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턴 기자의 이재명·윤석열 대통령 후보 취재기
[더팩트ㅣ김미루 인턴기자] '생각보다 사람 냄새가 난다.'
정치부에 배정받은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대선 후보 유세 현장을 취재하면서 느낀 감상입니다. 현장에서 대선 후보를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막연한 상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는 크고 높은 건물이나 넓은 광장에서 아우라를 뿜어내겠지 하는 상상입니다. 같은 건물을 방문하더라도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앞문을 통해 들어가지만, 대선 후보는 VIP 대우를 받으면서 특별한 뒷문을 거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지난 7일 무주택자 청년들과 대화하고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합정동의 한 모임 공간에 왔을 때입니다. 그는 시민들과 같은 길을 걷고 계단을 올라서 작은 출입문을 지나는 겁니다. 청년들과 똑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임 공간도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크기가 협소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아 좀 더 큰 데로 빌리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다음날인 8일 2030 세대를 찾아 대학로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취재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좁은 폭의 대학로 골목을 지났습니다. 사람이 다섯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포장마차에서 간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달고나(설탕 과자)를 나무 이쑤시개로 살살 긁어냈습니다.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고는 거스름돈을 받았습니다. 보통의 우리가 그러듯이 거스름돈의 액수가 맞는지 슬쩍 세어보는 듯도 했습니다.
좁고 낮은 거리에서 대선 후보들의 사람 냄새를 맡았습니다. 불안감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이 후보는 간담회를 마칠 때쯤 말했습니다. "제게 기회 있을지 모르겠으나, 기회 없을지라도"라면서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게 최선 다하겠습니다"라고요. 얼마 전까지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던 제가 숱한 면접에서 말했을 법한 불안 어린 각오를 내뱉는 겁니다. 윤 후보가 대학로 거리에서 갑작스레 장애인 단체를 만났을 때 했던 말도 작은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요청에 "제가 먼저 찾아가 말씀 들었어야 했는데,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턴 기자가 대선 후보의 면면을 다시 본 것처럼, 후보들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좁고 낮은 공간에서 봤을 겁니다. 무주택 청년들은 간담회 자리에서 성토했습니다. 이 후보에게 한 청년은 "청약은 꿈도 안 꾼다"면서 "내 집이 아니더라도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청약에 당첨돼도 대출이 막혀 생각보다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하게 됐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청년은 "임대차 3법 통과 이후 동생 가족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고 토로했습니다.
윤 후보가 방문했던 대학로 모습은 더 열악했습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에 '임대 문의' 표시가 붙었습니다. 코로나19로 연극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지 발에 차이던 홍보물도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 입학 때 봤던 활기찬 대학로 모습은 없었습니다. 지지자들은 윤 후보 먼발치에서 외쳤습니다. "이겨야 삽니다. 진짜 살고 싶다"라고요. 발달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이동할 곳이 많이 없다면서 여러 차례 윤 후보를 붙잡았던 간절함도 보았을 겁니다.
20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좁고 낮은 거리는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면 오지 못할 곳일 겁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대부분은 "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자주 찾아뵙겠다"고, "대통령이 되어도 낮은 자세로 늘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거리를 방문한다면 지금보다 몇십 배는 더 많은 경호 인력을 대동할 겁니다.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면 좁은 대학로와 합정동 공간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테지요. 시민 목소리에 무관심해져 초심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 대통령이 되면 국격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격의 없는 게 마냥 덕목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을 때입니다. 시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목소리를 들을 기회입니다. 진정으로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가 될 한창때입니다. 거리 유세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의 주름진 손과 얼룩진 눈물 자국, 굽은 등과 허름한 옷차림을 눈에 담아가기를 바랍니다. 지지율에 골치가 아프더라도 말입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 후 누군가 청와대에 가서도 초심을 잃을 것 같다 싶을 때면 지금 이 때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보면서 20대 풋내기 기자는 내년에도 대학로와 합정동은 물론이고 수많은 좁은 골목과 거리를 다니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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