다수 할애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이 대표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검찰 소환 통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민생을 챙기며 주말 출석하는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됐지만 당시 현장에는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시장 상인, 행인의 불만이 쏟아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주부터 '민생' 국면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과 무능을 부각하는 것뿐 아니라, 대책을 제시하며 '대안 정당' 존재감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에는 이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은 당 기본사회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였다. 15일에는 전국소상공인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골목상권 회복 지원을 위한 정책 마련을 강조했다.
민생 입법 추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쌀값정상화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돼 상정을 앞두고 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도 이날 소관 상임위 소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여당은 민주당의 민생 행보를 두고 '방탄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2일 논평에서 "조여오는 사법리스크 속에서 이 대표가 부쩍 '민생리더' 행세를 한다"며 "(개인) 위기마다 외치는 민생에 진정성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야당으로서 '민생 챙기기'는 한계가 있다고 성토한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은 "민생 책임은 1차적으로 예산 곳간 열쇠를 갖고 있는 여당이 져야 한다. 야당은 여당의 정책 제시에 대해 '이런 건 잘못됐으니까 더 예산을 써라'든가 '쓸데없는 예산을 썼다'고 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자꾸 야당에 민생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대표 사법 리스크에 대해 언론 관심이 집중돼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수도권 초선 의원은 "민생 비중을 가령 7 대 3으로 하더라도 언론 주목도가 이상민 탄핵이나 김건희 특검이 워낙 높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거꾸로 비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면서 "당면한 공세에 대응하다 보면 방탄이나 정치적인 대응에만 집중한다는 평을 받기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대응의 측면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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