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공기업 민영화·탈원전 등 정권교체 후 동력 상실
2002년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세계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주목했다. 20년이 지난 2022년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K컬처'는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정치 역시 지난 20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으로 대변되던 '3김 시대' 한국 정치가 막을 내렸고, '노무현부터 윤석열'까지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며 정치팬덤, 촛불정치, 검찰개혁, 다당제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더팩트> 정치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국내 정치사에 기억될 만한 변곡점을 조명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 정치의 방향성을 총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역대 정부는 정권 초반,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주요 정책을 뒤집는 데 주력해왔다. 정부 조직 개편, 경제 기조부터 외교 전략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뒤집고 새 단장을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Anything but Rho'(노무현 정부 정책만 아니면 뭐든 된다)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대통령 단임제'와 양당제라는 구조적 한계로 국정 과제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어 권력구조 개편 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는 지난 20년 정치사 중 현재까지 여야 정쟁의 중심에 있는 국정 과제를 간추려 되짚어봤다.
◆盧 정부서 '검찰개혁' 태동...尹정부서 '검수원복'
"열심히 공을 들였지만,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협조해 주지 않았다...(중략)...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도 공수처 설치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中에서)
지난 20년을 관통하는 정치적 의제를 하나 꼽자면 단연 '검찰개혁'이다. 2003년 3월 9일 생중계된 노 전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와 대화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와 이에 저항하는 검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판사 출신'에다 여성인 강금실 변호사를 첫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며 검찰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전통적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조직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발언도 이 때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검찰개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검찰 조직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노무현 정부 첫 검찰총장도 노골적으로 검찰개혁에 반대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국면이 급격히 전환된 점도 검찰개혁이 동력을 상실하게 된 배경 중 하나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참모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을 구속하는 것은 물론 당시 야당(한나라당)이 재벌 기업으로부터 100억 원대 대선 자금을 받았다는 '차떼기 사건'으로 이슈몰이했고,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검찰개혁 의지를 밝혔지만,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다.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어서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은 "시대적 사명"이었다.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대선 공약에 포함됐고, 정권 초기부터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 검찰 '중립성 보장'에 집중하다 무산됐던 노무현 정부 때의 교훈을 바탕으로, 비법조계 출신들을 민정수석 비서관,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민주적 통제'에 무게를 뒀다. 2018년 6월 법무부와 행안부가 경찰이 1차 수사권을 갖되 검찰의 직접 수사권 대상에 부패, 경제 금융 범죄 등 일부를 남기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합의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권 초기 박근혜 정부 '적폐청산'을 위해 검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실기했다는 평가도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했고, 당시 윤석열 사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등 전임 정부 수사에 집중 투입됐다. 정치권에선 힘이 커진 특수통을 청와대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 행동대장'이라 불린 당시 윤 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며 '검찰개혁'의 파트너로 삼았다. 한 달 뒤에는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하며 본격적인 개혁 추진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자녀 대학 특혜 의혹, 사모펀드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검찰의 칼날이 여권을 향했다. 검찰 내 특수통은 조 장관 일가 수사를 시작으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기간 국회에선 '검찰개혁'의 불씨를 키웠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해 연말과 다음 해에 걸쳐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을 '동물 국회' 비판 속에 통과시켰다. 여론도 이때부터 둘로 갈렸다. 검찰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 추미애 전 대표를 법무부 장관으로 투입했지만, 오히려 '검찰-법무부'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검찰개혁의 본질이 흐려지고 정쟁으로 비화했다. 여권 일각에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요구가 이때부터 등장했지만, 부정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며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된다."(2021년 3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당시 윤 총장은 검수완박 요구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뒤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권에 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교체가 되자 민주당에선 뒤늦게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삼아 문 정부 임기 내 완료하겠다며 속도전에 나섰다.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 등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 단독으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 수사권 폐지를 원칙으로 하되 우선 6대 범죄 수사권 대상에서 부정부패와 경제를 제외한 4개 분야를 먼저 이관하고, 나머지 2개 분야는 중대범죄수사청 발족 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휘 아래 이전 정부의 검찰 조직 개편, 법안을 연이어 뒤집었다. 법무부는 6월 형사부 인지수사 복원, 전문 수사부서 기능 강화 등을 담은 검찰 조직 개편안을 마련하고, 검수완박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9월에는 시행령으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를 다시 늘렸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귀)'란 말이 나왔다. 정치권의 '검찰개혁'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 정부 '민영화' 논란...尹 정부서 재점화
'공기업 민영화'는 보수정권 출범 때마다 나오는 단골 국정과제다.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을 지분 매각 형식으로 민간에 넘기고 부족한 재정을 충당해 국민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지만, 정권과 유착한 민간 기업에 특혜를 제공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이전 정부에서도 공기업의 민영화 사례가 다수 있었지만 CEO출신인 이명박 정부에서 유독 '민영화' 반발이 거셌다. 임기 초반인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촉발된 촛불 집회의 성난 민심은 정부의 의료 및 수도 민영화 의혹으로 향했다. 양대 노총을 비롯해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대해 "공공부문서비스를 사기업에게 넘겨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거센 여론에 놀란 이 대통령은 그해 6월 18일 대국민사과 성명을 냈고, 8월 정부 발표안에서 공기업 민영화 대상을 60곳에서 24곳으로 줄였다. 전기·가스·철도 등 공공서비스는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총 6차례에 걸쳐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대상에 올랐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인천국제공항에 대한 정부 지분을 대폭 낮추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여론에 부딪혀 끝내 무산됐다. 다만 2008년 305개 였던 공공기관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286개로 줄이면서 '공공기관 혁신' 국정과제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와 정반대였다. 공공 일자리 확대를 공공부문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만큼 5년간 공공기관은 332개에서 350개로 늘고 인력이 34.4%(11만5000명) 증가했다.
