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별도 행사 참석 또는 후보 지원사격 나서
[더팩트ㅣ박숙현·송다영 기자] 올해로 42주년을 맞이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이례적인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민주 계열 정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행사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참석률을 뛰어넘은 것이다. 광주 행사에 불참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별도의 기념 행사를 갖거나, 선거운동 준비 등에 매진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18일 광주지방보훈청에 따르면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제42주년 기념식에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를 포함해 100여 명, 민주당은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포함해 90여 명이 참석한다고 집계해 주최 측에 전달했다.
국민의힘 측은 실제 이날 참석한 소속 국회의원이 99명이었다고 추산한다. 이처럼 높은 참석률을 보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는 "부득이 불참할 경우 원내대표와 사전 협의해달라"며 참석을 강하게 권고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은 예년처럼 자율 참석하도록 했다. 이수진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우리는 자율참석이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의원들에게 '광주역에서 탑승할 버스를 준비했다' 등의 안내만 전달했다"며 "5·18 추념식은 강제 참여하는 문화가 아니다. 우리는 워낙 과거부터 의원들이 참여해왔고, 광주에서 못 오는 분들은 지역에서 5·18 문화제나 추념식을 따로 만들어서 하고 있다"고 했다.
'자율 방침' 영향이었을까. 언론에 알려진 '100여 명'보다는 참석자가 더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의원실을 통해 민주당 의원 총 167명 중 미응답 28명을 제외하고 살펴본 결과, 139명 가운데 75명이 참석, 64명은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 지도부인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상희 △조오섭 △강득구 △강민정 △강선우 △고민정 △고용진 △권인숙 △김경만 △김민기△김민철 △김성환 △김영진 △김용민 △김원이 △김성주 △김수흥 △김승남 △김주영 △김진표 △김한정 △김회재 △노웅래 △민병덕 △ 문정복 △박광온 △박영순 △박상혁 △백혜련 △소병철 △서삼석 △안호영 △양경숙 △양기대△양이원영 △오영환 △우상호 △유정주 △윤관석 △윤준병 △윤영덕 △이개호 △이동주 △이병훈△이용빈 △이수진(비례) △이정문 △이용선 △이소영 △이탄희 △이형석 △윤재갑 △소병훈 △신현영 △신정훈 △정청래 △정춘숙 △조정식 △전용기△정일영 △정태호△진성준 △이해식 △주철현 △천준호 △최기상 △최혜영 △한정애 △홍영표 △황운하 △홍성국 △홍기원 △허영 의원 등이 참석했다.
광주 행사에 불참한 이들 중 다수는 타 지역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행사에는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이인영·윤건영·남인순·서영교·기동민·박주민 ·박성준·송옥주·정필모·이수진 우원식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병욱·윤영찬·홍정민·조승래·어기구·강준현 의원도 각각 지역구에서 열린 행사에서 5·18을 기념했다.
먼저 광주를 다녀온 이들도 있다. 하루 전인 지난 17일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과 함께 김남국, 한준호, 이용우, 임종성 의원 등이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지역구 일정으로 빠진 의원들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역임했던 전해철·권칠승 의원은 광주 행사가 진행되던 때 경기도의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6·1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인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동연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다. 전 의원은 김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권 의원은 캠프 중소벤처특별본부장을 맡는다.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으로 잘 알려진 임오경 의원도 광주 기념식 대신 '경기도 체육인 한마당' 행사에 참석했다. 김 후보가 축사하는 자리였다. 임 의원은 행사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도민 모두를 위한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경기도 체육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체육 인구를 자랑하는 경기도가 김 후보님과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며 지지 호소에 나섰다.
한편 광주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수적 우세를 보인 국민의힘은 행사에 임하는 태도도 과감했다. 윤 대통령은 현장에 도착해 보수 정권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민주의 문'을 통해 5·18민주묘지에 입장했다. 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5·18 희생자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으로 불렀다. 이념 갈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합창' 형식으로 불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2020년 김종인 비대위체제부터 호남 구애를 이어온 국민의힘이 이날 행사를 기점으로 '과거 보수 정권과 이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이 같은 모습을 환영하면서도 경계했다. 윤호중·박지현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광주 민주화운동 폄하' 논란이 있었던 김진태 국민의힘 강원 지사 후보를 사퇴시키고, '5·18 광주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많이 참석한 것에 높이 평가하지만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도당위원장을 지냈던 이개호 의원은 "(국민의힘 대거 참석은) 의외의 일이고 놀라운 일이 틀림없다"면서도 "5.18의 가치를 폄하 모독하고, 북한군 개입설을 옹호하는 자까지 애지중지하는 세력이 5·18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나 왔을까? 부디 할리우드 액션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의 이번 행사가 '보여주기식'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사적으로, 선거 전략적 의미는 상당하다고 봤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당의 후예가 아니며 훨씬 더 진화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윤 정부가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윤 정부에 대해 국민 기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국민 통합에 충실하겠다, 그러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원해달라는 메시지를 접전 지역과 중도층을 향해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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