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림·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인터뷰…"후보들, 모르거나 얼버무리거나"
'2050년 3월 9일 오후 3시.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만, 오존층 파괴로 빗물을 마실 수조차 없다. 산소도 희박해졌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숲, 맑은 공기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더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만약 30년 전 기후 위기에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너무 안일했고, 늦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겪을 현실이다. 2022년은 2050 탄소중립의 첫발을 뗀 해다. 문재인 정부에서 선언한 2050 탄소중립은 이제 차기 정부 몫이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차기 대통령의 기후 위기 철학이 요구된다. <더팩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현재 기후 위기와 미래, 후보별 공약과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대선 1.5℃]를 기획, 총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철영·허주열·박숙현 기자, 이선영 인턴기자] 2018년 8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청소년들이 뭉쳤다. '기후 위기가 이렇게 심각한데 왜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움직이지 않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작은 모임은 이듬해 3월 전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 운동 연대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과 함께 결석 시위(기후 파업)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후 대응 활동을 시작했다.
글로벌 기후 운동의 흐름과 연대한 이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국내에선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 대응이 청소년의 생존권,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이하 청기행)' 이야기다.
지난 4일 오후 3시 '청기행'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광화문에서 김보림(20대)·윤현정(10대) 상임활동가를 만났다. 회원 수가 400여 명가량인 '청기행'에 상임활동가는 세 명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와 다른 인터뷰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한 명을 제외한 두 활동가를 만나 우리나라의 기후 대응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4년째 기후행동 활동을 하는 이들의 '기후 철학'은 단단했고, 결정권을 쥔 정치인들을 향한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두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와 유력 대선 후보의 기후 대응 모두 "문제가 많다"며 일침을 가하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확고하고 현실성 있는 '새 탄소중립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거대한 벽' 두드리는 청소년기후행동
"기후 위기 문제를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멸종 위기에 몰린 '북극곰', '지구 온난화', '지구 온도가 상승한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어요. 이 문제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막연히 '기후 위기가 심각하구나' 생각하는 정도죠. 그렇지 않다는 것을 IPCC(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 변화 협의체) 보고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증명한 과학자들을 통해 알게 됐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정치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이런 인식과 함께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따라가다 보니 사회 구조 전반을 뒤바꾸는 대변화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김보림 활동가는 청소년 기후 행동의 시작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불타는 숲, 물에 잠긴 마을, 하얗게 죽어가는 구상나무, 길어진 장마.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다가온 현실이 됐다. 1020세대는 화석 연료에 의존해 번영을 누린 이전 세대가 남긴 업(業)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겪는 세대다. 위기가 시작됐고,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위기 대응의 결정권을 쥔 자들은 무관심했다.
'청기행'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결정권을 쥔 권력자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아니 듣고도 외면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너희가 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변화를 만드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지켜만 보지 왜 목소리를 내느냐" 등의 아픈 말들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굳이 네가 그거 해야 돼?", "정치인도 안 하는데 왜 자꾸 붙잡고 있니"라는 부모님의 우려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멈추지도 않았다.
"'정치가 언젠가는 할 거야'라고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명확했어요. 정치적 권력을 가지지 않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는데, 2019년부터 계속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지금도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구조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향해 목소리는 내는 게 너무 거대한 벽을 두드리는 느낌이기는 해요. 그런데도 기후 위기는 실제하고, 지금도 심각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안 할 수 없으니까. 계속 (활동을) 하게 됐죠."(보림 활동가)
보림·현정 활동가에게 지난 4년은 기후 위기라는 당면한 문제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은 지금 당장 목소리는 내는 거라는 것을 계속 확인해왔던 시간들이었다.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활동가에서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 운동 연대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 한국지부로 기후 파업 활동도 하고 있지만, "기후 위기가 심각해"라는 말만 외쳐도 10만 명가량이 모이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앞에선 '탄소중립' 대대적 홍보…"부족하다" 지적엔 '침묵'
그런데도 이들의 활동은 계속됐고, 발전해 나갔다. 2020년 3월 '청기행' 소속 청소년 19명은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이 청소년들의 생존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판결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소송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2020년 10월 말 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 '기후 위기에 있어서 정부는 이미 필요 최소한의 노력을 다했고,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을 청소년이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는 철강산업 등이다' 등의 내용을 담은 700페이지가량의 의견서를 제출했어요. 이후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은 채로 또 시간만 흘러갔죠."(보림 활동가)
지난달 26일 '청기행'은 다시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이들은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 실패했고, 국회가 '탄소중립기본법'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는 법을 만들었다"며 정부도 의회도 실패한 기후 위기 대응에 이제는 헌재가 응답해야 한다는 이유를 담아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추가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국가의 침묵'에도 이들의 기후 행동은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 선언', '2021년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2018년 대비 40% 감축', '탄소기본법 제정' 등을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대표 정책으로 국내외에 적극 홍보해왔다. 그러나 '청기행'의 평가는 싸늘했다.
