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과 협의 없었다"…중도 여론 파악할 듯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주 4일제·음식점 총량제' 화두를 던진 후 심상찮은 여론에 한발 물러났다. 민주당은 갑작스러운 의제에 "논의된 바 없다"며 당황한 분위기다. 다만 향후 여론 추이를 지켜본 후 공론화에 따라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집권당 대선 후보의 '주 4일제' 발언에 들썩였다. 이 후보가 지난 2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주 4일제 공약 검토 가능성에 대해 "장기적인 국가과제가 되겠지만, 4차산업혁명에 맞춰 가급적 빨리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면서다. 이 후보는 이미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경기도 주식회사를 통해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고, 지난 8월에는 경선 경쟁자였던 양승조 충남지사의 주 4일제에 대해 "계승할 만한 공약"이라며 긍정평가 한 바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이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주 4일제 검토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야권은 즉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20·30세대, 즉 미래세대가 본인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 조급한 나머지 그들의 표를 얻어보겠다고 주 4일제를 시행한다는 유혹을 하고 있다"며 임금 삭감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지지자들도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의 SNS와 온라인 팬클럽 게시판에는 부정적인 글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주 4일제 근무 공약은 취지는 좋으나 거부감도 있을 수 있다. 결국 공기업·대기업 사람들만 혜택볼 것"이라며 "휴일 빈곤층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민감한 정책들은 얻는 표가 더 많은가, 잃는 표가 더 많은가 여론조사 후 발표해야 할 듯 하다"고 했다. 이 외에도 "다 좋은데 제발 주 4일제는 하지 말아달라. 중소기업 죽어난다" "주 4일제 근무는 국민 공감대, 취지 홍보 등을 먼저 해달라. 반발이 너무 심하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부정 여론이 확산하자 이 후보는 하루 만에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날(28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봇산업 전문전시회 '2021 로보월드'를 방문해 "앞으로 닥칠 4차 산업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하기에 사회의 화두로 이야기는 할 때가 왔다"면서도 "당장 이번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다고 하기엔 이르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치권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주 4일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가 화두를 던졌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관심을 모았다. 이어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양승조 충남지사가,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의원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이번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기에 집권당 대선 후보까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파급력에 불이 붙은 것이다.
주 4일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2003년 주 40시간 합의 이후, 18년간 노동 시간 단축이 멈춘 상태라며, 일과 삶의 균형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노동 시장의 변화에 정치권도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967시간으로 두 번째로 많지만,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시 중소기업의 인력난, 업종별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주 4일제는 이제 시대의제가 된 것 같다"며 정치권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미래가 지금의 초장기 노동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답게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룰 것인지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는 굉장히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보수와 선거 이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주 4일제를) 이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노동정책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시작할지, 대기업부터 할지, 정규직이 아닌 이들에겐 어떻게 할지 등 많은 질문에 답을 줘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아무거나 주워 담자고 하면 스텝이 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가 자영업자 과잉 문제 해소 차원에서 발언한 '음식점 허가 총량제'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그분(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신규 사업자 진입을 막을 것처럼 헐리우드 액션을 통해 표심(票心) 공약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권 후보들도 "전체주의적 발상"(윤석열 전 검찰총장), "헌법상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홍준표 의원)이라며 맹비난했다. 이 후보 지지자 사이에서도 "기존 자영업자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의미 외에는 실익 없고 쓸데없이 담당 공무원 권한만 강해진다"며 비판했다.
이 후보는 이 역시 당장 시행하자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제가 성남시장 때 그 고민을 잠깐 했었다는 말이고, 그걸 국가정책에 도입해서 공론화하고, 공약화하고, 시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면서도 "자유의 이름으로 위험을 초래하는 방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 후보가 당과 조율이 안 된 설익은 의제를 공개적으로 내뱉으면서 정책 혼선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에서 공약을 총괄하는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 후보의 주 4일제, 음식점 허가총량제에 대해 "지금은 당에서 검토하는 공약과 캠프의 공약을 검토하는 과정"이라며 당 차원 공약화에 선을 그었다.
당은 선대위가 출범하면 본격적으로 후보 측이 준비해온 공약과 당이 마련한 공약을 검토해 조율한다는 계획이다. 주 4일제와 자영업 과잉 해소 방안에 대한 긍정 여론이 형성될 경우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 후보 비서실장인 박홍근 의원은 "당 정책위가 정책기획단으로 준비한 것과 민주연구원, 캠프 차원에서 준비한 것을 통합하는 작업을 11월 초까지 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주 4일제와 음식점 총량제 등 이 후보의 정책 아이디어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내 정책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주 4일제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그 흐름으로 가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측면도 있고 일자리를 나누는 측면도 있어서 얼마든지 검토해볼 수 있다"며 "다만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은 어려움이 있다. 사회 수용도 등 충분히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도 "주 4일제는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시범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음식점 총량제에 대해선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 구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총량제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기본적인 선은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원팀 선대위' 구성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이 후보는 정책 행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이날 로봇산업 전문전시회를 방문해 규제 합리화 등을 통한 신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미래 의제를 선점하고 실용적인 행보로 중도층 민심을 공략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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