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시도에 그친 '소통 강화'
오지 않은 '공정과 상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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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 3월 20일 직접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청와대를 벗어나는) 결단을 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언제든지 지켜볼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주요 명분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이 궁금해하면 언제든지 기자들과 만나겠다"며 "제가 직접 (기자실이 있는) 1층으로 가서 최대한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기자실을 방문한 것은 두 차례뿐이었다.
◆"대통령실 옮긴 가장 큰 이유"라던 도어스테핑, 6개월 만에 중단
대신 출퇴근하는 첫 대통령으로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도어스테핑을 61차례 진행했지만, 지난 18일 MBC 기자의 항의성 질문 및 대통령실 참모와의 설전을 이유로 중단됐다. 이후 도어스테핑이 진행됐던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는 거대한 가림벽이 설치돼 더 이상 기자들이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도어스테핑은 제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국민들께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비판을 받는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미흡한 게 있어도 계속되는 과정에서 국민들께서 이해하시고 또 미흡한 점들이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도어스테핑 중단 한 달이 넘도록 도어스테핑 재개 여부도,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역대 대통령이 통상적으로 진행하던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정부 부처 내년 업무보고를 대국민 보고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결국 윤 대통령의 새로운 소통 시도는 6개월간의 실험적 시도에 그쳤고, 이전 대통령 청와대 시대 소통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과 상식 대신 '과이불개'?
'공정과 상식'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새 정부의 핵심 가치였다. 윤 대통령 취임 1년 차 공정과 상식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허위학력 의혹 등에 대해서 검·경은 실질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는 최근 대법원에서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그녀의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유죄가 의심이 가나 검사가 입증을 못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가족 봐주기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300만 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선고유예는 유죄이지만,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것으로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벌금형의 선고유예라는 가장 가벼운 판결"이라며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고, 실제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직원 채용과 관련해선 김 여사가 대표를 역임한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출신 2명, 윤 대통령 외가 6촌, 지인 아들, 극우 유튜버 채용 등 이른바 사적채용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또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을 민간인 신분임에도 '기타 수행원'으로 등록해 스페인 마드리드 순방에 동행시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각종 논란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사과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에 교수신문은 지난 11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교수신문 측은 김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검증부터 전 국민 듣기평가 시험을 강요한 윤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발언 사태, 인재로 발생한 '이태원 참사'까지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는 없었다고 꼬집었다.
◆국민 통합? 국민 분열?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취임 둘째 날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통합이라는 것은 우리 정치 과정 자체가 국민 통합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21일 국민 통합 추진성과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 "사회 갈등과 분열을 줄이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것이 국가 발전과 위기 극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 지도부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고, 야당과는 갈등만 지속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내부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이준석 전 대표를 사실상 찍어내고, 차기 전당대회 직전 '당원 100% 반영'으로 룰을 바꿔 유승민 전 의원 배제를 위한 밑 작업을 마쳤다.
윤 대통령은 수차례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보낸 체리따봉 이모티콘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 파동, 전대 룰 변경 전 여권 관계자발로 언론에 보도된 "당원 100%가 낫지 않겠느냐"는 발언 등 실제로는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게 하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되기도 했다.
국민 통합 대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의 일체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이 전개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3+1 개혁, 연말부터 시동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교육·연금·노동 3대 개혁 중 연금·교육 개혁은 아직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노동 개혁에 대해선 최근 유연성, 공정성, 안전성, 안정성이라는 네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최근 전임 정부에서 야심 차게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강보험 개혁'을 예고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건보 개혁 방향에 대해 "국민이 '적정하게' 이용 중인 건보 혜택은 유지하되 건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 효율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건보 보장성 강화는 여야를 떠나 모든 정부가 추진해온 국가적 과제인데, 윤석열 정부가 정반대의 길로 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정 효율화를 유지하면서 국민에게 어떤 의료 복지 정책을 펼칠지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직은 말로만 그친 상태인 3+1 개혁이 집권 2년 차 어떤 모습으로 국민에게 제시될지 주목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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