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4조 투자는 세계시장 지향하는 기업의 전략적 판단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박 5일간의 미국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가운데 동행했던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25일 방미 성과에 대해 국민께 소상히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야당 쪽에서 "44조 원짜리 빈 수레", "백신 기다렸는데 물건 대신 어음 받아온 꼴이다" 등의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설명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실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백신 협력에 대해 "우선 미국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한국군 55만 명에 해당하는 백신을 아무 조건 없이 제공하기로 했다. 또 한미 간에 매우 포괄적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라며 "이는 단기적으로도 백신 수급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백신 수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 금년이나 내년에 완전히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고, 그래서 감염병 상황이나 백신에 대해서는 좀 더 장기적인 구상과 대비가 필요하다"라며 "백신 파트너십은 한국을 백신 생산허브로 만들자고 하는 우리의 비전과 미국의 입장이 일치한 것으로 국가안보, 경제적 이익 차원에서 매우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백신의 양을 늘리고 우리가 백신 생산과 관련된 기술 수준을 높이면 그만큼 우리가 백신 수급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실장은 백신 공급 우선권과 관련해 "모더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간에 위탁생산 계약이 있었고,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억 회 분량의 모더나 백신을 어디로 배분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계약 내용이 없지만, 기업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어떤 게 가장 효율적인 물류인가 하는 차원에서 국내에서 생산된다는 것이 국내의 백신 수급에도 안정성을 높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백신 공급 우선권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면 국내에서 생산되어 쌓이는 백신은 물류비용 절약 등을 우려해 우리에게 먼저 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장은 "글로벌 백신 생산허브가 되는 과정에서 주요한 백신 기술을 가진 쪽과 우리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업체 간의 관계가 보다 깊어지고 장기화될수록 우리 쪽에 많은 권한이 생길 것으로 본다"라며 "단순한 위탁생산보다는 라이선스나 직접 투자나 이런 부분 쪽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조금 더 많은 권한이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미국에 44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직접적으로 얻은 건 백신 55만 명분(한국군)뿐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장면이 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장에 삼성, 현대차, SK, LG 기업인들을 깜짝 초대해서 일으켜 세운 다음에 기업명을 호명하고 '땡큐'를 세 번 연발했다. 그 순간에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우리 기업은 미래 기술력에 대해서 미국이 인정하고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국내시장에 의존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다. 세계시장을 지향해야 하는데 그럴 때 최고 기술이 있는 곳, 큰 시장이 있는 곳을 선점해야 된다는 전략이다. 또 대기업 하나만 미국에 진출하면 많은 중소기업, 중견기업이 동반 진출하게 되는 효과가 생기고 그만큼 국내에서도 일자리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시켜서 기업이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게 아니라 사업을 하는 기업이 전략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이 실장은 재계가 꾸준히 요청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요청에 대해선 "경제계나 종교계, 외국인 투자기업들로부터 그런 건의서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에 대해선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정서,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 고려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공동 성명에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 강조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중국 측은 전날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으로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경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한국은 글로벌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개방성에 기초한 다자주의 원칙에 따라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고 무역과 해외 투자 면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 협력 대상국이다. 한국은 중국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때처럼 경제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라며 "너무 앞서나간 예측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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