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시비 되풀이 끝에 '대형 사고'…野 "기울어진 선관위의 미필적 고의"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정부는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 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와 격리자가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유권자 모두의 투표권이 보장되고 최대한 안전하게 대선이 치러질 수 있도록 시행에 빈틈이 없도록 준비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15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 하지만 지난 4~5일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안전하지도, 헌법도 지키지 않은 선거 관리로 세간의 질타를 받고 있다.
◆헌법 무시한 선관위, 부실 선거관리 해명도 부실
일찍이 예견됐던 코로나19 확진·격리자 폭증 속 이뤄진 사전투표에서 확진·격리자들은 장시간 추위에 떨다가, 가까스로 투표에 참여한 뒤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지 못했다. 이들이 행사한 소중한 한 표는 '택배박스', '쇼핑백', '선관위 직원 호주머니' 등에 담겨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투표함으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한다'는 헌법 제67조 1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 투표소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기표된 투표용지가 들어가 있는 투표봉투를 확진·격리자들에게 나눠줘 논란이 됐다. 선관위 측은 투표소 사무원의 '단순 실수'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이번에 실시한 임시 기표소 투표 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해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야당은 "확진·격리자와 비확진자 투표가 같은 시간에 치러져 정당 추천 참관인 대부분은 일반 기표소에 있었다"라며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으로 부정 투표 염려는 없다는 선관위의 입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며 "대한민국 헌정사상 단 한 번도 유래가 없는 선거 주무부처인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에 민주당 현역 의원을 버젓이 임명해 둔 채 사실상 불공정 선거 관리를 조장했다"고 대통령 책임론도 제기했다.
이번 대선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 투표율(36.93%)을 기록했지만, 선관위는 '역대 최악의 선거 관리'라는 오점을 남겼다.
선관위의 부실 선거 관리에 여야 모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도 지난 6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사전투표 관련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중앙선관위가 그 경위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투표에서는 이런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가운데 선관위의 부실 선거 관리는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임명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국회 선출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된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위원 중 호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관례적으로 비상근인 위원장은 현직 대법관 중 중앙선관위원을 맡는 인사(현 노정희 위원장)가 맡아왔으며, 상근하면서 실질적으로 중앙선관위를 관리·감독하는 상임위원은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 중 한 명이 임명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사상 초유의 '7인 선관위원 체제'로 치러지고 있다. 임명 당시부터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명선거특보'를 지낸 것으로 민주당 백서에 기록돼 야당이 편향성 논란을 주장하며 반대했던 조해주 전 상임위원은 '꼼수 연임 시도' 논란 끝에 지난 1월 사퇴했다.
조 전 상임위원은 지난해 7월 임기 종료를 6개월 앞두고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고려해 첫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채우라"며 반려했고, 그는 임기 만료일이 다가오자 두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때도 문 대통령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청문회가 초래할 혼란과 선관위 조직의 안정성을 고려했다"며 또다시 사표를 반려했다.
선관위원의 임기는 6년,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인데, 관례상 상임위원은 3년의 임기가 끝나면 남은 비상임선관위원 임기와 무관하게 물러났다. 문 대통령의 두 차례 사표 반려는 관례를 깨고 조 전 상임위원이 비상임위원으로 남은 임기를 이어가달라는 뜻이었다.
관례를 깬 문 대통령의 결정에 선관위 내부에선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중앙선관위 직원 350여 명이 조 전 상임위원에게 사퇴 요구 의견을 전달했고,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사무처장과 상임위원 대표단도 사무총장을 면담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조 전 상임위원은 내부 반발에 떠밀려 세 번째 사표를 제출했고, 문 대통령은 중동 3국 순방 중이던 지난 1월 21일 이를 수용했다.
당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신임 선관위원 임명 시 인사청문회 등 임명 절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조 상임위원의 사의를 반려했으나, 본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재차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첫 사의 표명을 수용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논란을 청와대가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관련 조 전 상임위원은 선관위를 떠나기 전 내부망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지난해 7월 사표가 수리되었더라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꼼수 연임 시도) 논란은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저의 뜻과 상관없이 흘러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당·청이 주도한 불완전한 '7인 선관위원 체제'…선관위, 편향성 시비 자초
결국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전국단위선거를 상임위원 없이 치르게 됐다. 또한 유일한 야당 몫(국회 선출 3인은 여야 추천 각 1인, 여야 합의 1인으로 구성) 선관위원도 임명되지 않아 선관위원 2명이 공석인 상태로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문상부 전 선관위원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민주당의 반대로 이후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문 후보자는 조 전 상임위원이 물러나자 스스로 후보직에서 사퇴했으며, 이후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후임자 추천을 대선 이후로 미뤘다.
불완전한 인선에 더해 문재인 정부에서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도 수차례 받아왔다. 대표적인 예로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서울·부산시장 선거가 치러진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당시 선관위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표어의 캠페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답해 논란이 됐다.
또한 당시 선거에서 '위선', '무능', '오만', '내로남불' 등이 쓰인 현수막은 특정 정당(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번 대선에선 '주술', '신천지 비호세력' 등 여당과 그 지지자들이 윤 후보를 겨냥해 사용한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은 사용할 수 있게 해 중립성 위반 논란을 자초했다.
이와 관련 박영미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은 7일 논평에서 "대선 사전투표 이틀째인 지난 5일 발생한 코로나 확진·격리자 투표 대혼란 사태는 그간 선관위가 보여줬던 선거 관리의 부실과 무능의 끝을 보여줬다"며 "이번 중앙선관위의 부실하고 편파적인 선거 관리는 사실상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9명 정원인 중앙선관위원이 대선 국면임에도 2명이 공석인 채 7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이 중 무려 6명이 친여 인사"라며 "지난 1월 상임위원 임기가 끝난 조해주 선관위원을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하려는 '임기 말 꼼수 알박기' 시도로 공정성 논란이 일자 무산된 바 있었고, 야당 추천 인사는 민주당의 반대로 아예 임명 절차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중앙선관위원 구성 자체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부대변인은 "민주당 정권 5년 내내 선거를 치를 때마다 선관위의 해석과 판단에 대한 편파성,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라며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무능이나 부실 관리가 아니라 편향적으로 기울어진 선관위의 예견된 미필적 고의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선대본 회의에서 "사전투표 확진자 투표절차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재인 정권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실 관리 그 자체였다"며 "이번 사태는 민주당 정권과 그들이 만든 편향적 인적 구성 선관위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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