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비대위 '백드롭' 보니...'반성 모드' 부터 '강한 야당'까지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 "절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나오는 말이다. 정당 공식 석상에도 사소해 보이지만 당내 핵심 메시지를 드러내주는 매개체가 있다. 바로 '백드롭(벽에 뒷배경으로 거는 현수막)'이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 9시 30분 모두발언을 공개한다. 당 지도부의 모습 뒤로 보이는 백드롭은 당에 긴밀한 현안이 생길 때 발맞춰 함께 바뀐다. 12일 기준 민주당 비대위 출범 이후 비대위 회의에서 사용된 백드롭을 살펴보면 비대위는 '반성'을 거쳐 '검찰개혁'을, 윤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강한 야당'과 '지선 승리'를 외쳤다.
√ 최장기로 걸린 백드롭 문구…'부족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3월 중순, 출범 이후 비대위의 첫 메시지는 '반성과 쇄신'이었다. 대선에서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0.73%p차로 석패했고, 송영길 대표 등 당 지도부도 사퇴했다. 이후 비대위 구성은 절반을 2030세대 청년(권지웅·김태진·박지현·이소영)으로 채웠다. 비대위 체제 첫날 회의에는 파란색 배경에 흰색과 하늘색 글씨가 섞인 '부족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 적힌 백드롭이 등장했다. 이 백드롭은 비대위 출범 9주 중 약 3분의 2인 6주간 국회 본청 비대위 회의장에 내걸렸다. 글씨 크기를 보면 윗줄의 '부족했습니다' 문구보다 아래 줄에 쓰인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문구가 더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동비대위원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박지현 전 활동가는 비대위 첫 회의에서 "새로운 책임자가 된 만큼 민주당의 변화와 쇄신의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다"라며 "민주당은 닷새 전 선거 결과(47.8%)만 기억할 게 아니라 5년 간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내로남불'이라고 불렸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교만함이 패배를 불렀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나태함과 안일함이 낳은 결과"라고 대선 패배를 인정하며 "뼈와 살을 가르는 마음으로 분골쇄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비대위는 '온정주의 철폐' '2030 청년·여성 공천 30%'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의 당에 다른 색채를 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부족했습니다' 백드롭은 대선 패배 후 반성과 성찰의 의미를 담아 붙여놓은 것"이라고 해당 백드롭 문구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검수완박' 의지 드러낸 문구…'국민을 위한 검찰정상화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문제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2일부터는 상아색 배경에 민주당의 푸른색, 그리고 검정색 글씨가 섞인 '국민을 위한 검찰정상화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로 백드롭이 바뀌었다. 이날 오후는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 중재안을 받아들여 합의문에 서명한 날이기도 하다. '검찰개혁' 관련 백드롭은 인사청문 정국으로 전면 전환하기 전인 지난 6일까지 약 2주간 당대표 회의실 벽면에 붙어 있었다.
백드롭이 붙어있는 동안 민주당은 '검수완박' 시계를 빠르게 돌렸다. 당초 박 의장의 합의안대로 입법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국민의힘이 합의에 동의할 수 없다고 번복하면서 민주당은 입법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국회 본회의의 경우에도 이른바 '회기 쪼개기'를 통해 지난달 30일에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지난 3일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지 21일만에 이뤄진 '초고속 입법'이었다.
√ 야당 모드 돌입한 최근에는…'국민무시 인사참사' '든든한 지방정부 유능한 민생일꾼' 백드롭
인사청문회가 한창이고, 지방선거 선거유세의 본격 막이 오른 이달 둘째주에는 두 개의 백드롭이 등장했다. '강한 야당' 모드로 전환해 새 정부 부적격 인사는 낙마시키고, 오는 6.1 지방선거에서는 '유능함'을 앞세워 승리하겠다는 구상이 드러난 현수막들이다.
