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언론 '오해', 정치 공세 '프레임'"…탈원전과 주력 기저전원 모순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임기 초부터 '탈원전'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입장을 임기 말에 갑자기 바꿨다는 지적에 청와대가 2일 적극 해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잇달아 출연해 관련한 입장을 설명했다. 이어 SNS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설명을 하면서 하루 만에 무려 3차례에 걸쳐 탈원전 논란에 해명했다. 요지는 언론의 '오해'와 야권의 '정치 공세 프레임'으로 정책이 바뀐 것은 없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논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논란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 확충을 위해 지난달 25일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나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 다한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을 통한 2084년까지 장기적 탈원전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건설이 지연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와 관련해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신규 원전을 더이상 짓지 않고, 점진적으로 있던 원전도 감축하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과 관련해 "각국은 자국의 사정에 따라 에너지믹스를 선택하고 있으며, 원전이 필요한 국가들이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높이 사서 우리 원전의 수입을 희망하고 있음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였던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말한 것과 다소 궤를 달리하는 발언이다.
실제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 후 경제성 평가 조작 논란 속 월성 원전 1호기는 조기 폐쇄됐다. 또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는 당초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유로 지연됐다. 신한울 3·4호기는 부지 매입과 설비 제작 등에 7000억 원 이상이 투입돼 공정률 10%에서 공사가 전면 중단돼 있다.
당장 야권에선 "정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송세월했다", "탈원전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또다시 그럴싸한 말로 국민을 속인다", "지난 5년에 대한 자기부정"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박 수석은 2일 페이스북에 올린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41)'에서 "주요 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면 마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믹스'가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제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이것은 대통령 발언 내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력 기저전원'이라는 단어에서 '기저전원'이 핵심인데, 오히려 '주력'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두고, '원전을 감축해 간다는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원전을 주력으로 삼을 수 있는가?'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말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저전원은 전력수요가 가장 낮은 시간대에도 가동되는 발전기로서, 불시사고 또는 계획예방정비가 없는 경우 24시간 가동되는 발전을 의미하며, 현재의 계통 운영상 석탄에 앞서 가장 먼저 가동되는 발전원임을 강조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믹스는 우리 후손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백년대계이고, 세계의 추세적 흐름과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이념화·정치화되면서 우리 에너지 정책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어렵게 된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의 기저에는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이념적 악(惡)으로 규정하고, 어느 날 갑자기 혹은 급격하게 폐기할 것'이라는 정치 공세적 프레임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박 수석은 이날 오전 두 차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공세를 취한 것", "(언론의) 이해 부족"으로 정부 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박 수석의 설명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4기인 원전은 2030년 18기, 2040년 14기, 2050년 9기가 가동되고, 2084년 0기로 탈원전이 완성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싼 발전 방식인 원전이 기저원전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한데, 앞으로 계속 줄어들어 2050년에는 원전의 발전 비중은 6~7%에 그치고, 2080년경이 되면 신고리 6호기 한 기만 남는다.
탈원전이 진행되면서 원전의 주력 기저전원 역할은 점점 낮아지다가, 결국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자명한 상황에서 "앞으로 60여 년간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 발언은 그 자체로 모순이 있는 셈이다. 박 수석의 '주력'이 아니라 '기저원전'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는 해명으로 이러한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박 수석은 "OECD 37개 국가 중 원전 자체를 아예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14개국, 원전을 중단한 국가가 3개국, 원전 제로화 추진 국가가 5개국, 원전 축소 또는 무증설 3개국, 원전 현행 유지 10개국, 그리고 앞으로 원전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2개국뿐"이라며 "세계 발전 비중을 2022년 IEA(국제에너지기구) 기준으로 보면, 원전의 경우 2010년 12.8%, 2015년 10.6%, 2018년 10.2%로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반면 재생에너지의 경우는 2010년 19.5%, 2015년 22.7%, 2018년 25.2%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 원전 정책은 이러한 세계적 정책 흐름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원전 현행 유지 10개국'에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일 발표한 지속가능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에 원전을 포함했다.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책임 방침이라는 어려운 조건이 달리기는 했지만, EU 내에서 '원전으로의 회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자력산업계 전문 매거진 '원자력산업' 2월호 기고글에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깨끗함과 안전'만이 강조되어서는 곤란하다"며 "현재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온실가스 배출 억제이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급 안정성과 경제적 현실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연구위원은 "에너지 정책이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되어야 한다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적정 비율로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발전 중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을 고려해야 함은 당연하고, 이것이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다. 탄소중립을 주도하는 미국, 일본, EU도 이런 이유로 원자력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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