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후보 시절부터 반(反)노동 발언으로 논란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6일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파업)이 13일째에 이르는 가운데 정부는 연일 강경 대응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화물연대도 물러서지 않으며 이날부터 총파업을 예고해 강대강 대결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불법파업에 엄중히 대처하겠다"며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주재한 관계장관회의에서 시멘트에 이어 정유·철강 등에도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예고했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회의가 끝난 후 "가용 경찰력을 최대한 동원, 24시간 총력 대응체계를 구축해 불법행위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화물연대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며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정부는 최근 '운송방해행위'에 대해 화물운송자격을 취소하고 재취득을 제한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또 운송방해행위에 대해 이를 교사·방조하는 행위자도 전원 사법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운송 거부 차주를 대상으로 '유가보조금 지급 1년 제한',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대상 1년간 제외' 등 제재 방안까지 예고했다.
정부는 당초 안전운임제 일몰제 연장에서 나아가 '안전운임제 폐지' 카드까지 꺼낸 상태다.
윤 대통령은 집단 운송거부를 두고 "불법에는 타협없이 책임을 묻는 엄정 대응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총파업을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관계장관들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끝까지 추적하고 신속 엄정하게 조치해달라"고 주문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극에 치닫고 있지만 중재를 위한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연일 "불법파업에 엄정 대처를 촉구한다"며 정부와 발을 맞추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윤석열 정부의 반(反)노조 기류와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에도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주 120시간 노동" 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등 노동에 대한 후진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화물연대의 떼법뿐 아니라 건설노조의 조폭적 행태도 함께 뿌리뽑겠다"고 강조했다.
"노조 혐오 정서를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파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좋지 않음을 이용한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파업에 대해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정치파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로 코너에 몰린 정부가 국면을 전환하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노조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30% 초반에 머무르던 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화물연대 파업 시기와 맞물려 30% 후반까지 상승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리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일 우리정부에 서한을 보내 긴급개입(intervention)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ILO는 유엔 산하기구로 긴급개입은 각국의 노동계의 요청에 따라 ILO가 해당 정부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조치다. 공식 제소 절차가 있으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긴급개입은 사무총장 권한으로 이뤄진다. 해당국이 협약 위반 사실이 명백하거나 긴박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긴급개입 결정을 내린다.
고용노동부는 긴급개입을 두고 '단순 의견 조회'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개입 절차는 ILO 절차, 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정 등 규정상 근거가 있는 공식 감독기구에 의한 절차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2010년 이후 ILO가 한국정부에 의견조회를 총 12번했다며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ILO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를 통보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처분 등에도 개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ILO는 3차례에 걸쳐 해당 처분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전달했다.
이번 긴급개입 결정의 시기와 수준을 놓고 '중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선 ILO가 우리정부에 보낸 서한에는 콕 짚어 '제8호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고 짚었다. 또 기존 ILO가 우리정부에 결사의 자유와 관련해 권고해 온 입장을 재차 언급했다. 박귀란 민주노총 전략조직국장은 이에 대해 "다른 일반적인 긴급개입 사례에 비춰 이례적으로 수준이 높다"면서 "ILO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특히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지난해 결사의 자유(제87·98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제29호) 등을 비준하며 지난 4월부터 효력을 발휘한 첫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는 지적이다. 긴급개입 서한은 지난달 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국제운수노련(ITF)이 ILO에 개입을 요청한 지 4일만에 나온 조치다. ILO 협약을 비준한 정부는 최소 3년마다 국내법이 협약에 부합하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비준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데, 신법 우선의 원칙과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협약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무겁다.
협약에 위배된다 판단해도 ILO는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강제력 있는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없다. 국제통상과 노동문제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했을 때 다만 향후 통상에 있어 외교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EU는 ILO 기본협약 체결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 초기 우리나라가 비준을 미루자 EU는 우리정부가 FTA에 따른 의무를 위반했다며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했다.
이어 파업에 '불법' 딱지가 붙는 현행 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우리나라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파업은 노조와 사용자가 교섭할 때 법에서 정한 절차를 다 따른 뒤에 가능하다. 교섭 후 사측이 협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의 파업은 불법파업이다. 하청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도 어렵다.
또 단체현행법상 화물연대는 파업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집단 운송거부'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반면 ILO 산하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는 화물 노동자를 비롯한 자영업 근로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한 노조 가입 및 결사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관련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최근 통과했다.
한편 우리정부는 이번 ILO 서한에 화물연대 파업이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 생명·건강·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업무개시명령을 한 것이라는 점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답변까지 최대 1~2개월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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