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조정 했어야" vs "다수당의 월권"
[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어렵게 출범한 21대 후반기 국회가 난항을 겪고 있다. 8월 임시국회 곳곳에서 파행과 대치가 이어지면서다. 여야 모두 민생을 외치면서도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 정작 주요 법안들은 회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여당은 일찌감치 예정된 연찬회를 떠나고 야당도 협조보다 공세에 치중하고 있어 '책임 방기'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충남 천안으로 연찬회를 떠났다. 약 한 달 전부터 예정된 일정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를 앞두고 화합과 소통을 통해 '원팀'으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다.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도 직면한 상황이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은 연찬회 모두발언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정말 열심히 하면 비록 야당이 다수 의석을 갖고 발목잡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은 '국민의힘이야말로 제대로 하는구나. 우리가 도와줘야 되겠구나' 할 것"이라며 "그런 마음을 얻어서 국정 동력을 갖고 돌파해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초유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는 8월 임시국회가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파행을 맞은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야는 상임위원회별 민생법안 의결과 결산심의에 돌입했지만 정쟁과 소위 구성 등을 놓고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을 두고 여야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조 의원이 2003년부터 자신이 운영한 지리정보시스템 업체 '지오엔씨아이' 비상장 주식 46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조 의원은 국토위원 사임 의사를 표했지만,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단순히 국토위원 사보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지난 22일 이후 향후 회의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는 국토위에는 서민들의 주거 생활 안정을 위한 민생 법안들이 쌓여있다. '장기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삶의 질 향상 지원법 개정안'이 대표적인데, 국가가 영구임대주택 공동관리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 법안은 논란에 휩싸인 조 의원이 발의한 것이어서 향후 회의가 열리더라도 국토위원들 간 공방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이 외에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시 공급물량의 70%를 청년층에 우선 공급하도록 규정하는 장경태 민주당 의원의 '청년주거안정특별법'도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회의마다 다툼이 끊이질 않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여야 갈등이 절정에 치달은 상태다. 여당이 정청래 위원장의 '독단적 운영 방식'에 반발하며 사퇴를 요구하면서 '보이콧'에 나선 탓이다. 지난 24일 열린 전체 회의에선 증인으로 채택됐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 또한 불출석해 대치 국면이 진행 중이다.
앞서 과기부는 지난달 22일 후반기 국회 원 구성 이후 같은 달 27일, 29일, 이달 18일에도 전체 회의를 열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과 박완주 무소속 의원만 참석했다.
반면, 같은 날 열린 기획재정위원회는 야당의 보이콧으로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 전체 회의가 열렸다.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를 위해 관련법이 이달 안에 개정돼야 한다는 정부 호소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해 공전을 거듭 중이다. 조세특례제한법도 한시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들 법안은 올해에 한해 1세대 1주택자에 대해 종부세 공제 금액을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올리고, 이사 등으로 일시적 2주택자가 되거나, 상속·지방 저가주택 보유 등으로 2주택자가 된 경우에도 1주택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세소위 소위원장 자리를 두고도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 당분간 교착 상태는 지속될 전망이다.
상임위 파행을 두고 여야는 '네탓' 공방 중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 8월 임시국회 상임위에서 여야 간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각종 개혁과제를 추진하려 하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의 의지와 협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민주당은 '집권여당의 횡포'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야 간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반쪽 국회'가 연출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협치를 이끌어야 할 집권 여당이 '국회 정상화'라는 임무를 저버린 채 연찬회를 떠난 점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국회 운영 스케줄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했어야 했다"며 "국회의원들의 주요 업무는 국회를 정상화하고 정당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찬회 일정 지적에 대해 여당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이미 잡혀있던 연찬회를 가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 꼬투리를 잡는 것은 억측"이라면서도 "시기상 그렇게 비치는 점이 있다.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재위 여당 의원들은 '연찬회 일정을 빼겠다'며 협조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면 유재일 정치평론가는 "과방위 행태를 보면 민주당이 월권하는 행태가 종종 보인다"며 "국회는 감시기관의 역할만 하면 되는데 윤석열 정부의 권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zustj913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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