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징벌적 손해배상 등 독소조항 삭제해야" 평행선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은 언론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8월 31일 윤호중 원내대표)
"국민의 알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돼야 한다."(8월 31일 김기현 원내대표)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합의안 도출에 진통을 겪고 있다.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액 축소 등의 수정안을 내놨지만, 야당은 "그 자체로 독소 조항"이라고 반대하면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27일 해당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신중론이 고개를 들면서 속도 조절에 나설지 주목된다.
여야 양당 의원과 각 당이 추천한 언론계,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한 8인 협의체는 지난 8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4일까지 총 10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열람차단 청구권, 정정보도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야당과 언론계, 시민사회 등의 지적을 받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5000만 원 또는 손해액의 3배 이내의 배상액 중 높은 금액'으로 배상액을 축소하는 안을 내놨다. 당초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물리도록 한 방안에서 상당 부분 완화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위헌적'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를 판단하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두고도 이견이 있다. 이 조항은 고의나 중과실을 정의하는 개념이 추성적이고 불명확해 언론 자유를 위축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해당 조항을 없앴다. 다만 징벌 배상과 관련해 "법원은 언론 등에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 입거나 인격권 침해 등이 있을 경우"로 수정했다. 즉, 법원이 기존 판례에 따라 손해배상액 책임 여부를 판단하도록 대안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언론이 법원에 취재 경위를 소상히 밝히는 등 고위 또는 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므로 오히려 언론에 책임을 더 부가하는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열람차단청구권 도입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민주당은 기사의 열람차단 청구 범위를 '내용이 신체, 신념, 성적 영역 등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할 경우'로 한정했다. 기존의 '제목 또는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경우'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할 경우'는 요건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의힘은 사전 검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정보도 강화와 관련해선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견을 좁혔다. 국민의힘은 징벌적 배상제와 열람차단 청구권 조항을 삭제하되, 정정보도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대안을 제시했다. 정정보도 여부 및 이행 시기에 따라 손배액을 달리 산정하고, 눈에 잘 띄도록 정정보도 방식을 강화하며 청구 방법도 다양화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언론사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포털사이트 댓글창 등에 반론을 직접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여야 협의체는 활동 종료일인 26일 오후 4시 마지막 11차 회의만 남겨두고 있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할 8인 협의체를 구성해 26일까지 활동하고, 개정안을 27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민주당은 8인 협의체에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24일 "26일까지 8인 협의체에서 최대 합의를 끌어내도록 노력하고 그 결과를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지난 16일 TV토론에서 "합의가 안 되더라도 협의체를 통해 도출된 수정안을 바탕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당일 처리할 것"이라며 처리 강행을 시사한 바 있다. 야당은 합의안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라 민주당이 개정안을 강행할 경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 여론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신중 기류가 감지돼 민주당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3박5일간의 방미(訪美)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지금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정부가 할 일은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별도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언론중재법을 강행하면 임기말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우회적으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최근 총회에서 '허위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한국의 가짜뉴스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철회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언론계를 대표하는 주요 7단체(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지난 23일 국회에 언론중재법 개정안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언론의 신뢰 회복과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26일 8인 협의체 마지막 회의와 원내대표단 협상을 통해 투트랙으로 합의안 마련을 시도할 예정이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10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협의체 차원에서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어렵다고 봐야한다"며 "(26일까지) 마지막 조율을 해보고 안 되면 원내대표단 사이에서 최종적인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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