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좌우한 온라인 팬클럽...스마트폰 등장으로 '광장 정치' 확산
2002년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세계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주목했다. 20년이 지난 2022년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K컬처'는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정치 역시 지난 20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으로 대변되던 '3김 시대' 한국 정치가 막을 내렸고, '노무현부터 윤석열'까지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며 정치팬덤, 촛불정치, 검찰개혁, 다당제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더팩트> 정치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국내 정치사에 기억될 만한 변곡점을 조명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 정치의 방향성을 총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페이스북' 글 작성 페이지에 쓰인 문구)
21세기 초반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 '정보화 시대'다. 특히 2009년 '아이폰'의 국내 상륙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보급은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부터 본격 등장한 '소셜미디어'(SNS)의 발달, 이와 함께 무선 인터넷도 보편화되며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각종 지식과 정보, 그리고 뉴스들을 빠르게 받아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근 20년, 정치인들도 '정보의 바다' 속 시류를 빠르게 좇았다. 이전처럼 '신문 1면', '조간 뉴스'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 일방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SNS를 적극 활용해 국민·당원들 간의 '쌍방'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더팩트>는 20년 정치사 중 스마트폰 등장, SNS의 발달과 함께 변화한 민심의 정치 민감도를 요약해 봤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World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
2002년, 진보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명맥을 이으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2000년 이전 정치권은 오프라인 활동과 신문, TV 방송 등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가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이에 반해 제16대 대선부터는 정당과 후보자들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웹사이트'를 활용한 홍보를 시작했다. 2000년을 시점으로 인터넷 포털 플랫폼의 '뉴스 서비스' 제공 보편화도 인터넷 여론 형성에 한몫했다. 시민들은 TV 앞에 앉지 않아도, 신문을 펼치지 않아도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2000년 만들어진 노 전 대통령의 인터넷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자발적 지지 운동도 화제가 됐다. 당초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열세였던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공론장에서 '웹(Web)대통령'으로 불렸다. '노사모' 회원들이 '희망돼지'라는 저금통을 만들어 '십시일반'해 노 전 대통령 캠프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1인당 100명'의 국민경선 신청서를 받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든 지지 캠페인은 노 전 대통령 당선을 이끈 주요 정치 활동으로 꼽힌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별명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말이다.
2003년 영국 신문 '가디언'은 한국의 대선 결과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World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라는 제목을 붙였다. 가디언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소개하며 '웹 공간은 이미 새로운 한국 지도자의 정책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매체의 영향력 강화, 그리고 온라인 팬클럽의 활성화 등은 정치인들에게 '온라인 정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교훈을 남겼다. 특히 정치 팬덤의 경우 노사모 이후 '명박사랑'(이명박), '박사모'(박근혜), '젠틀재인'(문재인), '재명이네마을'(이재명) 등 다른 대선 후보에게도 생겼다.
◆2008년 이명박 정부 광우병 집회…SNS 타고 실시간 상황 공유
2009년 아이폰의 국내 등장과 함께 2세대 SNS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큰 인기를 얻었다. SNS를 이용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그로 인한 정치 효능감이 배가됐던 시기이기도 하다. '140자 이내'에 자기 생각을 빠르게 알릴 수 있는 트위터는 실시간 정보 공유가 탁월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또 '사회연결망'을 중심으로 '친구 맺기'를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의 경우 정치인들과 지지자들 사이 친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했다. 분량에 상관없이 글을 쓸 수 있고, 원문을 공유하는 게 가능한 것도 페이스북의 강점이다. 정치인들은 현재까지도 현안에 관한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할 때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에는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장기간 열리기도 했다. 광우병 촛불시위는 100차에 걸쳐 진행됐고, 경찰 추산 총 90만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은 SNS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집단행동을 도모하고, 집회 상황을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그룹을 이뤄 오프라인 집회에 참여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SNS 발달로 촉발된 '광장 정치'는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촛불집회', 문재인 정부 '광복절 집회' 등으로 이어졌다.