"세 가지 다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공통점이에요.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좋은 말로 포장만 해놓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어요.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도 않은 '탄소 포집 기술' 등 신기술을 활용해 먼 미래인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요. '가야 할 길들을 제대로 가지 않지만, 목표에는 도착할 수 있다'는 모순이죠."(현정 활동가)
"기후 위기를 진짜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국정 운영에서 '주요 과제'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에요.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빠르게 만들어야 하고 전환 대책들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게 너무 확인되는 행보들이었던 같아요."(보림 활동가)
두 활동가는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가 기후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성장해온 이 시스템을 정치가 계속해서 대변해오고 있고,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산업계를 대변하고 산업계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대해 아주 소극적으로 산업계의 입장을 계속 대변하는 행보를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李, 실천계획 두루뭉술…尹, 위기 인식도 못 해"
이번 주 우리나라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더팩트>가 지난달 26~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각 대선 후보의 기후 위기 관련 공약이 귀하의 지지 후보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48.8%는 '영향을 미쳤다(매우 영향 23.7%, 약간 영향 25.1%)'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기후 위기 공약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두 활동가들은 주요 대선 후보의 기후 위기 대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후 위기 정책과 관련해 보림 활동가는 "언급하는 공약은 많은데,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있다"며 "'과감히 해야겠다. 단계 전환을 위해서 뭔가 하겠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상은 현 시스템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기후 위기를 충분히 막지 못하는 상황 안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정 활동가도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게 상당히 많다. '위기에 공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공약은 공감하는지 의문"이라며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공약을 하기도 했다. 지역 균형 개발을 이유로 제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따른 신공항 계획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그럼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고 결국 지역 균형 개발도 사실상 하지 못하는 공항이 될 것이다'고 질문을 던지면 '탄소중립 공항을 만들면 된다. 신기술을 개발해서, 재생에너지를 늘려서 공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면 된다'라는 그런 발언들을 하더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기후 위기 공약과 관련해선 보림 활동가는 "일단 위기라는 것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분이 가지고 있는 의제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꼽아보면 기후 위기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예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꼬집었다.
현정 활동가는 "이재명 후보는 대변하고자 하는 쪽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대놓고 '나는 기업, 산업계만을 생각해'라는 게 정말 잘 드러났던 후보인 것 같다"라며 "지금도 산업 (온실가스) 분담률이 낮은데 '더 낮춰주겠다'고 하고, 산업계를 대변하는 말들이 굉장히 많이 했다. 산업계만 대변하고, 산업계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후보라는 게 잘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차기 정부, '기후 위기 대응' 최우선 국정과제 삼아야"
오는 9일 대선 투표를 거쳐 어떤 인물이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기후 위기 대응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거의 없는 셈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추가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보림 활동가는 "어쨌든 저희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정 운영에서 기후 위기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게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뒤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현 정책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산업계를 대변하면서, 신기술을 도입해서 대응하겠다는 공수표를 남발하거나,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 있었는데, 그걸 다시 처음부터 세우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정 활동가는 "실질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며 "시스템의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피해를 입는, 구조적으로 배제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또 기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당장 폐기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바람이 새 정부에 닿을 수 있을까. 인터뷰 말미 두 활동가는 차기 정부가 점점 더 현실화하는 기후 위기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국민 탓'을 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들의 우려를 기우로 만드는 정부가 들어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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