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민주당 비판, 저도 힘들다"
'성비위' 박완주에 "아저씨 뭐 하세요?" 분노도
[더팩트ㅣ상암=송다영 기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한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이다. 책은 지난 대선 더불어민주당의 영입 인재로 들어왔을 때부터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또 당 대표에 출마했지만 좌절하기까지 등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자신의 정치 행적을 돌아보며 쓴 내용의 에세이다.
'웰컴 투 더 여의도' '민주당 박지현입니다' '이상한 민주당 수상한 박지현' 등 약 10개의 후보군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이 제목이 됐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 영입 당시엔 2030 세대 여성들의 적극 지지를 얻으며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내 평가는 박해졌다. 당내 개혁을 외치며 박 전 위원장이 던진 화두들 때문이다. 비대위원장 당시 '586 용퇴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팬덤정치와의 결별'이 필요하다고도 촉구했다. 최강욱 의원의 회의 도중 비속어 논란에 관해서는 징계를,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의혹에는 제명을 지시했다. 당 내부의 문제를 연이어 들쑤시자 박 전 위원장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부 총질'을 한다며 등을 돌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지난해 7월 박 전 위원장은 '당원 6개월' 자격 미달 논란으로 당 대표 출마가 무산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더팩트> 사옥에서 박 전 위원장을 만났다. 오전부터 라디오 출연 일정이 있었다고 했다. '들었던 질문에 또 대답하는 것이 지루하진 않나'라고 묻자 박 전 위원장은 "그래서 최대한 같은 답변은 피해서 말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당초 9월쯤으로 예정했던 책 출간 일정이 왜 늦어졌는지 묻자 박 전 위원장은 "초고는 9월에 거의 다 썼는데, 수정하려고 원고를 다시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민주당 내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기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에세이를 쓸 때 '개인의 기록'을 넘어 '정치권에 진입한 한 청년의 기록'으로 시각을 넓히다 보니 2022년의 끝자락에서야 마감을 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출간…"여의도 정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번역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소설의 원제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겪은 모험'(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이다. 박 전 위원장이 책 제목을 선정한 이유를 듣자 책 원제와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의도 정치 자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처럼 여겨졌다.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여의도에 있는 제가 '이상한 나라에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제목을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앨리스는 "늦었다"며 발걸음을 서두르는 '시계 토끼'를 따라 얼떨결에 토끼굴에 들어가게 된다. 박 전 위원장에게 있어 정치권에 발을 들이게 한 '시계 토끼'는 누구인 것 같냐고 물었다. 처음엔 "(민주당 영입을 권유한) 권인숙 의원, 당시 인재영입위원장인 백혜련 의원 그리고 민주당 여성위원회 분들"이라 답했다.
그리곤 잠시 고민한 박 전 위원장의 입에선 뜻밖의 인물들 이름이 나왔다. 그는 "(다시 생각해보니)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 두 분이 저를 토끼굴에 들어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여가부 폐지'도 '무고죄 처벌 강화'도 참 '화나는' (대선) 공약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는듯 보였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시절을 얘기할 땐 '서운함'을 제일 크게 느끼는 듯했다. 앨리스가 작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몸이 작아지는 약'을 마신 것처럼, 기성 정치인들과 부딪혀 당내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번번이 좌절됐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성 비위로 제명당한 박완주 무소속 의원 이야기를 할 때는 다소 격양된 어조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에는 지방선거 당시 서울 시장 후보군에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분투했던 민주당 비대위의 행적이 담겨있다. 박 전 위원장은 책에서 '젊은 여성 한 분을 (서울 시장 출마에) 설득하려 비공개 면담을 여러 차례 갖기도 했다'고 썼다. 이 여성은 당시 '이재명 상임고문이 '후원회장'을 맡아 준다면 출마를 강력히 고려하겠다'는 출마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은 이 고문에게 두 번 후원회장직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해당 후보군의 출마도 무산됐다.
이 고문이 후원회장직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박 전 위원장은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야 계양을 (보궐선거) 자리가 비는데, 계양으로 출마해야 하는 분이 어떻게 다른 후보 후원회장을 맡겠나. 아무래도 송 전 대표한테 적어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았다"고 추측했다. 이어 그는 "(이 대표는) 젊은 여성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후원회장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2030 여성들이 이 대표에게 엄청난 지지를 보내줬는데 후원회장 한 번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서운함도 있었다. 저도 간절한 마음으로 이 대표에게 부탁했던 건데 두 번 '안 한다'고 거절하셔서 안타까웠다"며 여전히 아쉽다는 표정을 보였다.
비대위원장으로서 결단을 내렸던 순간들도 책에 쓰였다. 지난해 5월 박 전 위원장은 박완주 무소속 의원 성 비위 사건에 대국민 사과를 했고,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박 의원을 제명했다. 피해자 A 씨는 같은 달 박 의원을 강제추행·직권남용·허위 사실 적기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7개월 후인 지난달 14일 박 의원은 검찰에 송치됐다.