◆2012년, 정치 팟캐스트 '가카 헌정 방송 나꼼수' 인기
"국내유일 가카(이명박 전 대통령) 헌정방송. 이 프로그램은 2013년 2월까지만 진행된다. 이후에는 '그분'이 못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나라가 IT 강국이라 해도 감옥에서까지 스마트폰을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나는 꼼수다' 프로그램 소개 문구)
2010년 초반에는 '정치 팟캐스트'가 화제였다. '나는 꼼수다'는 2011~2012년 진행된 진보 성향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김어준·주진우·정봉주·김용민 4명이 진행했다. 나꼼수는 'BBK'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러 의혹을 희화화한 방식의 방송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한 회당 10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할 정도였다.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다면 '일상생활' 중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팟캐스트 방송은 진보 정치 성향을 가진 3040 세대층을 정치적 유대감으로 엮어 주기도 했다. 나꼼수는 '반이명박' 의제 형성과 함께 당시 진보 진영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을 전국구 정치인으로 끌어올리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나꼼수는 2012년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 72회를 끝으로 중단됐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히 4명 중 김어준 씨는 현재 '10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다스뵈이다'를 운영하고 있고, 'TBS 라디오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유명 방송인이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총수'라 불리며 진보 지지층의 결집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하다. 지지층들은 기성 언론이 내는 기사는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김 총수의 말을 '검증된 정보'로 따르며 그를 지지한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 시위…촛불 정부는 '국민청원시스템' 운영
"박근혜는 퇴진하라·물러나라·하야하라."(박 대통령 퇴진 집회 당시 구호)
이른바 '대통령 비선실세' 논란으로 '두 번째 촛불'이 일어났다. 2016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5개월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SNS상에는 집회 안내 포스터, 집회 참여 인증샷, 촛불집회 생중계 유튜브 링크 등이 빠른 속도로 퍼졌다. 트위터 코리아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국내 이용자들이 사회 분야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대통령', '최순실', '촛불집회'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촛불집회'는 SNS를 통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 내 '촛불혁명'이라고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신설하며 내세운 문구다. 국민청원제도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제도 중 하나였다. 온라인 여론에 청와대가 직접 응답하는 방식이다. 청원 게시 이후 한 달 이내로 20만 건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응답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국민청원제 도입 이후 총 104만여 건의 청원이 접수됐고,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요구였다. 국민청원은 '대의 민주주의'를 적극 반영한 제도라는 평가와 집단 이기주의로 대변되는 일부의 의견을 여론으로 포장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공존한다.
◆SNS 발달과 함께 '가까워진 정치권'…'가짜 뉴스', '혐오 표현' 골칫거리
2020년대에 들어서는 SNS를 통한 각종 정치 콘텐츠가 다양해진 만큼 정치권에서도 색다른 시도를 통해 국민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대 대선 당시 여야 대선 후보들은 '유튜브 홍보 경쟁'에 열을 올렸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59초 공약 유튜브 숏츠' 영상을 제작해 화제가 됐다. 당시 '좋아 빠르게 가'라고 외치는 윤 대통령의 영상 속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본떠 만든 '명플릭스'를 통해 자신의 공약과 관련한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가 하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동영상을 게시해 화제가 됐다. 또, 두 후보가 경제 전문 유튜브 '삼프로TV'에 나란히 출연한 것도 대선 당시 인상적인 온라인 소통 활동으로 꼽힌다.
SNS의 초고속 성장은 국민이 정치권을 감시할 수단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전까지는 소수만 공유해 진입장벽이 높았던 정계 이야기가 최근에는 쉽게 SNS상에 퍼진다. '연찬회 술자리' 영상으로 물의를 빚은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 권 전 원내대표가 당 연찬회 당시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해 노래를 부른 영상이 SNS에 빠르게 공유됐다.
다만 빠른 정보 속도에 비해 정보 정확성이 떨어지면서 '가짜 뉴스'와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 정치'가 깊어지는 문제는 정치권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국정감사 때 이재명 대표는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국제 마피아파 연루 의혹'을 받았으나, 김 의원이 근거로 내세운 돈다발 사진이 거짓이라는 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드러났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SNS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정치권의 변화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더팩트>에 "20년간 1인 미디어가 발전하며 매체의 양이 엄청나게 늘었고,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나의 의정 활동을 노려보고 있다'라는 생각에 예전보다 조심하려는 행동이 늘고 있다"며 "감시자들이 많아지니 정치인들은 특히 공적인 곳에서 발언을 조심하게 된다. 또 이전 정치인들은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면, SNS가 발달하며 정치인들의 권력이 많이 꺾이며 '국민들을 섬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SNS의 발달과 함께 정치권에서 주의할 점은 정보 판단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과 관련한 정보가 맞는 정보인가'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내 다른 목소리도 존중돼야 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도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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