첫번째는 지난 9일 붙은 '국민무시 인사참사 윤석열 당선인이 철회하십시오!' 라고 적힌 백드롭이다. 푸른색 배경에, 흰색과 하늘색 글자가 적힌 현수막의 디자인은 비대위 첫주에 걸렸던 백드롭과 유사하다. 또 '국민무시 인사참사' 문구의 글자 크기와 '윤석열 당선인이 철회하십시오!' 문구 글자 크기 차이가 뚜렷한 것을 볼 수 있다. 글씨 굵기의 경우에도 '국민무시 인사참사' 부분이 더 굵직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던 이 날 박 위원장은 "민주당 의원들께서 조국 전 장관을 수사했던 검사 한동훈의 기준으로 한 후보자를 철저하게 검증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비대위 회의에서 말했다. 또 그는 "(한 후보자는) '소통령' 소리까지 나오니 마치 대통령이 된 것 같은가본데, 제가 역대 정권의 소통령의 역사를 돌아봤다. 다 감옥에 갔지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었다"라고 한 후보자를 직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열린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김남국·이수진(동작을)·최강욱 등 민주당 의원들이 각종 말실수를 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김 의원은 이날 질의응답에서 "한 후보자의 딸이 '이모'와 함께 논문을 1저자로 썼다"고 공세를 벌였으나, 실제론 한 후보자의 조카가 '이 모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인 것이 드러났다.
두 번째는 야당 2일 차인 지난 11일부터 선거대책위원회 모드로 전환하며 나타난 '든든한 지방정부! 유능한 민생일꾼!' 백드롭이다. 현수막을 살피면 기존에 쓰지 않던 노란색이 '든든한' 문구에 배경색으로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또 문장마다 느낌표(!) 부호를 붙여 약 20일 남은 지방선거에 있어 결의를 보이고자 하는 것도 특징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주요 직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선대위를 이끌 총괄선대위원장에 선임된 이재명 상임고문은 이날 대선 패배 이후 62일 만에 여의도에 돌아왔다. 그는 이날 인사말에서 "(대선 이후) 어떤 장소에 가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정말 어려웠다"며 "지난 대선은 심판자와 일꾼 중에 심판자를 선택했다"면서 손가락을 숫자 '1'을 만들며 "일하고 싶다. 일꾼들이 일할 수 있도록 선택해 달라"고 민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5월 셋째 주 이후로 등장한 백드롭은 '나라엔 균형! 지역엔 인물!'이라는 문구가 붙은 백드롭이다. 당시에는 본격적인 지역 유세가 한창이었고 시기적으로는 18일에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추모식, 20일에는 한미 정상회담, 23일에는 봉하마을 故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등이 있었다.
특히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만큼, 봉하 추도식 이후 백드롭에 변화도 있었다. 올해 봉하마을 추모식의 주제는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였는데, 이를 반영해 23일 이후에는 원래 있던 문구 하단에 '깨어있는 강물, 다시 시작'이라는 노란색 글씨가 추가된 것을 볼 수 있다. 투표지에 번호를 찍어야 하는 선거 상황을 반영하듯 현수막 왼쪽 상단에는 민주당의 기호인 '1'도 추가됐다.
선대위 총괄공동본부장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도 "23일 봉하마을을 지나고 나면 경합지에서의 맹렬한 추격을 시작할 생각"이라며 이후에는 경기, 인천, 충남, 강원, 세종 등 호남 3곳과 제주를 제외한 경합 지역에서의 민주당의 추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6·1지방선거 판세를 예측한 바 있다.
√ 백드롭은 '당의 메시지 압축판'
민주당 관계자는 "내림막(백드롭) 문구는 당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라며 "디자인의 경우 최신 스타일을 참고하는 편이다. 글씨 폰트의 경우 잘 보이고 선명한 '경동고딕체'를 최근 많이 쓰고, 색은 당의 상징색인 푸른색을 주로 쓴다. 문구의 경우 홍보소통위원회, 전략기획위원회 등이 논의 후에 결정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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