박 전 위원장은 박 의원의 성비위 사실을 알게됐고, 의원직을 내려놓으라고 요청하며 일주일 기한을 줬다. 박 의원은 7일이 지나기 전, 의원실 채용 공고를 올렸다. 책에는 '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에 화가 난 박 전 위원장이 박 의원과 통화 도중 "저기, 아저씨. 지금 뭐 하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박 의원은 '아저씨' 소리에 윽박을 지르다 "너 당비 얼마 냈냐"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박 의원과의 언쟁을 회상하던 박 전 위원장은 "본인은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직책 당비를 내지 않았나. 그걸 가지고 생색을 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네가 민주당 안에 얼마나 있었다고 나한테 감히 이러는 거냐'라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의 검찰 송치 당시 박 전 위원장은 피해자 A 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 씨는 '감사합니다. 비대위원장님 덕분입니다'라며 송치 사실을 알렸다. 박 전 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사건의 과정이나 속도는) 지지부진했지만, 결국 사건이 송치되는 것을 보고 피해자와 저에게는 안도감이 많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오랜 시간 긴 싸움을 지속해야겠지만, 더 많은 분들이 피해자와 연대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책에서 자신의 당 대표 출마 무산을 두고 '원칙'을 이야기하며 출마 불가 입장을 밝힌 우상호 당시 비대위원장, 자신의 출마 불가 결정 후 "박지현에게도 도전의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 대표의 행동을 '양두구육'(羊頭狗肉, 겉보기만 그럴듯하고 속은 변변하지 아니함) 정치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8월 이준석 전 대표도 윤 대통령과 측근 여당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양두구육’을 언급했다. '양두구육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을 의도해 쓴 표현이냐'는 질문에 박 전 위원장은 "이 전 대표가 이야기하기 전에 제가 먼저 원고에 썼던 말인데, 책 내고 나면 '이준석 따라 했다'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다"며 억울함(?)을 표출하며 웃어 보였다.
그간 각종 인터뷰에서 박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를 보며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낀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 감정이 여전한지 궁금했다. 박 전 위원장은 "굳이 엮이고 싶진 않지만..."이란 '대전제'를 깔았다.
이어 그는 "이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8월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눈물을 보이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시키겠다고 발로 뛰고 목이 쉬도록 열심히 했다'라고 말하더라. 지방선거 일주일 전쯤 이 전 대표를 잠깐 만났는데, 정말 목이 다 쉬어있기에 '열심히 다니긴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근데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는 이 전 대표에게 ‘이 XX 저 XX’했다는 거 아닌가"라며 "저도 이재명 후보 대통령 만들겠다고 마스크도 벗어 던지고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저를 욕하거나 비방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 대표 지지자들이다. 그런 모습이 저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기성 정치를 들이받았고, 토사구팽당했다는 것도 공통점 아니겠나"라고 강조했다.
"내가 좋은 사람들도, 싫은 사람들도 '탈당하라고 하지만…'민주당 정치' 계속할 것"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앨리스는 결국 꿈에서 깨며 이상한 나라에서도 빠져나오게 된다. 반면 박 전 위원장은 '이상한 토끼굴'(민주당)에서의 정치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책에서도 '민주당을 고쳐서 이 꿈을 민주당 안에서 이루겠다는 다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민주당을 가감 없이 비판하는 박 전 위원장의 모습을 보고 '당에 애정이 없다'는 비판을 던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애정이 없으면 말도 안 한다. 당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당을 비판한다는 건 제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더 잘 되기 위해 문제를 드러내고 반성해야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박지현과 박지현을 비판하는 분들 사이 공통점은 '당을 향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개딸'(개혁의 딸)을 포함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박 전 위원장에게 '탈당'을 요구하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탈당하라는 얘기는 저를 좋아해 주는 분들도, 싫어하시는 분들도 동일하게 하는 얘기"라며 "아직 민주당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고, 당이 저를 쫓아내지 않는 이상 제가 탈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1월부터는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독자들과 북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책 뒷부분에는 정책적 제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관련해 작가와 만남에서 질의응답도 편하게 받고, 정치의 해답을 전국 각지에서 만난 분들과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 순회를 통해 얻고싶은 것이 있는지를 묻자 박 전 위원장은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푸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언론에서 비치기로는 제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많이 받지 않나. 저를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면 '생각보다 괜찮다'고 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라며 웃었다. 이어 박 전 위원장은 "저에 대해 주로 하는 오해는 ①키가 작다는 거(실제 신장 170cm다) ②(굳은 얼굴만 TV에 나오니) 사납게 생겼다 두 가지인데, 새로운 분들을 만나면 다들 저보고 '생각보다 키 크다' '생각보다 되게 순하게 생기셨네요'라고들 한다. 이외에도 오해가 있다면 풀고, 많은 분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설렌다"며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검은 토끼해' 2023년 목표를 묻자 박 전 위원장은 "정당이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박지현의 정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정치인 박지현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2024년 총선 출마 여부도 궁금한 대목이다. 박 전 위원장은 "길게 보고 가려고 한다. 당장 총선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꼭 국회의원만 정치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견을 듣고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2023년 만으로 27세가 된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누구? 1996년생으로 만 26세다. N번방을 최초로 밝힌 추적단 불꽃의 '불'로 활동했다. 지난 1월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자리를 맡았다. 대선 이후 3월에는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에 전격 발탁됐다. 지난 7월에는 민주당 당 대표에 출마에 도전했다. 오는 2023년 1월 자신의 여의도 경험담과 향후 정치 비전을 담은 책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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