정권 교체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 논란은 재점화했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이 담기면서 '전력 민영화' 논란이 처음 불거졌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5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한국전력공사처럼 지분은 정부가 갖고, 경영도 정부가 하되 30~40%의 지분을 민간에 팔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의혹으로 번졌다. 과반 지분을 정부가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하되, 일부 지분을 매각해 공시 등으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윤 정부에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민영화 방침을 밝힌 적은 없다. 지난 7월 '공공기관 혁신 라이드라인'을 통해 내년 공공기관 정원 감축, 임직원 인건비 절감, 자산 매각 등을 발표하면서도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윤 정부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고 있어 진보 진영에선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근거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당분간 '공기업 민영화'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영화 반대'를 전면에 내걸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연설 내내 "MB 때 민자 유치의 이름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던 그 정치세력들이 되돌아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회 입성 후에는 공기업 민영화 추진 시 국회에 사전 보고토록 하는 '민영화 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면서 일찌감치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검토한 적도 없고 현재 추진 계획도 없다"며 일축하고 있지만, 윤 정부의 공공부문 혁신 정책 추진과정에서 야당과의 마찰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文정부 '탈원전·태양광사업', 尹 정부 애물단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탈원전이다. 100대 국정 과제 중 각각 37번째, 60번째에 담겼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늘리고, 신규 원전 전면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등의 탈원전 로드맵을 제시했다.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탈원전 정책에 쐐기를 박았다. 임기 중반까지는 이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공론회위원회 결론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결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로드맵대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2018년 6월에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도 결정했다.
그러나 전력 구입비 부담이 커지면서 임기 말 원전발전 비중을 다시 늘렸다. 문 대통령은 퇴임을 두 달 남겨둔 올해 2월 25일에는 "향후 60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정상가동을 주문했다. 부정 여론이 커진 탈원전 정책에서 선회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원전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원전을 핵심 에너지 공급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개입으로 월성 1호기의 계속가동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다는 이른바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도 파헤치고 있다.
문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실시한 태양광 사업 역시 윤 정부에서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최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태양광발전 산업 등에서 약 2600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과 보조금 집행 사례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재생에너지는 세계적 추세지만, 문 정부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관리는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혈세가 이권 카르텔의 비리에 사용됐다"며 태양광 사업을 정조준했다. 집권여당도 보조를 맞춰 당내 '태양광비리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탄압과 억압 대신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을 따라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문 정부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공방 2차전이 치열할 전망이다.
전문가는 국정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적 공감이 있고 미래지향적인 과제는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는 "5년 단임제다 보니 정치권이 정권 교체에만 관심이 있지, 국가 장래 비전이나 철학이 없다. 또 진영 정치에 너무 경도돼 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전 정권에서 잘한 것들은 계속 전수 받아서 개선하면서 나가야 하는데 전부 바꿔버린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이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국가 비전이나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보단 어떻게 자기 정권에 유리하게 할지, 정략적인 차원의 정책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많이 진전됐지만, 정치의 질은 굉장히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창립 20주년 기획-백투더퓨처①] '노사모'부터 '재명이네'까지…팬덤 정치 20년
▶[창립 20주년 기획-백투더퓨처②] '신문 1면→SNS'...20년 새 '5G'된 정치 민심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