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 펼친 민주당, 국회 측 "사전 협의 있었다" 해명에 민망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입국 당시 한국 측 의전 관계자가 없었던 것을 두고 불거진 '외교 결례' 논란이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의전 책임은 국회"라고 책임을 돌렸고, 더불어민주당은 "외교 참사"라고 질타했다. 국회 측이 "사전 협의했던 사안"이라고 밝히면서 야당이 사실확인 없이 무리하게 정쟁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정치권에는 때아닌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앞서 전날(3일) 밤 9시 30분께 미국 국가의전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이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했는데, 우리 측 국회나 여야 의원, 정부 인사는 나가지 않은 사실이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펠로시 의장 측이 불쾌감을 보였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과 연계해 "부끄러운 외교 참사"라고 맹비난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결례가 의전 참사로 이어지며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되고 있다"며 "(대통령실의) 펠로시 의장과의 면담 여부가 정말 심도 깊은 판단인지도 의문스러운 가운데 의전 결례까지 보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전화 통화를 한 데 대해선 "의전 참사를 뒷북 대응으로 덮을 수 있을지 의문"라고도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식 초청이거나 국빈 자격은 아닐 텐데 아시아 순방 일정 중 오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미국 의전 서열 3위가 방한하는 것이고 우리 외교당국에서 최소한 의전 예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외교적 결례'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의전 책임'은 국회에 있다며, 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에 화살을 돌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미국 의회에서 방문할 때 영접을 의회에서 나가서 한다. 그게 세계 공통의 의전 방식"이라며 "행정부에서 나가지 않은 것은 당연하고 국회에서 나가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 하원의장은 우리로 치면 국회의장이기 때문에 의전 파트너는 정부가 아니라 당연히 국회"라며 김 의장에 사과를 촉구했다.
논란이 번지자 대통령실도 진화에 나섰다. 최영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행정부 인사가 아닌 의회 인사의 경우 일종의 파트너인 국회가 의전을 맡는 것이 관례"라며 "국회 의전팀이 (공항에 나가) 영접하려고 했지만 미국 측이 늦은 시간, 더군다나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하는 점을 감안해 사양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도 "외빈 영접은 정부의 공식초청에 의해 방한하는 외빈에 대해 제공하는 예우이며, 우리 의전 지침상으로도 국가원수, 총리, 외교부 장관 등 정부 인사에 대해 제공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의회 인사 방한 시 의전 규정은 행정부와 외교부가 아닌 국회에 마련돼 있다. 국회 의전편람에 따르면 국회 공식초청은 국회의장의 승인으로 결정되며 영접 등 의전도 국회에서 맡는다. 공식초청장을 발송해 외교부를 통해 해당국 의회에 전달하고 방한시기를 확정한 후 방한일정 수립과 공항 환·영송 계획, 주요인사 예방 및 면담, 산업시찰 및 유적지 방문, 숙소 및 교통편 제공 등 제반 의전을 담당한다. 영접은 펠로시 의장의 경우 의장급이 맡도록 돼 있다.
국회 측도 사전 실무협의를 철저히 거쳤다며 재빠르게 수습했다. 고재학 국회의장 공보수석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 방문 당시) 펠로시 의장이 국회 방문에 대해 기분이 좋았고 환대해주셔서 고맙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라며 '펠로시 의장이 불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사전협의에 대해선 "일개 국회의원이 오는 게 아니지 않나. 영접을 포함해 오랫동안 여러 차례 만나서 구체적인 조율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여권은 반격에 나섰다. 야당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무능 공세에 치우쳐 구체적인 사실 확인 없이 쟁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이 의전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며 "의전 파트너는 정부가 아니라 국회다. 의전상 결례가 있었다면 일차적으로 민주당 출신의 김 의장 책임"이라고 했다. '외교 참사'라며 윤 정부 책임론으로 공세를 퍼붓던 민주당으로선 민망해진 셈이다. 이에 대해 오 원내대변인은 "(사전 협의가 있었다는)팩트 싸움은 우리 손을 떠난 것"이라며 "영접 관련된 것이 국회에 있다는 게 맞다고 하더라도 외교 당국은 아무런 역할도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 정상인가. 국회 차원에서 준비할 때 더 도와줄 것은 없는지 조율은 잘 돼 있는지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국회 책임이라고만 하는 태도 자체가) 궁색하다"라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이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여권에서 비판이 나왔다. 하태경 의원은 "대만 방문 직후라 외교적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만, 별개의 문제로 펠로시 의장과 대한민국 정부와의 의제는 대만 문제가 아닌 북한과 핵 문제, 한미동맹 등이다. 휴가 중이라도 국익을 위해 미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중요한 인물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서울에 있는 대통령이 만나지도 않는다? 휴가 중이라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야권에선 오히려 "미·중갈등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는 측면의 고려라면, 비판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반겼다. 다만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면담 불발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중국의 압박도 없었고, 미국 측에 '하계 휴가'라는 점을 양해를 구했고, 미국도 충분히 이해했다"고 밝혔지만, 야권은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외교부 출신' 홍기원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미국 의회에서 시니어(중진)나 국무장관이 와도 우리 대통령이 다 만났는데 하원 의장을 대통령이 안 봤다는 건 특별한 배경이 있을 것 같다. 이상한 건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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