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가결에 역대 두 번째 '불수용'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정사상 7번째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통과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날 오후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역대 정부에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사퇴하지 않은 경우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한 차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역대 정부에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이승만 정부 시절 19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 △박정희 정부 시절 19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김대중 정부 시절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박근혜 정부 시절 2016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6차례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 중 당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렸던 박근혜 대통령만 "유감스럽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엄혹했던 독재 정권 시절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인사들이 사퇴했던 것은 당시 헌법에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반드시 사퇴해야 하는 '강제 해임'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개정된 헌법 체제에선 해임건의안에 대한 강제 규정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민을 대표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임명직인 국무위원'의 해임을 건의한 만큼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사퇴하는 관례가 이어졌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가결은 '건의' 이상의 무게를 가졌던 셈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때 그 관례가 깨졌고, 윤 대통령도 같은 선택을 했다. 이는 예고된 결과다. 윤 대통령은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29일 출근길 문답에서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지금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서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들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본회의에서 가결돼도 수용할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같은 날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도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임건의안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고 저희는 보고 있다"라며 "(야당에서) 외교 참사라고 하지만 만약에 외교 참사였으면 오늘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여기 오셨겠는가. 또 영국 외교장관도 어제 영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오셨겠나. 해당 당사자, 당사국들이 전부 (순방 외교가) 잘된 것으로, 조문이고 다 잘된 것으로 하는데, 유독 우리가 스스로 이것을 폄하하고 이런 것은 좋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비서실장은 "북한이 얼마 전에 핵으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법제화했고, 탄도미사일도 쏘고, 이런 상황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왔다. 동해에서는 한미 훈련을 하고 있고, 또 우리 금융 시장은 달러 강세로 출렁거리고 있다"며 "지금 어느 때보다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할 그럴 때 아니겠나. 이럴 때 총칼 없는 외교 전쟁에, 선두에 있는 장수의 목을 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야당이 강행하는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해임건의안의 당사자인 박 장관도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참 착잡한 심정"이라며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외교 참사라고 폄하 하고 있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세계가, 또 다른 나라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 글로벌 비전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 정치권에서만은 이것을 너무나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걸 하나의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장관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편 해임건의안을 발의안 민주당 측은 제안 이유에 "박 장관은 지난 18~24일까지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외교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국격 손상과 국익 훼손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끝난 데 대해 주무 장관으로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외교 참사의 구체적 사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참배 취소 △당초 예고한 것과 다른 한미·한일 정상회담 불발 △윤 대통령의 막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뒤늦은 대응 등을 적시했다.
이와 관련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외교 참사'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상은 외교 참사가 아니라 민주당의 억지 자해 참사인 것 같다"며 "영국·미국은 다 조문도 잘 돼서 감사하고, 미국도 아무 문제 없다는데 우리 민주당만 자꾸 '문제 있다' 하니까 이게 민주당이 억지로 대한민국을 자해하는 참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국민 여론은 윤 대통령의 순방 외교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도움 됐다"는 응답은 33%, "도움 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54%로 나타났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이들은 이유로 '실익·성과 없음'(18%), '조문시간 늦음·조문 못함'(16%), '경솔한 발언·비속어·막말'(12%), '국격을 떨어뜨림'(7%), '계획·준비 미흡'(7%) 등을 제시했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취임 후 최저치인 24%, 부정 평가는 65%를 기록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26~28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54.1%가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0~25점'을 줬다. '25~50점'은 6.4%, '50~75점'은 9.7%, '75~100점'은 28.7%로 집계됐다.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긍정 평가가 32.8%, 부정 평가는 65.5%를 기록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인용한 여론조사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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